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국의 한 작은 도시에 살고 있다. 내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가장 놀라웠던 것은 거리 곳곳마다 마주치는 수많은 장애인들이었다. 그들은 대개 스스로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로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었는데, 이들은 자원봉사자가 미는 휠체어에 앉아 거리를 산책하거나 가게에서 물건을 고르기도 하고, 공원의 호숫가에 앉아 낯선이들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그들의 말을 알아듣기는 어려웠으나 모두 행복해 보였다.
어느 봄날이었다. 나는 조용한 식당에 앉아 한가로이 점심을 먹고 있었다. 갑자기 뒤편에서 날카로운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휠체어에 앉은 여자가 울음인지 비명인지도 모를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입으로부터 아이스크림이 녹아 턱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고 다시 한 번 놀랐다. 그 식당에서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 여자를 응시하는 사람은 나 혼자였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열심히 식사에 열중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한참을 살피고 나서야 그녀가 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니라 큰 소리로 웃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녀는 동료와 큰 소리로 웃으며 즐겁게 후식을 먹고 있던 것이다. 나는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 식당에서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장애인들과 어울려 사는 삶에 아주 익숙해 보였다.
내가 한국에서 살던 곳은 소위 "강남 8학군"이라 불리는 곳이다. 역시 봄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동안 동네가 어수선하더니, 이내 아파트 단지 곳곳에 붉은 현수막이 내걸리기 시작한다.
"맹아학교 설립 결사반대"
서울시에서 아파트 단지 근처에 장애인 학교를 설립한다는 계획이 발표된 것이다. 그날 저녁 텔레비전 뉴스에서 학부모 회장인가 하는 여자가 흥분해서 하는 말을 들었다.
"우리는 맹아학교 설립을 기필코 막아낼 겁니다. 이게 말이나 됩니까? 맑고 밝은 것만 보고 자라야 할 우리 아이들이...."
나는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그 놀라움은 곧 저주 섞인 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저주는 결국 다시 그 여자의 자식들을 동정하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정말 비극이다. "맑고 밝은 것만 보고 자라야 할" 아이들이 그런 부모 밑에서 자라야 한다는 건.
한국에서 장애인들에 대한 배려는 "장애자"라는 용어를 "장애인"이라고 바꾸거나, 절벽에 가까운 지하철 계단에 휠체어 이동장치를 장식용으로 설치하는 수준에서 이루어진다. 한때 장애인들이 다닐 수 있도록 건널목의 인도 난간을 낮추는 공사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진 적이 있으나, 몇 년 지나지 않아 그 "장애인 통행로" 위로 굵은 화강암 기둥이 들어섰다. 불법주차를 막는다는 이유에서다. 불법주차 단속이 귀찮아 사람이 다닐 길을 막다니, 역시 "맑고 밝은 것만" 보면서 자란 자식들은 생각하는 것도 남다르다.
장애인들은 어느 사회에나 일정 수 존재한다.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들이 잘 보이지 않는 건 그 수가 적기 때문이 아니라,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소위 "정상인"을 자칭하는 자들이 그들을 보고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파른 계단보다, 그 무지막지한 돌기둥보다 그들을 더 괴롭히는 건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무자비한 시선이다.
우리는 그들을 거리에서 몰아낼 아무런 권리가 없다. 우리는 그들을 차별할 어떤 권리도 가지고 있지 않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유능한 인재가 보건소장 임용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했던 게 바로 우리사회다. 그런 결정을 내리고도 무사히 공무원 신분을 유지할 수 있는 나라에서 "희망"을 말한다는 건 코메디다.) 그들은 연민이나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터전을 공유할 권리를 당당히 요구할 시민들이다. 우리가 장애인들과 사는 데 불편함을 느낀다면, 그건 그만큼 그들을 인간적 경외감을 갖고 대하지 못한 세월이 길었음을 의미할 뿐이다. 그리고 우리가 누려온 그 "편리함"은 일찌감치 우리가 그들에게 돌려주었어야 할 부당한 몫이다.
그들이 보이지 않는 만큼, 우리들은 부끄러워 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을 밖으로 불러내야 한다. 그들은 우리들보다 대체로 더 정상적이다. 동등한 인간에 대한 존경심을 보이지 않은 채 그들을 가두어 온 게 우리들이고, 이런 추악함보다 더 큰 장애는 없기 때문이다.
강인규 [inkyukang@students.wisc.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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