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운동, 어떻게 됐는가? 4부 : 액커와 아이젠스타인에 대한 답변
1부: 바버라 엡스타인, '여성운동, 어떻게 됐는가?'
2부: 조안 액커, '이제,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
3부: 헤스터 아이젠스타인, '보다 넓은 그림'
▶ 4부: 바버라 엡스타인, '액커와 아이젠스타인에 대한 답변'
[인터내셔널뉴스] 160호에는 "여성운동, 어떻게 됐는가?" 논쟁의 마
지막 글을 싣는다. 그 동안 바버라 엡스타인의 글 "여성운동, 어떻게
됐는가?"와 이에 대한 조안 액커와 헤스터 아이젠스타인 각각의 논평
을 개재했고, 이번 글은 액커와 아이젠스타인의 논평에 대한 엡스타인
의 답변이다.
액커와 아이젠스타인에 대한 답변
[먼슬리 리뷰], 2001년 10월 호, 바버라 엡스타인
조안 액커와 헤스터 아이젠스타인이 내 글에 반응을 보인 것은 나로
서 기쁜 일이다. 그들의 문제제기가 겹치기 때문에 나는 그들의 제기를
함께 다루도록 하겠다. 나는 그들이 제기하는 문제들이 단순히 여성운
동의 현황뿐만 아니라 보다 넓게는 미국 진보 정치의 현황에 대한 논
의에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시작한 논의를 더욱 멀리 가져간 그
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액커와 아이젠스타인 둘 다 각자의 방식을 통해 부와 권력이 더 양
극화되고 우익이 영향력을 확대해감으로써 페미니즘이 쇠퇴하게 되었
다고 지적한다. 나 또한 여성운동의 쇠퇴와 탈급진화를 이와 같은 맥락
속에 위치 짓고자 했다. 액커와 아이젠스타인 모두 이런 맥락이 내 글
에서 빠졌다고 생각했다면, 내 글이 명확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의 주
된 관심은 이런 맥락이 어떻게 여성운동의 형태를 규정했으며, 이로부
터 비롯된 변화에 여성운동은 어떻게 대응했는지, 더불어 대응하지 못
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었다. 액커와 아이젠스타인의 문제제기가 초점
을 둔 바는 이러한 변화가 어떻게 페미니즘에 대한 반대를 더욱 강화
시켰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액커는 중요한 지적을 하고 있다. 즉, 노동에 대한
공격이 노동자계급 남성들 사이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을 더욱 강
화했고, 이들은 페미니스트들의 요구가 자신의 위치를 위협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나는 이것이 중산층 전문가 집단 밖으로까지 페미니즘이 확
산하는 데에 장애물로 작용했다고 지적한 액커가 옳다고 생각한다. 그
러나 경제적 기회의 확대와 전문가 집단에서의 페미니즘의 수용 간 직
접적인 관계가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전문가 부문 중 내
가 가장 친숙한 학계에서는 최소한, 능력있는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가
없는 상태에 처해있다. 실제로 여성들이 많고 특히 페미니즘이 영향력
을 행사하고 있는 분야에서는 안정적이고 고임금의 일자리가 드물다.
예를 들어 영문학의 경우, 여성의 비율이 상당히 높기는 한데 또한 안
정적인 일자리를 얻지 못한 박사들의 비율도 높다. 그러나 보다 넓은
맥락에서 봤을 때, 나는 기회의 확대와 페미니즘의 수용 간 연관성을
지적한 액커에 동의한다. 미국에서 페미니즘은 중산층 전문가 사회에서
젊은이들에게 보다 많은 기회가 주어진 바로 그 시기에 재등장했다. 페
미니즘의 개방적이고 창의적인 성격이 이러한 맥락 속에서 형성되었다.
액커와 아이젠스타인이 지적한 경제적 재편은 전문직뿐만 아니라 생산
직에서도 경쟁의 격화와 경쟁을 당연시하는 문화로 이어졌다. 이 속에
서 페미니즘은 보다 조심스럽고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나는 아이젠스타인이 여성운동의 변천을 지난 몇 십 년 간 미국에서
진행된 계급의 양극화와 정치적 우익화라는 맥락 속에 위치지어야 한
다고 말한 데에 동의한다. 그러나 이로부터 그녀가 맺은 결론에는 동의
하지 않는다. 그녀는 적대적인 환경 속에서 여성운동이 주춤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듯이 내비친다. 그러나 그녀는 장기적으로 페미니즘이 성
공할 것이라고 자신한다. 그녀는 문제점을 여성운동 내부에서 찾으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이젠스타인은 문제의 근원이 운동 외부에 있
으며 현재 여성운동의 미약함은 일시적인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이것
은 모순적이다. 진보운동의 개입이 없으면 자본주의는 더욱 더 가혹해
질 것이며 실현가능한 유일한 체제라는 사고가 보다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나는 역사가 우리편에 당연히 서있다고 여길 수 없다 생각한다.
분위기가 개선될 때까지 기다린다면 진보 운동은 더욱 약화될 수밖에
없다. 페미니스트와 모든 좌파에게 중대한 문제는 보다 평등한 사회를
향한 운동들을 어떻게 조직화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그것도 우리 목표
에 적대적인 환경 속에서 말이다. 만약 우리가 진보운동, 여성운동과
기타 운동들이 더욱 강화되기를 원한다면, 이 운동들이 어디에서 실패
했는지를 살펴야 한다. 우리는 아이젠스타인과 액커가 묘사하고 있는
상황, 즉 부와 권력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시장의 가치가 더욱 지배하는
상황에 대응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우리 집단 외부에 있는 민중들에
게 말을 걸고 보다 인간적인 사회가 가능하다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그
러한 방법 말이다.
아이젠스타인은 학계의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것이 인색하다는 듯이
글을 쓰고 있다. 그러나 학계에서의 페미니즘을 보지 않은 채 여성운동
의 현황을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국에서 학계는 페미니즘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분야가 되었다. 다른 어느 곳보다 페미니스트들이 많
이 집중된 곳이다. 그리고 지금 사회는 언론이 지배하는 사회인데, 페
미니스트들은 언론에 보다 많이 접근할 수 있게 되었으며, 다른 곳에
있는 페미니스트들보다 언론의 조명을 더 많이 받는다. 페미니즘의 현
조건을 이해하고 싶으면, 우리는 학계 페미니즘이 상당한 영향력을 행
사하고 있는 하위문화라 바라봐야 한다. 이 여성학자냐 저 여성학자냐
지목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학계에는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있다.
몇 개 분야에서는 평등의 가치가 여전히 지배적이고 학문이 대학 밖의
세계와 연계를 맺고 있다. 그러나 지난 십 년 이상 이는 특히 페미니즘
이론의 영역에서 주류적 현상이 아니었음은 사실이다.
미국 내에서보다 해외에서 페미니즘이 더욱 큰 성과를 얻고 있다는
아이젠스타인의 지적이 나는 옳다고 생각한다. 액커는 지구적 (더불어
인종적이고 계급적인) 시각이 페미니즘 정치에 필요하다고 한다. 보살
핌(care, 아이 양육과 노인 및 병자 돌보기 등-옮긴이)의 이슈에 초점을
둬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페미니즘의 관심사와 시장
관계 밖에 있는 모든 것이 가치 절하되는 흐름에 대한 공격을 연결 지
을 수 있다. 나는 이것이 훌륭한 제안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에도 그랬
듯이 페미니즘은 기타 진보운동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여성운동이 보다 광범위한 진보운동 내에서, 그리고 특정 이
슈에 대한 특정 운동 내에서 하나의 흐름 또는 여러 가지 흐름의 형태
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현재 가장 성장하고 있는 운동은 반기업/반
세계화 운동(미국 밖에서는 반자본주의 운동이라 칭하는 경향이 강하
다)이다. 이 운동에서 '보살핌'의 문제가 하나의 의제로 등장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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