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제트넷], 2002/04/11, 노암 촘스키
일 년 전, 헤브루대학 (Hebrew University) 사회학자 바루크 킴멀링
은 "우리가 두려워하던 바가 실현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은 "미신적 종족주의로 후퇴하고 있다... 전쟁 -"악한 식민
주의" 전쟁- 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인 듯하다". 올해 이스라엘이 난민촌
을 침략한 후, 그의 동료 제에브 스턴헬은 "식민주의 이스라엘에서는...
인간의 생명이 값싼 것이다"라고 어느 글에 썼다. 지도자들은 "자신들
이 사실상으로는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 시대 당시 흑인들의 빈민가
를 백인 경찰들이 점령했던 기억을 상기시키는 식민주의적 정책에 관
여하고 있으면서 전쟁을 주장하는 것을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두 명 모두 당연한 사실을 강조한다. 즉, 종족주의로 후퇴하는 데에 있
어 '인종-민족적 집단들' 간 차이는 없다는 것이다. 분쟁은 35년 간 가
혹한 군사 점령 하에 있던 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다. 정복자는
지구적 슈퍼파워로부터 엄청난 군사적, 경제적 그리고 외교적 지원을
받는 주요 군사 강대국이다. 상대는 외롭고 방어력이 약한데, 이들 중
대부분은 참혹한 난민촌에서 간신히 생존하고 있다. 그리고 "악한 식민
주의 전쟁"에서 행해졌을 법한 잔인한 테러보다도 더한 고통을 현재
받고 있는 이들은 이제 복수심에 찬 끔찍한 테러를 자신들 역시 저지
르고 있다.
오슬로 "평화 협정"은 점령의 양식을 변경시켰지만 기본 개념을 바
꾸지는 않았다. 에후드 바락 정부에 합류하기 직전, 역사학자 슐로모
벤-아미는 "오슬로 협정은 한 쪽이 다른 쪽에 영원히 의존해야 하는
신식민주의 기반 위에 만들어진 것이다"라고 썼다. 바로 직후 그는
2000년도 여름, 캠프 데이비드에서 이러한 조건을 유지한 채 이루어진
미국-이스라엘 제안의 설계자가 되었다. 이 제안은 미국 내 논평가들로
부터 예찬을 받았다. 그리고 이것이 결국 실패하고 폭력이 뒤잇게 된
책임이 팔레스타인인들과 그들의 악한 지도자에게 있다고 (논평가들은)
주장했다. 그러나 킴멀링을 비롯한 기타 진지한 논평가들이 알려주고
있다시피, 이와 같은 주장은 완전한 "사기"이다.
그렇다. 클린턴과 바락은 반투스탄 식(소수민족의 보호령에 제한적
자치를 인정해주는 것-옮긴이) 해결로 나아가는 데 몇 걸음을 진전시키
기는 했다. 캠프 데이비드 바로 직전, 요르단강 서안에 있는 팔레스타
인인들은 200개 이상 지역으로 흩어져 갇히게 되었고 클린턴-바락 협
정이 나름대로의 개선 방안을 제안하긴 했다. 즉, 서로 완전히 분리된
이스라엘 지배 하의 3개 주(州)로의 통합과, 팔레스타인의 생활과 지역
커뮤니케이션의 중심지인 동예루살렘 내 작은 일부를 4번 째 주로 한
다는 것이다. 5번 째 주인 가자에서는 사람들이 거의 감금상태로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것 외에 다른 합의사항은 모호했다. 그래서 지도나 제안
의 구체적 내용이 미국 주류 언론에서 발견될 수 없다는 점은 이해할
만하다.
미국의 역할이 앞으로도 계속 결정적일 것이라는 점에 대해 어느 누
구도 깊은 의심을 품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역할이 무엇이
었는지, 그리고 내부적으로 그것이 인식되어 왔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 표면적 평화를 주장하는 논리는 [뉴욕타임즈] 편집자
들이 대통령의 "괄목할 만한 연설"과 그가 서술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전망"을 예찬하는 속에서 드러났다. (이와 같은 "전망"의) 핵심
요소는 당장 "팔레스타인 테러리즘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점령을 끝내고 팔레스타인 국가의 설립을 허용하기 위해
"유대인 주거지를 동결시키고 그런 다음 점진적으로 뒤로 물러나게 해
새로운 국경을 협상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팔레스타인 테러가 근절된
다면, 이스라엘인들은 "이스라엘이 철수하면 (이스라엘에 대한) 완전한
평화와 인정을 보장하겠다는 아랍 동맹의 역사적 제안을 보다 진지하
게 받아드릴 의향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먼저 팔레스타인 지도자들
은 자신들이 "정당한 외교 파트너"라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현실 세계는 이와 같은 자기 정당화용 그림과 닮은 점이 별로 없다.
이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PLO와 협상이 없을 것, "추가적 팔레스타인
국가"가 없을 것 (요르단은 이미 팔레스타인 국가이니까), "(이스라엘)
정부가 별도로 지정하지 않는 이상 유데아, 사마리아와 가자의 위상에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요구(부시 1세가 1989년 12월 베이커플랜에서
승인한 1989년 5월 페레즈-샤미르 연합 계획)에 집착하는데, 이러한 태
도는 PLO의 협상 제안과 정치적 해결을 피하려는 데 급급해 하던
1980년대로부터 베껴온 것에 다름 아니다. 이 모든 것은 예전에도 그랬
듯이 미국 주류 언론에서 제기된 바가 없다. 그런 동안 논평은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인간적인 계획을 훼손시키면서 테러에 혼신의 힘을 다
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협소함을 비판했다.
현실 세계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전망"이라는 것의 일차적 장
벽이 일방적인 미국의 거부주의(rejectionism)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아랍 동맹의 역사적 제안"에는 새로운 것이 별로 없다. 주요 아랍국
들, PLO, 동유럽과 소비에트블럭 -사실, 관련된 당사자 모두- 을 포함
해 거의 전세계가 지지한 1976년 1월의 안보이사회 결의의 기본 조건
을 반복하고 있다. 이 결의를 이스라엘은 반대했고, 미국도 거부함으로
써 결국 역사로부터 지워졌다. 결의는 "해당 지역 내 모든 국가들의 주
권, 영토 보전, 정치적 독립성, 그리고 안정적이고 공인된 국경 속에서
평화롭게 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적절한 장치들과 함께..." 국제적
으로 공인된 국경에 대한 정치적 해결을 촉구했다. 이는 결국 팔레스타
인 국가를 포함시키기 위해 확대된 유엔 242의 변형(미국 또한 공식적
으로 그렇게 해석했다시피)인 것이다. 아랍국들, PLO와 유럽으로부터
제기된 이와 비슷한 제안들은 미국으로부터 봉쇄당했으며, 탄압받거나
공적 논의에서 거부됐다.
미국의 거부주의는 그로부터 5년 전인 1971년 2월,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이 이스라엘이 이집트 영토로부터 철수하는 대신 완전한 평화
협정을, 팔레스타인의 국권이나 기타 점령지의 숙명을 언급하지 않은
채 보장하겠다고 제안한 데에서 시작되었다. 이스라엘의 노동당 정부는
이를 지정한 평화 제안이라 인정했으나, 동북 시나이까지 점령지를 확
대하려는 자신들의 의도 때문에 거부했다. 바로 직후, 이스라엘은 (점
령지를 확대한다는 자신들의 의도를) 매우 잔인하게 실천에 옮겼고 이
는 곧 1973년 전쟁의 직접적 원인이 되었다. 이스라엘과 미국은 미국의
공식적 정책에 따라 평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노동당 당수
(이후 대통령이 된) 에제르 바이즈만이 설명했듯이, (이집트의 제안은)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이 "현재 누리고 있는 규모, 정신과 질만큼 존재할
수 없게끔 할 것이다." 이스라엘 논평가 아모스 에론은 사다트가 "이스
라엘과 평화 협정을 체결하고 '안정적이고 공인된 국경 속에서' 이스라
엘의 독립과 주권을 존중해줄" 의향이 있다고 선언함으로써 이스라엘
정치 지도자들 사이에서 "패닉"을 일으켰다고 한다.
키신저는 평화를 봉쇄하고 그가 표현한 바대로 "막다른 골목에 몰아
넣기(stalemate)"에 대한 그의 선호를 제도화하는 데에 성공했다. 즉, 협
상도 없고 오로지 힘만 행사한다는 것이다. 요르단의 평화 제안 역시
무시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미국의 공식 정책은 (이스라엘군) 철
수라는 국제적 합의를 따라왔다. 클린턴이 유엔 결의와 국제법 적용 사
항을 효과적으로 무효화시켜버릴 때까지 말이다. 하지만 실천적으로는
미국 정책이 반드시 협상을 받아드려야만 하는 상황(키신저는 자신이
주된 책임을 지고 있는 1973년 전쟁이 완패에 가까운 상황이 되자 협
상을 받아드린 바 있고, 벤-아미가 서술한 조건 하에서 또 그런 적이
있다)이 아니고서는 키신저의 지침을 따라왔다.
팔레스타인인을 위한 계획은 팔레스타인인의 비극에 대해 동정심을
좀 더 갖고 있는 노동당 지도자 중 한 명인 모쉐 다얀이 공식화한 정
책을 따르고 있다. 그는 이스라엘이 난민들에게 "우리에게는 해결책이
없다. 너희들은 개처럼 계속 살아야 하지만 떠나고 싶으면 떠나도 좋
다. 그리고 결과는 두고 보자"라고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내각에 조언
한 바 있다. 비판을 받자 그는 "시온주의 문제를 도덕적 관점에서 접근
하는 사람은 시온주의자가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는 벤-구리온(이스라
엘 초대 총리-옮긴이)을 인용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그는 유대인 고향
에 살고 있는 "수십 만 명의 흑인들"의 운명이 "사소한 일이다"라고
주장한 차임 바이즈만을 인용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점령의 중심 원칙이 고문, 테러, 재산 파괴, 강제이주와 특히 물 등
기본 자원의 강탈을 비롯해 끊임없고 모욕적인 굴욕이었다는 점은 그
다지 놀랍지 않다. 이는 물론 클린턴-바락 체제 내내 유지되어온 미국
의 결정적인 지지가 필요한 일이었다. "바락 정부는 샤론 정부에게 놀
라운 유산을 남겨줬다"라고 이스라엘 언론이 이월 시기에 보도했다.
"아리엘 샤론이 오슬로 협정 이전인 1992년 건설정착부(Ministry of
Construction and Settlement) 장관이었던 시절 이후, (팔레스타인) 지
역에서 최고로 많은 주택이 지어지고 있다." 이를 위한 재정은 미국의
"전망"과 "아량"에 대한 화려한 이야기에 속아넘어가고 "우리의 신뢰"
를 악용한 아라파트와 어쩌면 자기들이 저지른 범죄에 과잉반응하고
있는 몇몇 이스라엘 근본주의자 등의 테러리스트들에 절망한 미국 납
세자들이 제공해주고 있다.
우리의 신뢰를 다시 얻기 위해 아라파트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지
에 대해서는 클린턴 집권 당시 중동 지역 담당 국무부 관료이었던 에
드워드 워커가 간단명료하게 설명해준다. 음흉한 아라파트는 "우리는
우리의 미래와 운명을 미국의 손에 맡긴다"라고 확실하게 선언해야 한
다는 것이다. 지난 30년 동안 팔레스타인의 권리를 침해해온 군사행동
을 이끈 미국이 말이다.
보다 진지한 논평은 "역사적 제안"이 큰 부분 사우디의 1981년 파드
(Fahd) 계획 -이스라엘의 존재를 아랍국들이 거부해 이 계획이 무산되
었다고 주장되곤 한다- 을 반복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진실
에는 역시 상당한 차이가 있다. 1981년 계획은 심지어 이스라엘의 주류
언론조차 "히스테리"로 비난한 이스라엘의 한 가지 행동 때문에 무산
되었다. 시몬 페레즈는 파드 계획이 "이스라엘의 존재 그 자체를 위협
한다"고 경고했다. 하임 헤르조그 대통령은 파드 계획의 "실제 저자"는
PLO라고, 자신이 이스라엘의 유엔 대사였을 때 PLO가 "준비한" 1976
년 1월 안보이사회 결의보다 더 극단적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같은 주
장은 (PLO가 두 가지 모두 공개적으로 지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일
리 없지만, 미국의 지속적이고 결정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이스라엘
'평화주의자'들이 정치적 해결을 극도로 두려워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당시, 그리고 지금에 있어 근본적인 문제는 광범위한 국제적 합의
라는 명목으로 이스라엘이 정치적 해결을 거부해온 데에 꾸준히 지원
을 해준 워싱턴에게 있다. 그리고 이런 미국의 핵심은 "아랍 동맹의 역
사적 제안"에서 반복되고 있다.
미국의 거부주의에 대한 현재의 변형은 전술적이며 아직까지는 미미
하다. 이라크에 대한 공격 계획이 위협받자 미국은 이스라엘이 새로 점
령한 영토로부터 "유예 없이", 즉 "최대한 빨리" 철수할 것을 요구하는
유엔 결의를 받아들였다. 국무장관 콜린 파웰은 바로 설명한다. 팔레스
타인의 테러는 "즉시" 근절되어야 한다고. 그렇지만 지난 35년 동안 지
속되어 온 훨씬 더 극단적인 이스라엘의 테러는 시간을 끌어도 된다고.
이스라엘은 즉시 공격을 한층 강화해 결국 파웰은 "총리가 군사행동을
서두르고 있다고 말해 기쁘다"라는 말까지 했다. (군사행동이) 더 "서
둘러지도록" 파웰의 이스라엘 방문이 지연되고 있다는 의심도 있다. 물
론 그런 미국의 태도는 전술적 이유로 변할 가능성도 있다.
미국은 또한 팔레스타인 국가에 대한 "전망"을 요구하는 유엔 결의
를 받아들였다. 상당한 찬사를 받은 이런 앞서나가는 행동은 아파르트
헤이트 체제가 흑인 국가(점령한 영토를 위해 미국과 이스라엘이 계획
해 온 신식민주의적 의존체계만큼이나 실현가능하고 정당한)에 대한
"전망"을 실제로 실천했던 40년 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수준에도 못
미친다.
그 와중에, 미국은 미국 무기고에 있는 가장 최신 헬리콥터를 또 한
차례 발송해주는 등 (로버트 피스크, [인디펜던트] 4월 7일 자) 테러와
파괴의 도구를 이스라엘에 제공해줌으로써 대통령의 말을 빌자면 지속
적으로 "테러를 강화"하고 있다. 이것은 미국이 자국 관리 하에 있는
체제가 저지르는 잔학함에 대한 표준적 반응이다. 교훈적인 한 사례를
제시하자면, 현재 인티파타의 초기 시절에 이스라엘은 시민 목표물을
공격하기 위해 미국 헬리콥터를 사용해 10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죽었으
며 35명이 부상당했다. 이를 결코 "방어"라 할 수 없다. 이에 클린턴은
아파치 공격 헬리콥터 부속품과 더불어 "이스라엘 공군이 지난 10년
간 최대 규모의 군사 헬리콥터를 구입"([하아렛츠(Ha'aretz)] 2001년 10
월 3일 자)하는 데 동의함으로써 화답했다. 언론은 사실을 보도하지 않
음으로써 도왔다. 몇 주 후, 이스라엘은 미국 헬리콥터를 암살에도 사
용하기 시작했다. 부시 정부의 최초 행동 중 하나는 구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살인적인 아파치 롱보우 헬리콥터를 보내는 것이었다. 이 일은
경제 뉴스로 분류되어 미미한 관심을 얻긴 했다.
"테러를 강화"하고자 하는 워싱턴의 뜻은 지난 12월, 미첼 계획 실행
과 폭력분쟁 감소를 감독할 국제 감시단 파견을 요구하는 안보이사회
결의에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했을 때 다시 증명됐다. 국제 감시단 파견
은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 일반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조치로, 이를 이
스라엘은 거부하고 미국은 정기적으로 봉쇄하곤 한다. 거부권 행사는
21일 간의 평화 기간 동안 이루어졌다. 평화란 이스라엘 군인은 오직
한 명만 죽은 반면, 11명의 어린이를 포함해 팔레스타인인은 21명이 죽
었고 팔레스타인 통제 하에 있는 지역에 이스라엘군이 16번 침범(그레
이엄 어셔, [중동인터내셔널] 2002년 1월 25일 자)한 것을 의미한다.
거부권 행사 10일 전, 미국은 제네바에서 개최된 국제회의를 보이콧해
서 무효화시켰다. 이 회의에서는 제4차 제네바 협정이 점령 영토에 적
용되며, 그렇기 때문에 미국과 이스라엘이 그 지역에서 저지르고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이 "심각한 위반", 쉽게 표현하자면 "전쟁 범죄"라고 결
론이 다시 한 번 나왔다. 그 회의는 미국이 재정지원하고 있는 이스라
엘의 정착을 지목하면서 이를 불법이라 선포했으며 "불법적이고 무절
제하게 저질러진... 고의적 살해, 고문, 불법 추방, 공평하고 정기적 재
판을 받을 권리에 대한 고의적 침해, 광범위한 파괴와 재산의 도용" 행
위라며 규탄했다. 미국이 상위 체약당사국이라는 것은 엄숙한 조약에
따라 자국 지도자들을 포함해 이런 범죄에 책임있는 자들을 처벌해야
함을 의미한다. 당연하게 이 모든 일은 침묵 속으로 흡수돼버렸다.
미국은 점령지에 대한 제네바 협정 적용가능성에 대한 승인이나 "점
령국"으로서 이스라엘의 위반 행위(예를 들어 조지 부시 1세가 유엔
대사였을 때 확인해준 바 있는)에 대한 규탄을 공식적으로 철회한 것
은 아니다. 2000년 12월 안보이사회는 이 사안에 대한 합의를 "점령국
인 이스라엘에게 제4차 제네바 협정에 대한 법적 의무를 양심적으로
다할 것을 요구"함으로써 재확인했다. 투표 결과는 14대 0이었다. 클린
턴은 기권했다. 특히 나치들의 잔악한 행위를 공식적으로 범죄화한다는
목적으로 (국제법이) 제정되었다는 상황에 비춰 봤을 때, 아마 국제 인
도주의적 법률의 핵심 원칙 중 하나에 거부권 행사를 하기 싫어서 그
랬을 것이다. 이런 과정 또한 너무나 빠른 속도로 기억 속에 묻혀졌으
며 결국 "테러를 강화"하는 데 다시 한 번 기여하게 되었다.
이런 사안에 대한 논의가 가능해지고 그 의미가 이해되기 전까지
"평화 과정에 미국이 개입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생산적
인 행동에 대한 전망은 불투명한 상태로 남아있을 것이다.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