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오승수(남부본부 신인천 복합화력지부 지부장)


전원복귀가 결정된 다음날의 명동성당 천막 농성장. 햇볕은 따뜻하다. 가끔씩 불어오는 바람에 날리는 하얀 목련은 파업 38일을 마감한 발전노조 지도부들의 마음을 향에 날아들고 있다. 농성장을 찾았을 때는 방금 점심식사를 마치고 깔았던 신문지를 치우고 있을 무렵이었다.

“엊그제보다는 좀 차분해진 분위기네요.”
“참담한 패배에만 빠져 있을 수 없잖아요. 해고된 동지들도 많은데, 힘 내야죠.”
오승수 지부장은 2시에 발전소 앞에서 열릴 집회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가지도 못하는 데 왜 기다리냐”고 했더니, 핸드폰을 통해 발언을 하기로 되어 있단다. 그의 손에는 밤새 손으로 직접 쓴 글이 담긴 종이가 들려있었다.

“사인도 안 했는데 타결됐다는 소리를 듣고 기가 찼지요. 정부와 언론, 사측이 똘똘 뭉쳐서 타결됐다는 분위기 조성해 버리고, 민주노총 지도부가 합의해 버리고. 조합원들의 분노는 예전보다 훨씬 더한 상태입니다. “

그는 이미 이 싸움을 준비하면서 해고를 각오했었다. 노조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아 지부장이 됐다는 오승수 지부장. 그는 어느 자리에서나 자신의 의견을 떳떳하게 주장해왔기 때문에, 워낙 험한 세상살이를 해 왔기 때문에, 지금의 농성장생활이 그다지 힘들지 않다고 말한다. 발전소를 해외에 매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자신의 떳떳한 생각이고, 때문에 그 생각을 관철시키고 있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추호의 후회도 없었다.

“해고를 감수해야 한다면 발전노조를 위해서 밑거름이라도 되어야 하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해고된 지부의 상집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빨리 복직될 수 있도록 싸워야지요..”

어제 밤에는 그의 아내와 딸이 그를 찾았다. “우리 딸이 힘이 좋거든요. 아빠 좀 업어달라고 했더니, 당장 업고는 천막 주변을 왔다갔다 했지요. 부모님은 화가 많이 나셨어요. 두 분 다 편찮으셔서 경찰들한테 전화하지 말라고 그렇게 당부를 했는데, 이놈들이 부모님집이며, 동생집이며 다 전화질을 한 거예요. 나가면 가만 있지 않을 겁니다.”

아직까지 명동성당에서의 생활이 얼마나 길어질지는 가늠하기 힘들다. 일단 해고자 복직 등의 문제가 진행되는 것을 살펴보고 판단해야겠다는 것이 지금의 생각이라고.
오 지부장은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다. 서각(나무 등에 문자를 새기는 것)과 대금연주는 수준급. “농성장에 대금을 갖다놓고 가끔 연주하지 그러세요” 했더니 “안그래도 스산한 데 대금소리를 내면 분위기가 어떻겠느냐”한다.

그는 아직까지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이미 해외매각을 저지를 위한 2차 총파업을 상상해보는 그였다. 이길 때까지 수염을 깍지 않겠다는 그는 덥수룩한 수염 속으로 희망의 미소를 지어보였다.

“잊지 맙시다. 우리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겐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습니다. ”그는 핸드폰을 통해 인천에 모여있는 조합원과 가족들에게 투쟁의 인사를 전했다. 전화기 너머로 그의 구호에 답하는 조합원들의 함성이 들려왔다. “동지 여러분, 명동성당에 오시면 못 먹는 술이라도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함께 나누겠습니다. 우리 서로서로를 격려합시다” 전화를 걸기 전, 자신의 감정이 격해질 것을 걱정했던 오 지부장. 그는 연설을 마치며 노조사무실에 걸려있는 ‘本立道生(본립도생, 근본이 서야 도가 생긴다)’이라 쓰여진 서각을 노조 사무실 출입문에 걸어줄 것을 동지들에게 부탁했다.

38일간의 산개투쟁, 그 힘은 ‘신뢰’였다
“누가 결정해서 내린 것이 아니고, 조합원들간의 토론에서 산개투쟁을 하자는 의견이 대부분이었어요. 서울대에서 모였다가 삼삼오오 흩어졌는데, 배낭을 짊어지고 왔던 사람들은 다 놓고 내려갔지요. 배낭을 메고 다니면 의심받기 쉬우니까. 그 배낭을 다 실으니 트럭으로 몇 대 더군요”

오승우 지부장은 PC방과 여관을 전전하며 흔들리지 않는 산개투쟁을 보여준 동지들이 그저 자랑스러울 뿐이란다. 핸드폰과 인터넷으로 지침을 받고 일시에 모였다가 다시 산개하는 이른바 ‘번개집회’는 서로에 대한 믿음과 기동성 없이는 불가능한 전술. 때문에 이번 파업은 정부와 회사측 뿐만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사람들마저도 놀라게 만든 ‘놀라운 파업’이었다.

지난달 25일 시작된 발전노조의 파업은 파업참여 인원이 5천명을 넘어서는 대규모 파업이었다. 더구나 파업 첫날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인원은 전체 노조원 5천 591명 가운데 180명에 불과했다. 이렇게 높은 파업 참여율은 정부와 사측을 당혹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했고, 이는 삼삼오오 찢어져 전전해야 했던 38일간의 산개투쟁을 가능하게 한 힘이 되었다.

“3월 25일까지 복귀하지 않으면 해고하겠다고 사측이 으름장을 놓았지요.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했지. 인터넷으로 다 복직하겠다고 밝히라고 말이예요. 이호동 위원장도, 나도 다 복귀한다고 신청을 해 버렸어. 그리고 이 위원장은 덧붙이는 말에 이렇게 썼지. ‘이곳에서 나가고 징역살 일 있으면 다 살고 나서 복귀하겠다’고. 나는 이렇게 썼어요. ‘고생많이했으니 다 끝나고 한 일주일 쉬었다고 복귀하겠다’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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