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자와 남은 자들④]"자식 잃은 부모 말은 끝이 없었다" 의문은 많고 진실은 없다

정경섭 jks@kdlpnews.org
어머니는 계속되는 자식의 얘기에 가슴을 치며 눈물을 보이더니 장롱에서 옷을 하나 꺼낸다. 눈물을 줄줄 흘리며 어머니가 말한다.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

"이게 우리 애기 옷이에요. 식구들 몰래 아직까지 애기 옷을 가지고 있어요. 우리 애기 생각날 때마다 이 옷을 꺼내서 껴앉고 울고…내가 전국으로 투쟁하러 다닐 때도 이 옷을 입고 다녀요. 불쌍한 우리 애기…."
어머니는 자식이 죽은 후 그 옷을 한번도 세탁하지 않았다. 자식의 체취가 남아있는 옷을 차마 세탁할 수 없었다.

육신은 없고 옷만 남았다. 이 옷의 주인은 이덕인. 그는 지난 95년 인천 이암도 앞바다에서 포승줄에 묶여 숨진 채로 발견됐다. 정부가 공식발표 한 사인은 익사. 그러나, 익사했다는 이덕인은 왜 몸이 퉁퉁 불어 있지 않았을까. 왜, 포승줄이 묶여 있는 채로 죽어있었으며, 왜 온몸에 피멍이 들어있었을까.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줄을 잡았던 모양"이라는 것이 당시 경찰의 발표.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며 포승줄을 잡았다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고, 포승줄을 팔을 칭칭 묶고 있었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부모는 소아마비 증세(장애 4급 판정)로 제대로 걸음을 때지 못하는 둘째 아들 이덕인을 다른 자식보다 편애했다.

이덕인은 공부를 하고 싶어했다. 가난 때문에 대학진학을 포기했어도 사법고시를 보고 싶다는 그의 욕망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사법고시 교재를 사서 밤새워 책과 씨름하기도 했다.

95년, 이덕인은 2개월간 노점을 할 생각을 하게 된다. 2개월간 돈을 벌고 서울로 올라가 못다한 공부를 할 계획이었다(이덕인이 사망한 후 그의 앨범에서는 서울에서 있었던 각종 집회에 참석한 그의 사진이 발견됐다. 이덕인의 부모는 이 사실을 그가 사망한 후에야 알았다).

이덕인은 인천시가 군사보호시설 지구 철조망을 제거하자 장애인 22명, 빈민 20여명과 함께 노점을 시작했다. 문제는 구청이었다. 구청은 2억2천만원의 비용을 들여 1천5백여명의 철거용역직원을 동원해 무자비한 철거를 자행하기 시작했다. 이덕인은 망루에서 농성을 시작했고 경찰과 용역직원들은 망루를 포위했다.

11월 25일, 생명의 위협을 느낀 이덕인은 탈출을 시도했다. 이덕인이 먼저 내려가고 동료가 뒤따라 망루에서 내려올 때, 경찰과 용역이 그들을 발견했다. 동료는 감히 내려올 생각을 못하고 다시 망루에 올라갔고 이덕인은 어디론가 뛰었다.

반경 4킬로미터를 둘러싸고 있는 경찰과 용역이 소아마비로 뛰기가 쉽지 않았던 이덕인을 못 잡았을까. 3일 뒤인 11월 28일, 이덕인은 시신으로 발견됐다. 스물여덟의 짧은 생을 마감한 채.

문민정부의 경찰은 영안실에 안치된 이덕인의 시신을 탈취했다. 인하대학생들이 온몸으로 경찰을 막았지만 쇠몽둥이에 버틸 장사는 없었다. 실명한 학생, 머리가 깨진 학생이 속출할 정도로 살인적인 상황이었다. 끝까지 시신을 지킨 사람은 이덕인의 형 이덕창(당시 35세)이었다.
"빨리 고깃덩어리 실어, 이거 뭐야, 니가 형이야, 야, 이 새끼도 죽여버려."
경찰은 무서운 고함을 지르며 이덕인의 시신을 탈취한 후 강제 부검을 실시했다. 찢어진 시신을 되찾은 뒤 부모는 "우리 아들을 죽인 사람을 알기 전에는 장례를 치르지 않겠다"며 5개월 동안 병원에서 농성을 했다. 아들의 시신은 냉동실에 넣었다. 형사들이 냉동실의 온도를 자꾸만 낮추는 바람에 자식의 몸이 썩어 가는 걸 바라봤던 부모의 심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인천 경실련 대표였던 박명복(현 인천부시장)은 아버지에게 최기선 인천시장과 면담을 주선했지만 "죽은 내 자식을 돈 받고 팔 수는 없다"며 아버지는 버텼다.

부모의 소원이었던 의문사진상규명에 관한 법이 통과됐다. 그럼 사인은 밝혀졌을까.
"작년에 진상 규명위에서 조사관이 와서 진압경찰의 명단을 알아냈다고 했어요. 그래서 조사가 시작되는 줄 알았죠. 그런데 엊그저께 조사과장이 왔는데 이제까지 덕인이 친구들 진술만 받았어요. 빨리 경찰을 조사해야지, 이게 뭐하는 겁니까. 조만간 서울로 올라갈 생각입니다. 가서 한바탕 난리를 쳐야지 정신을 차리지."
아버지 이기주(67)씨는 분을 삭이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때(95년)나 지금이나 인천시장은 최기선인데, 뉴스 봤죠. 뇌물사건으로 저러고 있잖아요. 내 아들 죽인 사람이 최기선이지. 내 아들이 면담 요청했을 때 앞에서는 면담을 하겠다고 기다리라고 해놓고 뒤로는 깡패들하고 경찰을 동원해서 노점을 다 때려부쉈어요. 지금 최기선이 꼴을 봐요."

어머니와 아버지는 요즘 몸이 좋질 않아서 자식의 시신이 5개월간 있었던 인천 길병원에서치료를 받고 있다. 어머니는 병원에 가면 자신도 모르게 영안실근처에서 서성거린다.
"병원에만 가면 우리 애기 생각이 나서 찌웃찌웃 영안실을 기웃거려요. 애기 죽은 뒤로 매년 다니던 시아버지 산소에 한번도 못 갔어요. 우리가 죄인이지…."

어머니와 인터뷰를 마칠 무렵 외출했던 아버지가 돌아왔기 때문에 기자는 처음부터 다시 얘기를 들어야 했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말은 끝이 없었다.
[83호] 4.15 ~ 4.21
태그

의문사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편집실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