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쫓겨날 순 없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한국 정부는 우리들의 인권과 노동권을 보장하라![사진-copyleft 워킹보이스]

비가 내릴 듯 말 듯 스산한 일요일(7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5가 국립의료원 옆 훈련원 공원에는 어디서들 모였는지 서로 다른 나라의 언어로 쓰여진 피켓과 국기를 든 이주노동자들이 꾸역꾸역 몰려들고 있었다. 먼저 모여있던 노동자들은 공원 출입구에서 플래카드와 피켓을 든 또 한 무리의 자신들이 들어올 때마다 소리 높여 구호를 외치며 흥분하고 있었다.

스탑! 크랙다운(STOP! CRACK-DOWN!), 크랙다운 크랙다운!,
리젝! 레지스트레이션(REJECT! REGISTRATION!) 레지스트레이션 레지스트레이션!,
어취브! 레이버 롸이츠(ACHIEVE! LABOR RIGHT!) 레이버 롸이츠 레이버 롸이츠!...


마치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듯 누구랄 것도 없이 구호를 외치며 한 덩어리가 된 이들은 이날 불법체류 방지대책에 항의하는 집회를 주최한 평등노조 이주노동자지부(지부장 이윤주)조차도 통제하기 어려울 정도로 저마다 참아왔던 분노와 울분을 토해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단속을 중단하라", "등록(자진신고)을 거부한다", "노동권을 쟁취하자!"

법무부 종합대책, 불법체류자 추방 위한 덫에 불과
강제추방 중단하라, 노동권을 보장하라!

중국(조선족), 방글라데시, 네팔, 필리핀, 베트남, 스리랑카, 파키스탄, 카메론 등 국적도 다양한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은 이날 강제 출국조처에 다름없는 정부의 '불법체류방지 종합대책'을 폐기하고 합법적인 노동권을 촉구했다.

불법체류방지 종합대책은, 올 월드컵과 부산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불법 취업할 목적으로 입국하는 외국인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현재 26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는 불법체류자의 추가 양산을 막고, 현존하는 불법체류자들의 자진출국을 유도하기 위한 조처다.

이 대책은 올 3월25일부터 5월25일까지를 '불법체류외국인 자진신고기간'으로 설정, 이 기간 내에 신고한 모든 불법체류자들과 고용주에 대해 범칙금과 입국 규제를 면제해 주고 내년 3월31일까지 출국을 유예시켜 준다는 것을 뼈대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정책에 대해 평등노조 이주지부 등을 비롯한 대다수의 이주노동 관련 단체나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은 "자진신고제는 이주노동자에게 추방 대기표를 나누어주는 것에 불과"하다며 이 제도를 전면 폐기하고 합법적인 노동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자진신고 후에는 불법체류 이주노동자가 출국 전까지 사업장을 옮길 수 없기 때문에 사업주들이 이를 악용해 임금을 체불하거나 감금 노동을 시키는 등 각종 인권침해에 무방비로 노출될 것"이라며 "오히려 자진신고는 출국준비기간이 아니라 추방을 위한 신상파악기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2개월이라는 자진신고기간은 여권을 압류 당하거나 여권번호조차 모르는 대다수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이 여권을 재발급 받기에도 충분하지 않은 시간이고, 1년짜리 항공권을 가져오면 그 기간까지 체류하도록 해 준다는 것도 현행 6개월 단위로 운영되는 항공사 시스템으로 볼 때도 불가능한 얘기"라고 반발했다.

노조 이윤주 지부장은 "이번 대책은 한국 경제발전에 기여해 온 이주노동자들의 공로를 외면한 채 결국 토끼몰이 하듯 추방하기 위한 덫에 불과"하다며 "송출비리는 물론 낮은 임금과 비인격적 대우로 오히려 불법체류를 양산한 정부의 정책실패를 고스란히 이주노동자에게 돌리는 것에 다름 아니다"고 비난했다.

"우리에게 인권과 노동할 권리를 달라"

이날 집회에는 예상치를 훨씬 넘는 1천여명이 참석, 주최측조차 놀랄 만큼 불법체류 방지대책에 대한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의 분노를 짐작케 했다. 노조 이윤주 지부장은 "우리도 이렇게 많이 참석한 데 놀랐다. 지방에서는 5천원씩들 모아 관광버스까지 빌려서 온 곳도 있다. 그만큼 등록과 단속으로 계속 몰리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몰릴 곳이 없다는 절박한 심정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집회장에서 만난 방글라데시 출신인 꼬빌씨는 "나 같은 불법체류자들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면서, 욕 얻어먹고, 맞고, 단속·추방에 떨면서도 한국인들이 싫어하는 3D업종에서 일 해 왔다"며 "우리는 한국 정부가 원했기 때문에 이 곳에서 일하고 있는데, 이제 와서 나가라고 하면 어떡하냐"고 말했다.

조선족 동포인 이정숙씨는 "우리에게 죄가 있다면 조국해방과 통일을 위해 싸웠던 독립투사들의 후손이라는 것과 3D업종에서 부지런히 일한 것밖에 없다"며 "정부의 잘못된 강제추방 조치를 단호히 제재할 수 있도록 한국 동포들이 따뜻하게 손을 잡아달라"고 호소했다.

베트남에서 왔다는 웬 탕룡씨는 "지금 불법체류자라고 자진 신고하게 되면 1년 내에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가야 한다. 난 계속 한국에서 일하고 싶다. 우리에게 비자를 꼭 줬으면 좋겠다"고 간절함을 전했다.

조국 땅에 오기 위해 1천만원을 냈다는 흑룡강 출신 조선족 안재춘씨는 "5년 동안 한국에서 일했는데 불법체류자라고 2번 잡히는 바람에 500만원씩 벌금 내느라고 벌어놓은 돈을 거의 다 썼다. 돈은 모아지지 않고 몸은 아프다. 자진신고는 허위적인 거다. 시간만 되면 잡아가겠다는 거 밖에 안 된다. 인권의 자유와 노동의 권리를 달라. 우리가 한국인과 똑같이 대우해 달라는 게 아니다. 다만 합법적으로 일할 권리를 달라는 것이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경기도 안양에서 식당을 하면서 이주노동자들의 문제해결에 힘쓰고 있다던 방글라데시 출신 에나물 하크씨는 "다들 단속과 추방 위협에 시달리고 있는 처지라 이래도 나가야 되고(출국 당해야 하고) 저래도 나가야 하기 때문에 막바지까지 몰린 분노가 집결돼 오늘 이만큼 모였다"며 "한국 정부는 불법체류자들의 분노를 정확히 파악하고 즉각 현행 정책을 폐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민주노총과 평등노조 이주지부 등을 비롯한 이주노동관련 단체들은 오는 4월21일 2차 집회를 갖는 데 이어 5월1일 노동절 집회 등을 통해 자진신고제도의 문제점을 알려내고 등록거부캠페인 등을 펼쳐나갈 계획이다.

노조 이윤주 지부장은 "그동안 불법을 양산한 정부는 산업연수생 제도 등의 정책실패를 인정하고 암묵적으로 음성적으로 이주노동력을 활용하려고 했었던 정책을 선회해 이주노동자에 대한 합법화 조치를 즉각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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