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내희 중앙대교수·문화연대 상임집행위원장대행
나는 몇 해 전부터 오늘날 사회가 '노동사회'의 성격을 너무 강하게 띠고 있으며, 이런 사회는 너무나 비인간적이기 때문에 대신 '문화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생각을 품어왔다. 사실 노동은 꼭 필요한 것이며 노동자는 가장 중요한 사회적 주체이다. 하지만 오늘날 사회는 노동이 중심이 된 사회만이 아니라, 노동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게 만드는 사회, 다시 말해 하기 싫은 일, 해서는 안 되는 일도 강제로 하게 만드는 사회의 성격이 강하다. 이런 현상은 노동이 임금노동의 형태를 띠면서 특히 강하게 나타난다. 사람들이 임금을 받기 위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해야 하는 사회, 즉 임금노동사회에서 삶의 행복은 기대하기 힘들다.
임금노동에 얽매이지 않고 살 수 있는 사회가 있다면 그런 사회를 일단 '문화사회'라고 부르고 싶다. 싫은 일을 하지 않고도 살 수 있다면 정말 좋지 않겠는가. 문제는 사람들이 그런 사회를 실현 불가능한 유토피아로만 여긴다는 점이다. 물론 아무도 일을 하지 않는 사회는 있을 수 없다. 생산활동이 전혀 없는 사회라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사는 문명의 이기들, 자연을 가꿔 만든 삶의 터전도 기대할 수 없다. 문화사회가 이런 사회라면 차라리 노동사회에 그대로 눌러 앉아 있는 것이 백 번 낫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일과 임금노동이 같다고 여기는 것은 착각이다.
일과 임금노동은 다르다
사실 역사적으로 보면 돈을 받지 않고 일을 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자본주의가 발전하기 이전 농사꾼의 일은 논밭 갈고 김매고 나무하는 것이었고, 어부의 일은 배 젓고 그물 치는 것이었지만 이 모든 것이 바로 월급으로 환산되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도 시를 짓고, 소설을 쓰고, 노래를 부르고, 그림은 그리는 행위는 엄청난 정열과 집중력을 요구하는 일이지만 임금을 벌어들이지 못한다. 자녀들이 이렇게 '노는 일'을 하겠다고 하면 많은 부모들이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말리려 드는 것은 그런 백수는 쓸모가 없고, 인생 조진다고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사실 사람들이 쓸모 없어 보이는 일, 노는 일을 더 많이 하는 사회, 문화사회가 더 바람직한 사회가 아닐까? 오늘 우리에게 부과, 아니 강요된 임금노동만 하고 산다면 인생은 너무 의미가 없다. 일주일에 거의 50시간을 임금노동에 바치고 나서 어떻게 인간다운 삶의 여유를 누릴 수 있겠는가. 시간을 내서 평소에 하고 싶어하던 취미생활도, 자기 발전과 계발을 위한 재충전도, 보고 싶은 고향친구를 만나는 것도, 혹은 환경보호를 위해 시간을 내는 것도, 인생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조용한 사색도 불가능하다. 이런 활동을 할 수 있는 사회를 나는 문화사회라고 부른다.
원한다고 모든 희망이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당장 사람들이 임금노동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인간이 성취한 문명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더욱 발전시켜 나가려면 사회적 노동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와서 사람들이 직장에서 내쫓기고 비정규직이 급증하는 것을 보면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은 줄어들었음이 분명하다. 기계화, 자동화로 인간노동이 그만큼 필요 없어진 결과일 것이다. 노동계도 이런 판단 때문에 노동시간 단축을 중요한 요구 사항으로 내놓고 있다.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단축을
노동시간 단축 투쟁은 문화사회 건설을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본다. 장시간 임금노동에 얽매인 사람들에게 자유로운 시간은 없으며, 따라서 인간다운 삶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시간이 남아돌아도 소득이 없으면 그 또한 자유시간은 아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노동시간을 단축하더라도 임금은 그대로 받아내야 한다. 하지만 나는 문화사회를 건설하려면 주40시간 노동으로는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프랑스나 독일처럼 35시간 혹은 30시간이면 좀 나을 것이다. 아니 그것도 부족하다. 지금 받는 임금을 그대로 받으면서 20시간으로 단축하면 그런 대로 괜찮은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너무 지나친 욕심이라고? 주제 파악을 하라고? 하지만 우리가 어떤 요구를 하느냐도 중요하다. 아, 자유롭고 싶어라! 아, 놀고 싶어라! 아, 살고 싶어라! 하지만 진정 자유롭게 놀고, 살고 싶으면 싸워야 한다. 임금삭감 없는 노동단축을 위하여! 단 사족을 붙이자면, 더 세게 밀어 붙여서 획기적인 노동시간 단축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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