[160호/초점] 반세계화 활동가와 노동조합은 함께 투쟁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를 분열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이민자 권리 에 대한 지지 혹은 FTAA 반대와 같이 우리를 단결시키는 쟁점을 찾아 야 하며, 그것에 관해 행동해야 한다. 보건의료, 고용 그리고 안정적 노 후생활과 관련한 투쟁이 늘어날 것이며, 향후 사회운동으

반세계화 활동가와 노동조합은 함께 투쟁할 수 있다
- 운동의 생기를 지속시키기 위해 우리가 해야만 하는 것

레이버노트, 러스 데이비스

1년 동안의 이 엄청난 변화를 보라! 2001년 4월, 우리는 5만 명의 인
원으로 퀘벡에서 행진을 했다. 학생, 활동가, 그리고 미국 북동지역에서
온 수 많은 노동자를 포함한 노조원들은 미주자유무역협정(FTAA)이라
는 기업 중심 세계화의 가장 최근의 현상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표명했
다. 시위가 마침내 끝나고 친(親)자유무역 관료들이 최루 가스에 숨막
혀 하고 있을 때, 국경 양쪽의 활동가들은 승리는 우리에게 있다고 확
신했다.

2002년 4월 20일로 우리의 눈길을 돌려보자. 또 다른 행진이 계획되
어 있다. 세계화가 다시 한번 화두가 되고 세계은행과 IMF의 워싱턴
연차총회에 맞춰 시위가 벌어질 것이지만, 군중 속에서 노동조합 재킷
을 보기는 힘들 것이다. 실제로 기업 세계화 반대 운동에 노동자들의
참여를 선도해왔던 「정의와 조화되는 일자리」(Jobs with Justice)와
같은 진보적인 노동자 단체조차 이번 4월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무슨
일이 일인가? 시애틀의 그 유명한 "청-녹" 연대(노동자-환경주의자 연
대-옮긴이)는 죽었는가? "노동자와 환경주의자"(Teamsters and Turtles)
는 더 이상 동지가 아닌가? 미 정부의 대테러전쟁을 둘러싼 노동운동
과 젊은 반세계화 시위자들간의 분열은 얼마만큼 심각한가? 만약 우리
가 지구적 사회정의를 위한 더 거대하고 나은 운동을 건설하기 원한다
면, 이러한 문제들이 필수적으로 제기되어야 한다.

시애틀에 대한 기억

3년 전 시애틀 거리에서 등장한 운동은 세계를 뒤흔들었다. 환경주의
자, 학생, 급진적 청년들, 그리고 노조원들이 함께 투쟁하는 모습은 미
국 활동가들에게 상당한 에너지를 가져다 주었다. 심지어 신자유주의
경제 모델에 반대하는 시위가 지난 십년 동안 진행되었던 유럽에서도,
시애틀은 하나의 출발로 간주되었다. 남반구 뿐만 아니라 선진국의 활
동가들까지 아무런 통제없이 확장되어 왔으며-여전히 확장하고 있는-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에 시비를 거는 것이 가능하다고 처음으로 느꼈
다.

아마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시위를 계기로 상당히 오랫동안 냉전
정책의 충실한 동반자였던 미국 노동운동 내부에서 국제주의가 재탄생
하는 징후가 보였다는 점이다. 그러나 9.11 사건이 최소한 한시적으로
나마 지구적 정의 운동을 제자리에 멈추게 만들기 이전까지도, 시애틀
의 도취를 지속시키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
었다. 학생 및 환경주의자들과의 연대라는 노동자들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노동조합과 환경주의자들은 북극 시추작업(Arctic drilling)과
자동차 배출 기준(auto emission standards) 등의 쟁점을 둘러싸고 분
열되었다. 2001년 4월 퀘벡에서, 캐나다 주류 노동조합은 조합원 수천
명을 동원했지만, 미국 노동운동은 그 가두 시위에 힘을 싣지 않았다.

작년 여름 이탈리아 제노아의 세계화 시위에서의 폭력이 부각되면서
"직접 행동"에 대한 논쟁이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전
술의 다양성"을 옹호하는 운동의 입장이 경찰과 언론이 모든 세계화
시위자들을 폭도(지금은 "테러리스트"로 읽히는)로 매도하는 것을 용이
하게 해주는 듯하다며 거북해한다. 마지막으로 운동, 특히 큰 시위에서
의 인적 구성에 관한 문제제기들이 있었다. 전세계 억압받는 사람들을
대변한다고 주장하는 운동이 최소한 미국에서는 너무 백인과 중산층
중심이지 않은가? 이러한 약점들에도 불구하고, 지구적 정의 운동은 여
전히 기업의 이윤 추구가 지배하는 세계에 대한 대안을 발전시키는데
가장 훌륭한 희망으로 보였고, 나는 여전히 그렇다고 주장하고 싶다.
이 운동은 기업 중심적 사고를 뒤흔들었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투
쟁에 1930년대 이후 보지 못했던 팔팔한 에너지와 감히 말하면 젊음을
가져다주는 등 노동 운동을 부분적으로 뒤흔들기 시작했다. 이 운동은
확실히 기업 엘리트들에게 실질적인 영향을 끼침으로써, 그들이 이데올
로기적으로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게 만들었고 아프리카 에이즈와 같은
문제들에 있어서는 약간의 진전을 얻어내기도 했다. 이러한 긴장에도
불구하고 노동운동은 여전히 이 운동에 뜻을 갖고 있었다. 무역협상신
속처리법안은 거의 무력화되었고, 작년 9월 미국노총산별회의
(AFL-CIO)는 워싱턴에서 세계은행/IMF 시위에 대한 야심찬 동원계획
을 갖고 있었다. 그때 쌍둥이 빌딩이 산산히 무너져 내렸다.

전쟁은 지옥이다

전쟁으로 지구적 자본 반대 동맹을 유지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워졌
다. 노동운동가가 아닌 활동가들은 반대하는 반면, 노동조합 -노동 대
중의 90% 이상- 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군사적 대응을 지지했다. 다
른 나라의 많은 노동조합 역시 노동자 국제연대를 위협하고 미국 노동
자들을 미국의 정부 정책을 지지하는 역할로 후퇴시키는 전쟁을 반대
했다. 비록 노동운동이 반이민, 반아랍 정서를 비판하고 계속적으로 합
법화를 지지하면서 이 나라 이민자들에 대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최근 싹튼 미등록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한 운동 또한 타격을 입었다.

노동조합들의 전쟁에 대한 지지는 지구적 정의 운동내 직접행동 청년
운동가들과 노동계가 새로운 활동가들로 끌어들였던 학생들 일부를 고
립시켰다. 또한 미국 노동계의 입장은 전세계 기업 세계화 반대 운동
진영의 대다수와 반목하게 되었다. 최근의 브라질 세계사회포럼에서 대
부분의 사람들은 거기 있는 모든 사람이 전쟁 반대 입장을 갖고 있다
고 가정하는 것 같았는데, 이는 현 상황에서 미국의 노동계 지도자들에
게는 정치적 자살행위이다.

다른 운동은 가능하다

9.11 이후 지구적 정의 운동의 잠재력은 무엇인가? 전쟁이 노조의 지
원을 받는 지구적 정의 운동을 불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 이 순간,
미국 노동자들에게 행해지고 있는 경제전쟁(지금은 "끝난" 불황)은 최
근 역사의 어느 때보다 노동자들의 대중 운동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엔론 파산, 비틀거리는 경제, 그리고 보건의료의 위기는 비록 노동자들
이 이러한 상황에 대한 행동에 좀 느리긴 하지만, 반기업 행동을 위한
잠재적 기반을 넓혔다. 9.11 전보다 명백히 많은 수백만의 노동자들은
우리의 아이들, 타국 노동자의 아이들이 영구적 전쟁과 경제 불황 상태
의 세계에서 자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보다 정의로운 경제 체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는 이를 어떻게 실현시킬 것
인가? 먼저 우리는 전쟁이라는 수사와 대규모 일자리 파괴를 동반한
점증하는 보호주의적 정서에 직면한 상황에서, 국제연대의 정신을 계속
살려야 한다. 생산 체계가 지구적으로 조직됨에 따라, 앞으로의 투쟁에
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도 국제적으로 조직되어야 한다. 우리는
미국 기업 착취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이면 살해당하는 콜롬비아 혹
은 다른 곳의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지원해야 한다. 우리는 지구적 전략
과 지구적 맥락에서 국내 투쟁을 계속해서 위치지워야 한다.

수백 만 명을 시위에 조직하라

우리는 우리를 분열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이민자 권리
에 대한 지지 혹은 FTAA 반대와 같이 우리를 단결시키는 쟁점을 찾아
야 하며, 그것에 관해 행동해야 한다. 보건의료, 고용 그리고 안정적 노
후생활과 관련한 투쟁이 늘어날 것이며, 향후 사회운동으로 발전할 잠
재력을 가지고 있다. 수천이 아니라 다인종적인 수백만이 이런 사회운
동에 조직될 것이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이러한 쟁점들을 다른 것들을
연결시켜야 한다. 엔론은 미국 노동자들과 소비자들을 갈취했다. 인도
에서는 지난 수년 동안 엔론에 대한 대중적인 반대 운동이 있어 왔다.
노동 운동가들이 의사 소통과 공동 행동을 활발하게 유지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국내외 세계화 운동의 동지들은 우리가 미국 노동운
동에서 직면한 정치적 현실을 올바르게 인식해야 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전쟁에 대한 반대를 포함하여, 4월 20일 행진에 제출된 요구들은
오늘날 미국인들의 아주 소수만이 지지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노
동자들 대다수와 그 동지들은 여전히 지구적 정의라는 이슈들을 지지
한다.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다. 그러한 잠재력을 현실화시키는 운동을
구축하기에는 인내와 장기적 실천이 필요하다. 만약 우리의 구호가 "다
른 세계는 가능하다"라면, 우리는 잠재력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다른 운
동이 가능하다, 아니 필요하다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노동자, 학생,
환경주의자 그리고 시애틀에서 희망을 보였고 앞으로 거리에서 현실
을 보여줄 사람들의 운동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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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 , 반세계화 , 노동조합 , 환경운동 , 레이버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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