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진아 dodani@kdlpnews.org
'4.2잠정합의안 폐기와 민주노총 지도부 사퇴.'
38일간의 발전노조 투쟁은 예상치 못한 결론으로 매듭지어졌다. 잠정합의에 대해 민주노총 지도부가 잘못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이 같은 결정은 더 큰 조직적 혼란과 분열을 막기 위한 최선의 선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선 "국민에게 사과" "법과 원칙을 준수" "노사화합을 바탕" 등이 언급된, 마치 노사평화선언을 떠올리게 하는 '전문'을 비롯 "발전소 민영화 관련 교섭은 논의대상에서 제외한다" "민형사상 책임과 징계가 적정한 수준에서 해결되도록 노력한다" 등의 내용이 담긴 잠정합의안은 "과연 파업을 유보시키면서까지 합의할 수밖에 없었던 충분한 내용이었는가"하는 점에서 발전 노조 조직 내부의 엄청난 반발과 상급단체에 대한 불신을 불러왔다.
특히 쟁점이 됐던 민영화 문제에 대해 "논의대상에서 제외한다"고 합의한 것은 '민영화 철회'라는 애초 목표에서도 훨씬 후퇴된 내용이며 노정 양측이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민영화에 합의한 것이 아니"며 "이번 협상의 논의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뜻"이라는 민주노총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잠정합의된 바로 다음날 정부가 기자회견을 통해 "발전소 민영화 관련 교섭은 논의대상에서 제외한다고 합의함에 따라 발전회사의 민영화를 계획대로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혀 민주노총의 주장이 설득력이 매우 부족하다는 것을 입증해 줬다.
또 "징계 최소화"로 합의했던 철도노조에서 파업 이후 대량 징계가 내려진 것에서 보듯 복귀 이후 현장에서 대대적인 탄압이 예상됨에도 징계 "최소화"조차 관철시키지 못한 채 "적정한 수준"으로 합의한 것 역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이와 관련 민주노총 허영구 위원장직무대행은 3일 "동의할 수 없는 내용에 잠정합의를 한 것과 민주노총 총파업을 앞두고 교섭 만료 시간(낮 12시)까지 넘기면서 교섭에 매달린 것처럼 보인 것과 파업 유보 결정을 내렸던 것 등 지도부 판단에 오류가 있었다"고 인정했다.
잠정합의안이 갖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에도 불구하고 이번 발전노조의 투쟁은 김대중 정부의 공기업 사기업화 정책에 노동자들의 조직적인 저항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를 지닌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사장단들이 정한 복귀시한을 넘기면서까지 38일간 산개투쟁하면서 흔들림없는 대오를 유지하고 있었던 발전노동자들의 투쟁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또 이를 통해 공기업 사기업화의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만들어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발전노조의 파업을 통해 국민의 80%가 발전소 매각을 반대한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노동계는 물론 시민사회단체와 학계 문화예술계 등의 폭넓은 지지를 이끌어냈던 것은 이후 발전노조와 민주노총이 공기업 사기업화 저지투쟁을 벌이는데 있어서 중요한 투쟁근거이자 동력으로 삼을 수 있는 대목이다.
또 민주노총의 총파업이 '선언'으로 그치지 않고 각 노조들이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부분파업, 간부파업, 총회투쟁, 조퇴투쟁 등으로 발전노조 파업을 지지, 엄호하려고 했으며 그 성격이 '정치 총파업'이었다는 점에서 발전노조의 투쟁이 민주노총 전체로 확대, 발전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같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 것과 비례해서 그 아쉬움과 문제점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투쟁의 성과는 장기간의 치열함에도 불구하고 사라지고 조직 내부 갈등만 증폭시키고 있는 현실은 민주노총, 공공연맹의 지도부 사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파업은 '일단' 끝났으나 끝나지 않은 정부의 사기업화 정책에 맞서는 투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계속되는 투쟁의 일환으로서 이번 투쟁을 평가하고 조직을 추슬러 향후 투쟁을 충실하게 준비해야 하는 과제가 놓여 있다.
민주노총은 지난 3일 중앙집행위원회에서 "발전소 매각을 강행하거나 현장에 대한 전면탄압이 진행될 경우 유보된 총파업투쟁을 전개하겠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발전노조가 복귀하고 총파업이 한번 유보된 상황에서 다시 총파업을 조직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민주노총은 8일 중앙위원회에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 비대위 체계로 전환해 5월 임단투를 포함한 이후 투쟁을 이끌어나갈 예정이다. 하지만 지도부 사퇴에 따른 임원 선거, '월드컵 여론몰이' 등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얼마나 힘있게 이후 투쟁이 조직될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또 이미 해임이 확정된 발전노조원 3백42명을 비롯 3월 25일 기준 징계대상자 3천4백34명, 체포영장 발부자 25명, 사측에 의해 고발된 8백96명 등에 대한 처리문제 역시 발전노조는 물론 민주노총이 함께 해결해나가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82호] 4.8 ~ 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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