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호[떠난 자와 남은 자들③]박창수열사 아버지 황지익ㆍ어머니 김정자

정경섭 jks@kdlpnews.org
"우리 또 노동자 노래 부르자, 노동자 노래 또 뭐 있노." 소주가 4병째 바닥을 드러냈다. 어머니는 계속 철의 노동자를 불렀다. 24시간 맞교대로 보일러 기관사를 하며 가족을 책임지고 있는 아버지는 "산자여 따르라"는 말이 가장 듣기 싫다고 했지만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라며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술이 어느정도 오르자 어머니는 "우리 창수방이야"라며 11년 전에 죽은 아들의 사진이 걸려 있는 방으로 기자를 안내했고, 아버지는 아들의 기사가 실린 책자를 이곳저곳에서 꺼내주며 눈물을 글썽였다.

떠나는 기자의 손을 잡은 어머니의 손이 가늘게 떨린다. 오늘 밤, 부부는 술에 취할 것이다. 의문사. 90년, 한진중공업 노조 위원장이었던 박창수(당시 33세)의 죽음은 아직까지 의문사로 남아있다. 어떻게 죽었는지 누구 죽였는지, 1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의 죽음에는 물음표가 붙어 있다.

79년 부산기계공업고등학교 졸업 후 대한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 배관공으로 입사, 90년 7월 어용노조를 깨고 한진중공업노조 위원장 당선, 91년 대기업연대회의에서 중심적인 활동, 91년 제3자개입금지와 집시법위반으로 구속, 그해 5월 4일 구치소에서 의문의 상처를 입고 안양병원에 입원 후 이틀 뒤인 6일 병원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 경찰은 박창수가 병원옥상에서 투신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황지익(66)씨는 박창수의 친아버지는 아니지만 박창수가 4살되던 해부터 30년 가까이 키워왔기 때문에 큰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어머니 못지 않다.

"지금도 아버진 술만 자시면 울어. 내가 창수 죽였다고 술만 자시면 울어. 창수가 인문계 고등학교 가고 싶어했는데 우리가 보낼 형편이 돼야지. 그래서 아버지가 대학을 갈 형편이 아니니까 인문계 말고 공업학교로 가라고 했거든. 아버진 창수가 인문계 갔으면 공장에 취직하지 않았을 테니까 죽지 않았을 거라고 말해."

부부는 몇시간째 기자에게 계속 말을 하고 있다. 마치 그날의 기억을 자꾸만 되살리려는 듯, 부부는 자세하게 당시의 일을 설명했다. 자식의 죽음을 떠올리면 가슴이 찢어지지만 의문의 죽음을 당한 자식의 억울함을 밝혀야 하기에 91년 5월 4일부터 6일까지의 얘기가 계속 이어졌다.

91년 5월 4일, 봄기운이 가시고 더운 여름으로 접어들던 그때, 부부는 구치소에 있어야 할 큰아들이 병원에 있다는 전화를 받았다.
"병원에 가니까 창수가 등에 파스 좀 붙여 달라고 했어. 그래서 등에 파스를 붙이는데 자꾸만 어머니 거기 괜찮습니까, 어때요라고 묻는거야. 아무 이상 없다고 하니까, 정말 괜찮아요하고 계속 묻더라고. 그러다가 파스를 붙이려고 등을 만지니까 갑자기 창수가 '억'하고 소리를 지르는거야. 안쪽으로 골병이 든거지."

이틀 뒤에 큰아들은 싸늘한 시신으로 변해있었다. 옥상에서 투신했다는 아들의 손목에는 링겔주사가 그대로 꽂혀 있었고 주위에는 피한방울 없었다. 큰아들이 옥상에서 뛰어내렸다면 링겔병 파편이 3, 4미터 밖까지 튀어 있어야 정상인데 파편조각은 1미터를 넘어서지 못했다. 큰아들의 죽음은 온통 의문투성이었다.

"창수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집사람하고 병원에 갔어. 집사람은 창수가 죽은 지 모르고 있었지. 병원에 도착해서 경찰이 창수시신을 리어커에 싣고 가는 걸 창수 동생들이 붙잡고 난리를 치니까 그때서야 아들이 죽은 걸 알았지."

"그래, 난 몰랐어. 창수동생들이 울면서 리어커를 잡고 있어서 그때 저기 리어커에 누워있는 사람이 창수라는 걸 알았어. 다가가서 흰보자기를 벗겨 보니까 우리 창수가 누워있었어."

경찰은 시신을 탈취하려는 시도가 무산되자 7일 새벽, 영안실에서 박창수의 시신을 지키던 유가족, 학생, 노동자들을 향해 사과탄을 던지기도 했다.

난생처음 맡아보는 매캐한 연기, 질식할 것만 같은 고통스러움 속에서도 부부는 아들의 시신을 지켰다. 하지만 새벽녘 백골단이 영안실 벽을 부수고 난입해 유족들과 시신을 지키는 노동자, 학생들을 밖으로 내보내고 강제 부검을 실시했다.

"우리 아들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자살이라고 했어. 우리 불쌍한 창수를 말이야."
불과 11년 전, 대한민국의 한 병원에서 벌어진 일이다.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법이 통과 됐는데 지금은 조사가 잘 이뤄지고 있나요."
"<말>지에도 <진보정치> 기사가 있더만(말지 4월호에 진보정치에서 연재되고 있는 진중권의 좌우지간이 실려 있었다). 거기에 옛날 안기부에 있던 정형근이가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출두하라는데 안 했다고 썼잖아. 그런 놈들이 조사를 거부하니까 진상이 밝혀지지 않지. 아직 멀었어."

부부는 5월이 오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올해는 우리아들을 죽인 놈들을 밝혀 내겠다"고 매년 다짐을 한지가 벌써 11년째다.

"인갑(33·박창수의 동생)이 결혼주례 선생이 권영길 대표였어. 인갑이도 민주노동당 당원이고. 창수의 억울한 죽음을 풀기 위해서라도 민주노동당이 잘돼야지. 자, 한잔 받아."
어머니가 기자의 잔에 술을 채웠다.
[82호] 4.8 ~ 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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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사 , 진상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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