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호[정치-색깔 정치 이념 정치]진보에 대한 왜곡 비난 중단하라

이호곤/송파을지구당 사무국장
며칠 전 우연히 펼쳐든 한 일간지 칼럼에서 보수적 자유주의자의 대표적 논객인 강준만 교수의 글을 읽었다.

'나는‘보수’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다 평등하게 사는 게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자본주의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본주의 타도’에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이른바 ‘신자유주의’에 대해서도 전면 거부하기보다는 그 명암(明暗)이 있다고 생각한다. '라고 글을 시작한 강준만씨는 자신 같은 보수주의자가 ‘급진’'혁신’'과격’으로 통하고,‘극우파시스트’라 불려 마땅할 사람들이 스스로를 '자유주의자’라고 주장하고 그 주장이 먹혀들기도 하니 말이 되느냐고 항변하면서 그게 말이 되는 한국 사회는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나라들 가운데‘이념의 인플레이션’ 현상이 가장 심한 나라임에 틀림없다고 했다.

자신의 이념과 정책을 자유주의적 보수주의자라고 명백하게 밝히면서 진보주의자와 분명한 선을 긋는 강준만 교수의 솔직함은 좋다. 그리고 보수적 자유주의자 마저 진보주의자로 몰리는 우리의 현실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도 옳은 이야기다.

그러나 이런 '말도 안 되는 현실'은 극우파시스트세력이 자신들의 장기지배를 위해 한국전쟁을 경험한 국민들에게 좌파나 진보주의자 일반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심어놓고 극우파시스트라는 자신들의 이념적 정체성을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로 숨기는 속에서 형성되어 왔음을, 상식이 있는 학자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그러므로 좌파나 진보세력에 대한 부당한 누명을 이용하거나 그대로 두고 보면서 우리 사회의 '이념 인플레이션' 또는 '이념적 정체성에 대한 왜곡'이 고쳐지길 기대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런데 강준만 교수는 자신과 같은 보수적 자유주의자들의 누명을 벗는 것에만 급급 하느라 함께 누명을 쓴 진보주의자들의 누명을 벗겨줄 생각은 않는다.

오히려 보수 극우세력과 별반 다르지 않게 우리 진보주의자들의 이념적 정체성을 왜곡하고 있다. 평등과 자본주의에 대한 진보주의자의 생각에 대해 오해의 소지가 많은 한마디 말을 내뱉고는 비현실적이며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글을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보수주의자들끼리 벌이는 색깔논쟁에는 언제나 '좌파나 진보는 나쁜 것이다. 나는 그런 나쁜 부류가 아니다'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것이 노무현을 둘러싼 최근의 색깔논쟁에 대한 나의 불만이고 강준만 교수가 쓴 글의 첫머리를 읽는 순간 기분이 나빴던 이유다.

나는 진보주의자로 민주노동당의 당원이다. 나는 남한사회의 보수세력에 반대하고 미국의 제국주의적 정책에 반대한다. 그러나 '무엇에 대한 반대'가 나의 이념적 정체성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나의 이념적 지향은 딱 한마디로 무어라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생태주의의 기본 이념을 존중하는 민주노동당 강령의 기본정신과 비슷하다.

나는 그러한 이념적 가치들이 남한 민중의 이해와 일치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다음과 같은 이념 중 무엇이 바람직하지 않거나 비현실적인지, 또는 과격한 것인지를 강준만 교수에게 묻고 싶다.

나는 진보적 민주주의자다.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정신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 즉, 상대를 함께 발전해가야 할 인간적 존엄성을 지닌 존재로 인정하는가 그렇지 않는가의 문제다.

그러므로 진정한 민주주의자는 모든 형태의 차별과 억압에 반대한다. 성적 차별과 억압에 대해서는 분노하면서 국내외 독점자본과 민중간의 차별과 억압에 대해 침묵하는 자, 민족적 차별과 억압에 대해서는 분노하면서 자본의 노동에 대한 억압과 차별에 대해 무관심한 자, 자본의 노동에 대한 억압과 차별에 대해서는 분노하면서 성적 약자나 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하지 않는 자, 다수나 전체의 이름으로 소수자나 개인의 인권을 억압하는 자, 힘있거나 높은 권한이나 권위를 지녔다고 약자나 낮은 지위의 사람을 무시하는 자들은 진보적 민주주의자가 아니다.

보수적 자유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사상적 억압과 차별, 시민적 권리의 제한에 대해서는 분노하면서 진보주의자들이 요구하는 민주주의적 내용에 대해서는 입을 다무는 제한적이고 기회주의적이고 불철저한 민주주의자들이다.

그래서 노동문제를 바라보는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의 차이는 노동자를 사용하다가 필요 없으면 물건처럼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어떤 경우에도 함께 서로의 발전을 도와가야 할 존엄한 인간으로 바라보는가 하는 문제, 즉 자본의 논리보다 노동자의 인권을 존중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라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처럼 민주노동당의 당명에 붙은 '민주'는 새천년민주당의 '민주'와 같지 않다. 민주노동당의 민주주의는 남한 민중의 이익에 부합하는 진보적 민주주의다. 정권재창출에 나선 민주당의 민주주의는 남한 보수지배세력의 일 분파의 이익에 부합하는 민주주의다.

나는 땀흘려 일하는 사람들의 노동의 가치를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고, 그들이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모두 평등하다고 생각한다. 그 측면에서 보면 나는 사회주의자다.

예를 들면, 병원이나 지하철 노동자들의 파업을 두고 언론에서, 보수 정치인들이 '환자의 생명'이나 '시민의 발'을 볼모로 삼는다고 하지만 나는 거꾸로 환자의 생명을 돌보는, 또는 시민의 발을 움직이는 그토록 소중한 노동을, 사회에서 꼭 필요한 노동을 제공하는 사람들의 보다 나은 인간다운 생활이나 권리를 위해서라면 일시적 불편과 손해는 당연히 참을 수 있다고 본다.

또한 몇 달에 걸친 농민의 땀과 자연의 혜택이 어우러져 풍작을 이룬 농산물을 즐겁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축복 받을 일이다. 그런데 시장에 들어서면 농민의 노동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나 같은 진보주의자들에게 자본과 시장의 논리를 존중할 것인가 아니면 땀흘려 일한 사람들의 노동의 가치를 존중할 것인가를 선택하라면 우리는 분명 후자를 선택한다.

나는 어떤 사람이 자본가라고, 정치가라고, 공직자라고, 성직자, 사회운동가, 군인이라고 그가 그 사회에 특별히 더 소중한 노동을 제공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직업 그 자체가 더 많은 사회적 보상과 지위를 가져다 주는 특권 계급 계층이 존재하고 있다면 그것은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가 아니다.

보수주의자들은 '이러한 땀흘려 일하는 사람들의 노동에 대한 존중' '특권 계급의 철폐'라는 진보주의자들의 주장을 '무조건적인 평등주의로' 왜곡하면서 그들 스스로 이 사회의 특권 계급으로 남아 있고자 한다. 자유경쟁에서 승리하면 독점적 특권을 누리게 된다.

시장에서 승리하는 자들의 특권 사회가 바로 신자유주의자, 보수주의자들이 바라는 사회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보수 정치가들은 이를 옹호하고 민주노동당의 정치가들은 이에 반대하거나 맞서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당명에 괜히 '노동'이 붙어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환경의 가치를 존중하는 생태주의자다. 생명진화의 초기 시절까지 거슬러 가면 우리는 모든 생명 있는 것들과도 같은 피를 나눈 형제일 것이다.

'생명과 자연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 인간의 본능 깊숙이 자리잡고 있으며 이것은 인류가 오랜 기간 진화해오면서 유전되어 온 것'이라는 어떤 과학자의 주장처럼 생태계파괴의 문화와 질서는 불과 얼마 안 되는 사이에 인간이 만들어 낸 최근의 사회적 문제일 뿐 생물학적으로 자연스러운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인간의 물질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외적 성장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내면의 아름다움과 성장을 함께 추구하는 사람이 진보주의자다.

무한한 욕망과 소비를 자극해야만 성장하는 자본주의의 능률과 편의만을 보고, 그것의 환경 파괴적 측면을 심각하게 느끼지 못하는 성장과 개발 지상주의자는 진보주의자가 아니다.

진정한 친환경주의자, 생태주의자들은 민주노동당의 당원이 되어야 하며 모든 민주노동당의 당원은 친환경주의자, 생태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국내외 독점자본의 이익과 생태계의 이익이 충돌할 때 대부분의 보수 정치가들이 어느 편에 설 것인지는 뻔하다.

해방 이후 남한 사회는 줄곧 보수세력이 지배해왔다. 60년 4월 혁명직후의 짧은 기간을 제외하고는 1987년 이전에는 극우 보수주의적 이념이 우리 사회의 주요한 이념이었다. 그리고 1987년 이후에는 보수적 자유주의 이념이 우리 사회의 주요한 이념이 되었다.

보수적 자유주의자들의 분열로 극우보수주주의자 노태우가 권력을 잡았지만 이 대세를 바꾸어 놓지는 못했다. 극우 보수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이념과 정책만으로 정권을 잡거나 국가를 운영할 수 없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즉, 보수 자유주의의 이념적 주도권이 관철되는 속에서도 극우 보수적 이념이 여전히 강고 하게 자리잡고 있고 진보적 이념의 성장과 도전이 점점 커지고는 있지만 아직은 미약한 것이 남한 사회의 이념적 현실이다.

보수 정치세력이나 보수 정치인들은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모든 보수 정치세력이 '중도 보수' '개혁 보수'를 자처하면서, 단독으로 집권을 하지 못하고 보수연합을 통해 집권하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의 이념과 사상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가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려고 나선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반이회창 보수연합의 대표가 되어 집권할 가능성이 큰 인물이기 때문에 보수언론을 포함한 모든 보수세력이 '검증'을 하려고 나서는 것이다.

민주당의 지지자들은 민주당의 정권 재창출을 위한 대표선수를 선발하는 과정에서 민주당의 이념과 정책을 분명하게 하고 그를 가장 잘 대표할 사람이 누구인가를 밝히려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들의 이념과 정책이 가진 한계나 진보주의자들의 이념과 정책이 가진 의의를 제대로 설명할 리 없다.

그것은 우리 진보주의자들의 몫이다. 즉, 남한 사회의 이념적 왜곡과 그 지형을 바꾸는 것은 강준만 교수와 같은 보수주의자들의 '누명 벗기'를 통해서가 아니라 진보주의자들의 사상투쟁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어떤 이념이든 그것은 특정한 사회세력의 이해와 일치하며 그를 대변하고 있다. 이회창의 이념은 5,6공 세력을 정치적 기반으로 한 남한의 강경 보수세력의 이해와 일치한다.

민주당의 이념과 노무현의 이념은 다를 수가 없으며 남한의 온건 보수세력을 대변한다. 그것이 현실에서 어떻게 남한 민중의 이익과 배치되는 지를 김대중 정권은 충분하게 보여 주었다. 그럼에도 이회창은 민주당과 노무현을 좌파와 손잡은 의심스러운, 믿을 수 없는 보수라고 몰아붙이고, 민주당과 노무현은 누명 벗기에 바쁘다.

나는 모든 보수주의자들에게 진보세력이 가진 이념의 현실적 의미, 계급적 의미를 제멋대로 왜곡하지 말도록 경고한다. 정말 제대로 된 색깔 논쟁을 하고 싶으면, 각 색깔의 대표자들이 TV나 신문, 잡지 등을 통해 각자의 색깔이 무엇인지,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어떤 것인지 제대로 한번 논쟁을 붙어보자. 진보주의자의 이념이 얼마나 멋진 것이며 남한 민중의 이익에 얼마나 잘 부합하는가를 분명하게 말해주겠다.
[82호] 4.8 ~ 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