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결국 저지 당했다. 그의 주검을 태운 운구차는 경찰과 차가운 플라스틱 방패의 벽에 막혀 한치도 나아갈 수 없었다. 생전에 장애를 이유로 자유로운 이동조차 보장받지 못했던 그의 '지독한 운명'은 죽은 뒤에도 변함이 없었다.
최옥란. 여. 37세. 뇌성마비 1급장애인. 장애운동가. 한달전 수면제 20알로 고단한 세상을 등지려 했던 그는 3월26일 호흡을 멈췄다. 사인은 심장마비.
청계천에서 좌판으로 생계를 이어오던 고 최옥란 씨는 지난해 10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실시되면서 목디스크 수술을 위해 생업을 접었다. 월수입이 33만원이 넘으면 수급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규정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급된 금액은 고작 30만5천원. 치료비만도 25만원이 넘게 드는 그에게는 막다른 골목이었다. 이에 지난해 12월3일부터 6일 동안 명동성당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제 개혁'을 요구하며 천막농성을 벌였지만 복지부는 그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았고, 그는 결국 생의 희망을 내던졌다.
그의 '마지막 길' 역시 순탄치 않았다. 명동성당과 광화문 앞에서 노제를 지낼 예정이던 장례행렬이 28일 빈소인 한강성심병원을 나선 시간은 오전 6시. 그러나 영구차 행렬을 처음부터 뒤따르던 전경버스는 아현동과 서소문 시청 진입로에서 두 차례 이들을 저지했다. 아현동에서 유족과 장례위원들이 차에서 내려 항의했지만 경찰은 폭력으로 답했다. 고인의 시신을 두고 경찰과 유족이 쫓고 쫓겼다. 곤봉에 피가 튀고 상복이 뜯겨 나갔다. 8차선대로는 금새 엉망이 돼버렸다. "가톨릭 신자인 딸이 명동성당을 한번만 둘러보게 해달라"는 어머니의 절규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경찰의 저지로 노제는 결국 무산됐고, 운구는 곧바로 벽제화장장로 직행해야 했다. 두어 시간 뒤, 그는 옥함 속 한줌의 재로 유족에 넘겨졌다. "다시는 나같은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그의 말도 함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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