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호[진보정치가 만난 사람]"밑에서 일할 사람 키워야 해요...말도 쉽게 해야 하고"

이광호 madger@kdlpnews.org
'가난'은 그에게 극복 또는 벗어남의 대상이 아니라 '선택'의 대상이었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자가 된다는 것은 그 대열에 일조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목소리는 부드럽지만 단호하다)

빈민촌 아이들에게도 "너희들이 부자가 될 가능성은 없다"고 가르친다. 그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또다른 것은 희망이 봉쇄된 이 체제에서 가난한 자들과 그들의 자식들이 버텨내기 위해서는 "약한 사람들은 혼자서는 안 되기 때문에 함께 해야" 할 수밖에 없는 현실.

그렇다고 그가 자본주의 '타도'를 위한 어떤 큰 담론들을 말하지는 않는다. 빈민과 함께 스스로 빈민이 되어 살아가지만 함께 사는 그들을 어떤 깃발 아래로 모이도록 '조직'할 생각도 없다.

체념했나? 결코 아니다. 그럼 희망은 뭐지? 그는 희망을 잘 얘기하지 않는다. 가끔 사용할 때도 조심스럽다. 섣부를 희망을 얘기하는 경박함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듯하다.

기자가 청소년 시기에 감동 먹으면서 읽었던 소설 가운데는 까뮈의 <페스트>가 있다. 페스트가 창궐하는 오랑시에서 그것과 맞서 싸우는 의사 리외는 당시 고등학교 1학년생에게는 어른이 돼서 닮고 싶은, 아니 그렇게 돼야 하는 어떤 가치로 다가왔다.

흔들리지 않고, 사려 깊고, 인간다운 삶에 부당하게 간섭하는 일체의 것들에-신까지도- 분명하게 항거하지만 자신을 과시하지 않는,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눈과 세상을 사랑하는 심장을 함께 가진 그런 사람.

그 의사는 그런 자신을 있게 만든 것이 무엇이냐는 소설 속 신문기자의 물음에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것은 가난입니다."
무척이나 가난했던 시절 그것은 감미로운 교훈이었다. 나도 그 의사처럼 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져 있으므로. 지금 기자가 그 의사처럼 됐다는 얘기는 전혀 아니지만.

김중미. 그도 <페스트>를 읽었다. 그리고 가난한 시절을 보냈다. 기자는 2시간 남짓 인터뷰를 하면서 그에게 소설 속의 의사 모습을 언뜻 느꼈다. 그래서 그에게 그 의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따위의 질문을 하지 않았다. 이 느낌은 솔직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 자체로 간직하고 싶어서.

올해 우리 나이로 마흔 살이 된 김중미는 문화방송의 '느낌표'의 '책을 읽읍시다' 코너에서 첫 번째로 소개돼서 20만부를 훌쩍 넘은 판매 부수를 기록한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쓴, 선하게 잘 생긴 남편과 귀여운 두 딸과 함께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이다. 괭이부리말은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빈민 지역의 이름.

'상업적' 방송의 오락 프로그램에 자본주의 체제를 일상 삶의 과정으로 대들고 있는 사람의 '도시 빈민 아이들'에 관한 기록이 소개는 현실. '포스트 모던'하다. 어쨌든.

그가 최근 민주노동당 당원이 됐다. "와, 잘됐네. '진보정치에서 만난 사람'에 한번 모셔야겠군." 중앙당 조영실 부장이 기자의 책상 옆에 와서 즐거운 뉴스를 말씀드린다면서 그 소식을 전해줬을 때 즉각적으로 발동된 '직업병적 반응'이었다. 그리고 개인적 즐거움이기도 했다. 아들 녀석 덕분에 그 책을 이미 읽었던 터였다.

'느낌표'를 본 기자의 아들 녀석이 동네 큰 책방에서 사달라며 고른 책이 <괭이부리말...>이었다. 당시 기자는 느낌표라는 프로그램은 한번도 못 본 상태였지만 신문광고를 통해서 그런 책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평소와는 달리 만화책이 아닌, 그것도 '창비'에서 낸 책을 골라든 아들녀석을, 사정도 모르면서 대견해했다. 그런데 책을 산 날 밤을 꼬박 샌 사람은 아들이 아니라 '아빠'였다.

그 책 때문에. 가끔 눈시울이 붉히면서.
그런데 그 책을 쓴 사람이 당원이 됐다니 어찌 아니 기쁠손가. 적지 않은 후원금도 쾌척했다니 이것도 반가운 소식이고.

4월 초. 봄볕 속을 차로 2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인천시 강화군 양도면 삼흥2리. 인천 괭이부리말이 아니었다. 괭이부리말의 아이들 공부방인 '기차길옆 작은 학교'에서 강화도에 있는 '강화농촌공동체'로 그의 현장이 바뀌었다. 물론 괭이부리말 작은 학교 일도 함께 하고 있다.

동갑내기 남편, 인천서 같이 일하면서 만난 남자, 최흥찬은 농촌공동체 일에 전념하고 있는 중이다. 이름만큼이나 예쁜 두 딸. 큰딸 단비는 초등학교 5학년, 작은 딸 솔비(7)는 유치원에 다니고 있다. 둘은 지금 2km가 넘는 학교-유치원도 그 안에 있다-를 걸어다니고 있다.

"인터뷰하는 거 아주 싫어해요." 동네-괭이부리말을 그는 이렇게 말했다-에 대해서 왜곡될 우려가 크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유. 실제로 그는 <괭이부리말...>이 문화방송에 의해 '선택'된 이후 이 동네에 대해 방송이 왜곡시켰다고 말했다. 동네가 과도하게 미화됐으며 과장되게 알려졌다는 것.

그 과정에서 남편 최흥찬씨는 담당 PD와 싸움도 많이 했단다. 물론 TV에 책이 소개되고 많은 사람들이 그 책을 사서 읽는 것에 아주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그 책 논픽션인가요?"

"등장 인물은 대부분 실제 있는 사람을 모델로 했지만 처해 있는 현실은 책보다 더 어렵고 힘들어요."

"책에 나오는 아이들과 어른들이 다들 따뜻하게 그려진 것 같던데요."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희망이 없는 팍팍함, 술과 폭력에 찌든 부정적인 모습이 현실이지만 사람들을 사실보다 더 따뜻하게 그린 것은 아녜요. 나는 그들에게서 미미하지만 희망을 봤습니다. 그걸 읽어내야 된다고 생각하죠."

"책에서 나오는 김명희 선생님은 작가 자신 아닌가요?"

"그런 질문 많이 받았는데 그렇지 않아요. 특정의 실제 인물이 아닙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87년부터 24살 나이로 집을 떠나 인천의 빈민촌에서 활동을 시작하면서, 어려서부터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던 그는 가난한 삶을 선택했다.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을까. 괭이부리말에 들어가기 전에 그는 병원 원무과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병원은 원풍모방 회사 바로 앞에 있는 '한림대 부속 한강성심병원'. 80년대 초 원풍모방이 전두환 정권에 맞서 민주노조를 지키려고 투쟁하는 모습을 그는 병원 직원으로 지켜봤다.

얻어터지고 깨져서 병원에 실려오는 여성 노동자들 얘기는 그러나 언론에서는 볼 수 없었다. 또 손이 짤려 들어오는 15세 안팎의 어린 산재 노동자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퇴원 이후 그들의 절망적인 삶을 알게 되면서 그는 우리 사회의 부당함을 목격했고 자신은 그 부당함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기로 했다.

"가난한 사람들의 자립의지는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그에게 "그래도 가난은 극복의 대상이 아닌가요"라고 물어봤다.

"시도를 안 해본 건 아닙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주민을 조직하거나 할 생각은 없었어요. 괭이부리말에 들어오면서 의보통합이라든지, 철거문제 탁아문제 등에 대한 일을 했죠. 근데 단체 중심으로 일을 하다 보면 주민과 멀어질 위험이 큽니다. 주민들보다 너무 앞서 가는 거죠."

그의 말을 정리해보면 주민을 대상화시키지 말고 함께 하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하며, 가난이라든지 노동자나 농촌 문제라든지 하는 것들을 "모두 모아내서" 대응하지 않으면 풀기가 불가능한데 그 모아내는 곳은 정당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92년 14대 총선 때 동네 주민들과 함께 한 민중당 후보지지 활동이 남긴 깊은 상처를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있는 그에게 민주노동당의 탄생은 아주 반가운 일이었다.

92년 당시 동네에서 오랜 기간 활동한 걸 토대로 주민들과 함께 '꿈'을 가지고 '정치활동'을 했으나 "그들에게 남은 것은 배신감과 냉소뿐"이었다. 선거가 끝나자 썰물처럼 빠져나가서는 돌아오지 않고 당의 얼굴들은 집권 여당으로 담 넘어가는 모습을 바라본 가난한 민중들의 분노와 절망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남편이 거들었다. "선거가 끝나고 아무도 안 오더군요. 열심히 뛰었고 사회 의식도 생기고 했는데 그들에게는 이용당했다는 느낌뿐이었죠." 가장 중요한 건 '신뢰'라고 그들은 강조한다.

"민주노동당은 좀 다르겠지 하는 기대가 있습니다. 그러나 섣불리 주민들을 향해 이런 기대를 얘기하거나 당과 관련된 활동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건 현실적 접근이자 지혜이기도 했다. 당비 내기가 부담스러워서 이제야 당원이 됐다는 그는 당 얘기를 할 때 '기다려왔다. 반갑다. 염원이다' 등의 표현을 함께 사용했다.

"노동운동, 진보정치 운동에서도 배제된 사람들 많이 있어요." 이제 자신의 당이 된 민주노동당에 하고 싶은 말은 "사람을 키워야 해요." 위가 아니라 밑에서 일할 사람들. 2000년 총선, 울산 북구의 실패를 보고 펑펑 울었다는 그는 "주민 하나하나가 내 일로 느끼게 해야 하고 정말 그 일을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을 키워야 합니다."

그리고 인상적인 말을 덧붙였다. "쉽게 말하는 것부터 배워야 합니다." 쓸데없이 어렵게 말하는 '먹물'들의 '속물' 근성을 지적한 것이리라.
인천 괭이부리말에서 함께 일하는 후배들도 이미 민주노동당원이라고 소개하는 그가 우리 당원이 된 것은 아주 기쁜 일이다.
[82호] 4.8 ~ 4.14

태그

정경섭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편집실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