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은행에서 요르단강 서안까지 :
9.11 이후 잊혀졌던 운동이 팔레스타인에서 그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
[카운터펀치], 2002/04/10, 조지 몬비옷*
요르단강 서안에는 두 종류의 인간 방패가 사용 중이다. 그 중 첫 번
째 것은 강제적인 것이다. 이스라엘 군대는 그들이 맞서 싸워 왔던 몇
몇 테러리스트 집단들처럼 인질을 붙잡아 두고 있다. 군인들은 그 팔레
스타인 시민들을 수상쩍은 건물 문으로 들어서게 하여, 혹시라도 있을
지 모를 저격수들이 만약 대항하려면 그들을 먼저 죽이게 만든다.
두 번째 인간 방패막이는 의도적으로 전쟁터에 스스로 서 있다. 요르
단강 서안에 군사 공격이 시작된 이래, 수백 명의 이스라엘 평화주의자
와 외국 활동가들이 군인들의 길목에 스스로 배치했다. 엄청난 개인적
인 위험에도 불구하고, 국제연대운동(International Solidarity
Movement)의 회원들은 그들 스스로가 인질이 됨으로써 팔레스타인인
들을 보호하고자 한다. 그것은 엄청난 용기와 자기희생의 표현이다. 그
것은 또한 몇 달 전에 죽은 것으로 간주되던 운동의 가장 최근의 부
활이다.
라말라와 베들레헴에서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있는 수많은 평화
활동가들이 속한 운동은 이름을 가지고 있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
을 반세계화, 반기업 혹은 반자본주의 운동이라 부르고, 어떤 이들은
그것을 민주주의 혹은 국제주의 운동이라고 부르면서 운동의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하길 좋아한다. 그러나, 구성원들은 항상 실천을 우선시하
고 이론은 나중이라 하기 때문에, 그들을 범주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외부 사람들이 포착할 수 있는 정체성을 가진 듯
해 보이는 그 순간, 그 운동은 다른 어떤 것으로 탈바꿈해 버린다. 그
것은 새롭고 반응에 민감하며, 이데올로기가 아닌 필요에 의해 규정된
정치학으로부터 동력을 받고 있다.
9.11 이후, 이 이름 없는 것은 그것이 나타났을 때만큼이나 갑작스럽
게 사라지는 것 같았다. 9월 말 워싱턴에서 계획된 거대한 세계은행·
IMF 반대 시위는 소규모이고 조금은 소심한 평화 행진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뉴욕에 대한 테러 이후 미국인의 담론을 지배했던 신 매커시즘
에 겁먹은 대부분의 미국 활동가들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평론가들
은 다이어트 콜라나 나이키 에어만큼이나 그 운동을 전세계 젊은이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퍼졌으면서도 근거가 박약한 일시적인 유행으로
폄하했다. 그러나 그것을 그렇게 폄하했던 사람들은 그 운동의 취지의
진지함이나지지 세력의 광범위함 그 어느 것도 이해하는데 실패했다.
텔레비젼 카메라는 항상 검은 옷을 입은 몇백 명의 젊은이들과 그들의
폭력 행위에게만 초점을 맞췄고, 때때로 자유로운 저항의 축제를 중간
에 삽입시키는 정도였다. 언론은 참가자들에게 그들을 추동한 목적의식
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외부 사람들
은 이 저항에 관여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헌신성은 타협의 여지가 없다
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운동은 그것이 대적하고 있는 정부나
기업들만큼이나 사라질 가능성이 없는 것 같다. 필요에 따라 무엇이든
지 될 수 있는 능력이 운동의 생명력을 보장해준다.
지난 달 25만 명의 시위자들이 토니 블레어,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와
호세 마리아 안즈나르가 주도하고 고용법과 공공부문에 대한 공세에
맞서기 위해 바르셀로나에 모여들었다. 이번 달, 그들 중 일부는 팔레
스타인으로 이동했다. 영국 시위대 중에는 기업 권력, 유전자 조작과
기후변화 반대 캠페인의 추진을 도왔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이번
주, 제노아 시위를 조직했던 이탈리아 조직 야 바스타(Ya Basta) 조직
원들과 합류했다. 시애틀에서 성숙기에 접어든 이 운동에게, 세계은행
과 요르단당 서안은 똑같은 정치적 의미를 갖는다.
만약 시위자들이 단순히 어중이 떠중이처럼 어느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옮겨다닌다면, 그들의 노력은 무용한 것을 넘어 해악적인 것
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급속하게 성숙하고 있는 운동이 배운 핵
심적인 교훈 중 하나는, 저항 시위가 전문가의 노력에 기댈 때만 효과
적이라는 점이다. 지구 상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요르단강 서안의 외국
인들은 피를 흘리기 시작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영국 활동가
다섯 명이 지난주 이스라엘 군대의 불법적인 파쇄성 총알에 다쳤다)
그러나 몇몇 외국인들은 수십 년 동안 그곳에서 일해왔다. 새롭게 도착
한 사람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 건설된 네트워크에 합류하여 부과된 일
을 한다. 총탄과 불도저 가운데서, 그 운동은 오랫동안 가능성으로만
인식되었지만 거의 시도되지 않았던 용기를 발견해가고 있다.
시위자들은 군인들이 외국인을 함께 공격하지 않으면 팔레스타인인
들을 공격할 수 없다고 설득하면서, 이스라엘 군대의 공습 위협을 받고
있는 사람들의 집안으로 이사했다. 그들은 이스라엘 검문소를 빨리 통
과하고 거주자에 대해 군인들이 기습을 못하게 한다는 희망을 품고, 아
프거나 다쳐서 병원에 가는 사람들을 실은 앰뷸런스에 동승한다. 그들
은 배급이 끊긴 주민들을 위해 식량과 의약품 수송차량단을 운영하려
고 노력중이며, 비폭력적 해결책을 위해 양쪽 모두 무기를 내려놓도록
설득하려고 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그들은 그들 정부가 깨뜨린 약
속을 지키기 위해 미약한 자원들을 가지고 고군분투하는 일종의 풀뿌
리 유엔이 되가고 있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평화 시위자들이 몇몇 곳에서 자행된 잔악
행위에 대한 유일한 외국인 목격자라는 점이다. 인디미디어와 알소츠와
같은 대안 뉴스 네트워크를 사용하여 그들은 대부분의 언론인들이 놓
쳐버린 사건에 주의를 환기시킬 수 있었다. 그들은 이스라엘군으로부터
통행금지가 해제됐다는 통보를 받은 팔레스타인인들이 밖으로 나오자
어떻게 총에 맞아 죽거나 잡혀서 인간방패로 사용되는지 보여주었다.
그들은 가정이 약탈당하고 민중들의 식량 배급이 고의적으로 파괴되는
것을 목격해왔다. 그들은 앰뷸런스와 구호 트럭이 정지 당하고 박살나
는 것을 보아왔다. 3월 28일, 한 평화 시위자는 지프에 탄 이스라엘 군
인들이 라말라 교외의 들판을 가로질러 도망가고 있는 여성과 어린이
들을 냉혹하게 총질을 해서 쓰러뜨리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리고 얻어
터지고 총에 맞아 또 하나의 이야기거리가 됨으로써, 외국인들은 토착
민들에 대한 살인과 상해에 의심을 품고 있던 자국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려 냈다.
요르단강 서안에서 등장한 이 운동은 다른 곳에서 벌어진 활동으로
부터의 유기적인 발전이다. 수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정부들의
파괴적인 대외 정책과 정부들을 제어해야 할 다자간 기구들의 실패에
맞서 왔다. 야세르 아라파트(현재 수세식 화장실조차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는)는 중동에서 테러를 근절시켜야만 한다는, 우렁차지
만 소용없는 대서양 양쪽 평론가들의 요구를 앵무새처럼 따라하기 보
다, 운동가들은 어느 때보다도 실질적인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사람들
즉 이스라엘과 요르단강 서안의 점령을 가능케 하는 돈과 무기를 공급
하는 정부들에게 문제제기 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에 대한 IMF의 처방
에 대응하는 것만큼이나 미얀마 정부의 부족민들에 대우, 또는 티벳인
들에 대한 중국의 강제점령에 맞서 저항할 준비가 되어 있는 그 운동
은 실천적이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팔레스타인에서도 그 운동은 권
력과 권력에 시달림을 받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을 위치짓고자 한다.
모든 세상 사람들은 누군가가 중동 분쟁에 대해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
고 요구하고 있다. 평화 시위자들은 바로 그렇게 하고 있다.
* 조지 몬비옷은 런던 「가디언」 기고자이다.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