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호[정치-색깔 정치 이념 정치]이인제도 사회주의자?

조준상/편집위원 sang21@hani.co.kr
디제이 정권이 좌파적 정권이란다. 한나라당 이회창씨 입에서 나온 말이다. 의약분업, 건강보험 재정통합, 공교육 평준화 정책, 빅딜 정책, 관치금융, 금융 국유화 등 7가지가 좌파정책이란다. 웃기는 짬봉이다. 애들 장난 하는 것도 아니고, 명색이 이 나라 제1당의 대통령 후보를 자임하는 자가 내뱉는 말이다.

이씨의 잣대 아래에서는 누구나 좌파가 되고 사회주의자가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한국 국민은 지나치게 평등의식이 강하다. 그래서 좌파적이다.'
'1998년 금모으기 운동을 봐라. 한국 국민은 지나치게 애국심이 강하고 집단주의적이다. 그래서 좌파적이다.'
'비지스의 <할러데이>를 들으며 권총으로 자살했던 탈주범 지강현이나, 희대의 살인극을 일삼았던 지존파 등은 부유층에 대한 적대감이 너무 강했다. 그래서 좌파적이다' 등등.

내친 김에 더 나아가 보자.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혼자서는 못 살고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다. 공동체, 그런 거 얘기하면 좌파적이다.'
'저 사람은 너무 친절하다. 그러니 좌파 운동권이다.'
뭐 이런 식이다.

그러면 민주당이라고 다르냐. 천만의 말씀이다. 사실 이회창씨에 '극우적' 영감을 한껏 불어넣은 이는 이인제씨다. 이인제씨는 노무현씨를 계급의식을 선동하는 급진 과격 좌파라고 하고 민주당을 좌파정당으로 개조하려 한다고 비난했다. 같은 이씨끼리 음모라도 꾸민 모양이다.

이회창씨의 '좌파적' 운운 하는 것에 대해 이인제씨가 뭐라고 그런 줄 아나? "기회주의적 발상"이란다. 엄연히 '좌파적 운운' 발언의 정통성은 자기에게 있는데 왜 가로채냐는 것이다.

'좌파적 운운' 발언의 원조(따지고 보면 이는 한나라당 김만제 전 정책위의장이 원조이긴 하지만)인 이인제씨에게 한 마디 해보자.

민주당 대선후보 전북지역 국민경선을 앞둔 지난 3월28일의 일이다. 이인제씨는 노무현씨가 89년 현대중공업 "불법 파업 현장에 가서 계급의식을 고취시키며 선동한 것이 페로니즘(대중영합주의)이 아니냐"고 힐난했다.

이씨 역시 그 똑같은 비난을 당해도 싸다. 이씨가 기억할지 모르겠다. 93년 5월18일 당시 노동부장관이던 이씨는 '무노동 부분임금'의 원칙을 정한 대법원 판결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가, 재계와 정부, 그리고 당시 여당이던 민자당 안에서 십자포화를 맞았다. 그 결과 6월23일 국무회의는 "당분간 무노동 부분임금논의를 중지"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그 사이 이씨는 노동부장관의 신분으로 당시 현대그룹 사업장의 잇단 파업으로 어수선하던 울산을 찾았다. 노조 위원장의 직권조인으로 들끓고 있던 현대정공 노조 사무실에 들러 "직권조인 과정의 진상을 철저히 밝히겠다"며 대중에 영합하는 발언을 했고, 이는 파업 수습의 계기가 됐다.

대중영합에 성공한 이씨는 당내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고, 7월15일 "파업기간 중 임금 지급 여부는 법원 판결 등을 고려해 노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사항"이라는 명분 있는 결론을 따냈다.

그때 이씨에겐 "너무 진보적 개혁을 하는 장관"이란 부담스런 딱지가 붙었다. 당연하다. '무노동 부분임금'이란 민감한 사안을 '5·18'에 맞춰 추진하겠다고 발표하고, 파업 현장에까지 찾아가 노동자를 위로하다니, 이런 기억을 머릿 속에서 깨끗이 지우고 싶겠지만 이씨는 전형적인 대중영합주의자였고 좌파였다. 이씨가 '사둔 남말' 하지 말고 스스로 '좌파'였음을 돌아볼 까닭이 여기에 있다.
[82호] 4.8 ~ 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