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화/<한겨레>기획위원
욕심은 수치심을 없애고, 수치심이 없을 때 무지와 몰상식은 욕심의 크기에 비례하여 끝 간 데 없이 펼쳐질 수 있는가 보다.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김대중 정권을 '좌파적' 정권이라 하고, 이인제씨는 노무현씨가 '좌파' 정치인이라고 한다.
그들의 말이 옳다면, 대한민국의 좌파들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뛰쳐나와 환호작약할 일이다.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도 덩실덩실 춤을 출 일이다. 지금도 한국의 정치권력을 좌파가 장악하고 있다는데, 앞으로도 좌파가 장악할 가능성이 크다고 하니 말이다.
무지하고 몰상식한 발언을 분석도 비판도 없이 그대로 전하는 수구 언론이 있을 때, 그 언론이 한국사회에서 차지하는 무게만큼 그 발언들에도 무게가 실리게 된다.
이회창 총재는 김대중 정권의 대북 '퍼주기', 건강보험 재정통합, 의약분업, 교육 '하향' 평준화 정책 등을 '좌파적'인 것이라고 주장했고, 이인제 후보는 노무현 후보의 '재벌 주식의 노동자 분배' 요구가 좌파임을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좌파' 딱지 붙이기의 새로운 유행은 지역주의의 약발이 떨어져 의도대로 '장사'가 되지 않는데서 나온 게 분명하다.
<조선일보>의 사설과 칼럼이 걸핏하면 들고 나오면서 비난하곤 하는 '포퓰리즘'의 전형이 다른 데 있지 않고 바로 두 이씨의 '좌파' 딱지 붙이기에 있지만, "가재는 게 편"이라고 조선일보가 이들을 비난할 리 없다. 하지만 그들의 의도와는 달리, 이젠 '좌파' 딱지 붙이기도 '장사'가 그리 잘 될 것 같진 않다.
그런데 이회창씨나 이인제씨는 좌파가 무엇인지 알기나 하는 것일까? 특히 그들이 이성을 잃을 만큼 욕심내고 있는 '민주공화국 대통령' 자리가 좌파 덕분에 마련된 것임을 알기나 하는 것일까? 상식에 속하는 얘기지만 좌우 구분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들에게 들려줄 필요가 있어 보인다.
1788년에 프랑스의 루이 16세의 재정은 파산 직전에 이르렀다. 베르사이유에서의 화려한 궁정생활과 미국의 독립 지원자금을 비롯한 전쟁 비용으로 재정 지출을 과도하게 했기 때문이다.
궁지에 몰린 왕은 '일반회의'라 불리는 '삼부회의'를 소집했다. 소집된 '3부', 즉 세 계급 중에서 제1계급인 성직계급은 성직자라는 이유로 세금을 내지 않았고 제2계급인 귀족들은 귀족이라는 이유로 세금을 내지 않았다.
오직 제3계급인 시민들만 세금을 부담하고 있었는데 재정이 어려우니 세금을 더 내야한다는 요구에 직면하게 되었다. 당연히 "우리한테서만 세금을 거두지 말라!"고 '변화'를 요구하게 되었고 성직계급과 귀족계급은 "지금까지처럼!"을 외쳤다.
이 일반회의 석상에서 귀족계급, 성직계급은 왕의 오른쪽에, 시민계급은 왕의 왼쪽에 자리잡았던 데서 좌우 구분이 시작되었던 것인데, '변화'를 요구하던 '좌'와 '지금까지처럼'을 바라던 '우' 사이에서 회의는 계속 공전했고 급기야 대혁명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근대의 공화국이 시작된 것이다. 이회창씨나 이인제씨도 좌우 구분이 생겨날 당시 변화를 바라던 좌파의 공헌으로 근대 민주공화국이 출범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렇다면, 봉건사회의 신분질서적 억압에 대항하여 자유와 평등의 기치를 내걸었던 좌파 덕분에 생긴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좌파' 딱지 붙이기에 열올리는 일은 희극적인가, 비극적인가.
[83호] 4.15 ~ 4.21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