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호[기획연재 Before & After-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차라리 농약먹고 죽어버릴까"

이지안 mulu@kdlpnews.org
여의도에서 중계동까지는 한시간 30분이 넘게 걸렸다. 서울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가 가장 많이 살고 있다는 노원구의 어느 아파트촌으로 이흥남(57)씨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흔들리는 지하철에서 기자는 줄곧 그 전날 이씨가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로 농약을 들고 찾아왔다는 얘기를 떠올렸다. 옆집 사는 아줌마와 함께 현관문을 열어놓고 기자를 기다리고 있던 이씨. 그의 11평짜리 영구임대아파트는 너저분한 살림살이와 손자의 장난감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서른 일곱에 위암으로 남편을 잃고 생활보호 대상자가 된 이씨는 지난해 수급자 선정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1백50만원의 월수입이 있는 작은아들이 이씨를 충분히 부양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막내아들은 이혼 후 매달 아이의 양육비로 50만원, 아파트 월세로 40만원을 지출했고 국민연금이나 각종 공과금을 떼고 나면 자신의 생활비조차 모자라 이씨를 부양하기 힘든 형편이었다.

이씨는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병원진료를 받을 수 없는 점을 수급자 탈락 이후 겪는 가장 큰 고통으로 꼽았다. 장애인 1급 아들과 2급 며느리를 돌보면서 여섯 살 난 손자까지 키우는 이씨는 오랫동안 원형탈모증과 골다공증으로 고생을 하던 터였다.

그뿐이 아니다. 당장 집에서도 쫓겨나 거리로 내몰릴 상황이다. 관리소에서 수급권 탈락자에게 보증금 1백30만원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매달 9만원 하던 월세도 16만원으로 올랐다. 이제 이씨의 바람은 다시 수급자로 '인정'받는 것, 딱 한가지다.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거예요. 손자는 고아원에 보내고 나는 농약 마시고 죽어버리는 게 차라리 낫겠어요." 이씨가 항상 가지고 다니는 농약병을 꺼내 보이자 옆집 아줌마도 "나랑 같이 죽자"며 한마디 거들었다.

듣고 보니 옆집 아줌마 이모(64)씨의 사정도 딱하긴 마찬가지. 정육점을 하다가 큰 빚을 지게된 아들이 며느리와 가출하고 아직 어린 손자와 함께 살고 있다는 이모씨는 6년 전 수급자에서 탈락된 이후 "아예 안 먹힐꺼라 생각해서 신청조차하지 않았다"고 했다.

취로사업으로 이씨가 한달 버는 돈은 고작 25~30만원인데 반해, 한달 드는 생활비는 적어도 70~80만원. 이모씨는 "앞으로 어떻게 살라는 거냐"며 한숨을 내쉰다.

이 아파트 101동에 살고 있는 생활보호대상자는 어림잡아 50여 가구. 총 1백50가구의 1/3이 생활보호법상의 영세민으로 선정돼 영구임대아파트를 지급 받은 경우다.

그러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로 법이 바뀐 이후 이들 중 절반은 재산기준, 부양의무자 기준, 근로능력 판단기준 등으로 선정하는 정부의 엄격한 수급자 심사에서 탈락돼 현재 보증금 1백30만원을 얹어주며 지내고 있다.

이흥남씨는 다른 사람을 소개시켜 준다며 옆집으로 기자를 이끌었다.
2급 시각 장애인인 손준신(63)씨 역시 20년 동안 생활보호대상자였다가 지난해에 탈락했다.

그의 가계는 진료비 30만원에 아파트 월세도 20만원으로 올라 매달 50만원씩 적자를 본다.일자리를 구해보려고도 해봤으나 그의 말대로 예순 넘은 장애인 노인에게 일을 주는 곳은 없어 그냥 막막할 따름이다.

손씨의 가장 큰 문제는 수급자에서 탈락되는 바람에 장애인 수당도 끊겼다는 것. 그는 "영세민에서 떨어뜨렸으면 장애인 수당이라도 달라"면서 울분을 토했다.

중계동의 영구임대아파트에서 만난 이들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모든 국민의 최저생계를 보장하는 제도로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여러 개선책이 필요하겠지만, 그 중에서도 부당하게 수급자에서 탈락된 사람들이 구제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시급히 모색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아닐까.

수급권 선정 기준이 완화될 필요가 있다는 시민사회단체의 외침에 절실히 공감했던 하루다.
[82호] 4.8 ~ 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