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호[정치-색깔 정치 이념 정치]"철지난 옛노래 대선 때마다 단골메뉴로 등장"

조현연/편집위원 성공회대 연구교수 한국정치
"재벌을 해체하고 그 주식을 국가 매수하여 노동자에게 분배하여야 한다는 주장은 민주노동당의 강령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급진적인 노선이다." "지금 급진세력이 좌파적인 정권을 연장하려 하고 있다."

시대역행적인 무지몽매함을 탓해야 할까, 아니면 지칠 줄 모르는 권력에의 탐욕을 탓해야 할까. 두 이 모씨에 의한 때 아닌 색깔 논쟁이 우리의 눈과 귀를 더럽히고 있다.

'붉은 색 덧씌우기'를 통한 희생양 만들기는 역대 대선의 단골 메뉴로, 그 대표적 제물은 바로 '사상이 불순하고 과격한 인물 김대중'이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조차 금지곡으로 묶여 있던 시절인 71년 대선. 박정희는 "김대중이 피리를 불면 김일성이 춤을 추고, 김일성이 북을 두드리면 김대중이 곡조를 맞춘다"라고 하여 마치 그를 공산주의자인양 공격을 해댔다.

이러한 논리는 10·26사태 이후 "김종필은 부패하고, 김영삼은 무식하며, 김대중은 사상이 의심스럽다"는 군부의 김대중 비토설, 그리고 1987년 대선 당시 "야당이 집권을 위해 불순한 좌익 폭력세력과 손을 잡고 있다"며 김대중과 김영삼에 대한 노태우의 용공 조작으로 이어졌다. 더 웃기는 일은 그토록 비난했던 김대중과 김영삼에게 노태우가 1990년 합당을 제안하고, 결국 김영삼과 3당야합을 결행했다는 사실이다.

한편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은 "민주당은 김일성 노선을 추종하는 전국연합과 손잡았으며, 평양방송은 김영삼을 낙선시키라고 선동하고 있다"면서 이른바 '김일성 지령설'을 대대적으로 유포했다. 그러나 그 공격 속에, 전국연합 사무실 개소식 때 화환과 축의금 100만원을 보낸 민자당 대표 김영삼의 행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김영삼 정권이 출범하고 처음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민자당 대표 김종필은 이렇게 사과를 했다. "김대중 전 대표께서는 과거 30년 동안 민주 발전에 헌신한 분으로서 용공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원님 떠난 뒤 나팔 부는 격'일 따름이었다.

붉은 색 덧칠하기는 물론 김대중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었다. 1956년 제3대 대통령 선거에서 수탈없는 계획경제와 민주적 평화통일의 실현을 내세운 죽산 조봉암은 이승만의 강력한 정치 라이벌로 등장한다.

이에 위협을 느낀 이승만은 '정통 민주 야당'임을 자처한 민주당의 침묵의 동조 속에서 날조된 간첩 혐의를 그에게 덧씌워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한다.

또한 역설적이게도 적색 공포의 통치를 맘껏 구사한 박정희도 희생양이 될 뻔한 적이 있었다. 1963년 대선에서 윤보선이 박정희의 남로당 전력을 근거로 이른바 '사상논쟁'의 불을 지핀 것이 그것이다.

그 과정에서 '북한에는 공산당이 있고 남한에는 공화당이 있다'는 등의 공세가 가해지기도 했다. 이에 맞서 박정희는 "싸우다 힘이 부족하면 빨갱이라고 모략을 하는 것은 과거의 한민당이 주로 쓴 수법인데---3권을 쥐고 있는 최고회의 의장을 빨갱이로 모는 구정치인들이 정권을 잡는다면, 앞으로 우리나라에는 그들이 밉게 보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빨갱이로 몰리는 무서운 분위기가 될 것"이라고 반격하고 나섰다.

선거를 마친 후 박정희와 윤보선은 축하와 위로를 교환했고 색깔 논쟁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그의 통치 기간 내내 공포의 마녀사냥이 연출되었다는 점에서 박정희의 탁견은 가히 놀랄만하다.

이처럼 이 모든 색깔 공방은 한 마디로 '웃기는 짜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자체로 시대착오적일 뿐만 아니라 역사의 실체적 진실을 왜곡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말살시켜야 할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보수정치권의 이합집산 역시도 그러하다.

'끊임없이 반복하면 네모꼴도 원이 된다'는 히틀러 치하 괴벨스의 선전술을 통해 국민의 눈을 멀게 하고 무고한 사람들에게 돌팔매질을 하도록 강요해 온 우리의 '일그러진 영웅들'. 국가 폭력과 집단적 광기, 가공할 만한 인간 파괴의 실상과 자기검열적 인격분열증 등은 바로 그 결과였다.

사람도 세상도 변하고 있는 지금, 이인제가 포문을 열고 이회창이 가세한 지금의 논쟁은 논쟁의 본뜻을 훼손하고 있는, 천박한 수준의 '미친 개 물어뜯기'에 불과하다.

또 철지난 옛 노래를 흥얼거리며 악취나는 악마의 주술을 끄집어내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철부지 정치인들이 여전히 폼을 잡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시대적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이제 그만 탐욕의 화신이기를 그치고 생산적인 이념과 정책 논쟁의 장에 떳떳하게 나설 것을 두 이씨에게 권고한다. 언제까지 '아 옛날이여'를 외치며 국민 건강을 해치고 역사를 거스를 것인가.
[82호] 4.8 ~ 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