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뽀]"언제든 2차투쟁위해 배낭쌀 준비돼있다"

정경섭 jks@kdlpnews.org
인천화력 사택에 내려 20분쯤 기다리니 발전노조 인천화력지부 홍영진 부지부장과 최동섭 총무부장이 승용차를 가지고 나왔다. "오래 기다리셨죠. 정문 출입통제가 워낙 심해서 저희랑 같이 들어가시는 수밖에 없거든요."

차를 타고 15분가량 달리니 인천화력이 거대한 모습을 드러냈다. 인천화력은 정문에서 조합사무실까지 약 5분간 차를 타고 이동할 정도로 상당한 규모였다. 신기한 듯 눈을 돌리고 있는 기자에게 홍 부지부장이 말한다. "저기 지나가는 차는 정보과 형사차입니다. 요즘은 여기서 상주하고 있죠."

조합 사무실은 해고자들로 가득차 있었다. 인천화력 해고자는 모두 13명. 노조 간부는 한명을 제외하고는 전원해고. 요즘은 경찰서에 출두해 전원 조사를 받고 있다.

지난 6일 파업을 접고 복귀한 발전노조 조합원들은 '무단 결근으로 징계사유에 해당하는 잘못을 인정할 것, 향후 회사업무에 최선을 다하며, 파업·태업·설비점거 등 일체의 불법행위를 하지 않을 것, 불성실한 근무를 하지 않을 것, 이를 어기면 어떤 처벌도 감수할 것'을 내용으로하는 서약서를 강요당하고 있다.

분당화력의 경우 서약서를 작성하지 않으면 징계수위를 높이겠다는 위협이 있었고, 태안화력 해고자들도 조합원에게 전화를 걸지 않고, 조합사무실 이외에는 회사를 돌아다니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써야 조합사무실을 출입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있는 상황이다.

"아, 우리는 그런 거(서약서) 가지고 사측에서 심하게 나오고 있지 않아요. 본조 지침이 서약서 작성불가였거든요. 우리 지부도 마찬가지로 조합원들에게 서약서는 절대 쓰지 말라는 지침을 내려보냈고 잘 지켜지고 있어요."
신현구 지부장 직무대행은 인천화력에서는 서약서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며 이유를 설명했다.

"우리는 3월25일까지 복귀율이 제로였어요(이후 1백74명 중 34명 복귀). 조합원들의 절대다수가 지부의 지침에 따라 행동하니까 사측에서도 조합원들이 서약서를 순순히 쓸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직까지는 건들지 못하고 있죠."

그렇다고 마음놓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물론 우리도 시간이 지나면 사측이 탄압을 할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예상되는 일차적인 탄압은 해고자들의 회사출입을 제한하는 거죠. 현재 조합간부들이 전원 해고잔데 우리가 회사에 들어오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서 회사 밖에 사무실을 마련해 거점으로 삼을 생각입니다. 또 안에서 우리를 대신해 사측과 싸울 수 있는 새로운 조직을 구축하고 있죠."

신 직무대행은 기자에게 사측에서 노조로 발송할 예정인 내부문건을 보여줬다. 이 문건은 노조가 조직력(?)을 이용해 자체적으로 입수한 것. 문건의 내용은 대충 이렇다.
"해고자들이 노조사무실 이외에 다른 곳을 출입하는 것을 엄격히 통제하며 필요하면 사진채증을 해서라도 증거를 잡을 것."

파업을 끝내고 복귀한 사업장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조합원들간의 갈등은 이곳에도 있었다. 노조 게시판에 붙은 파업불참 조합원의 자격박탈 공고도 이를 보여주는 것.

서 직무대행도 이 점은 조심스럽게, 그러나 원칙을 가지고 풀어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중간에 복귀한 조합원 몇 명을 만났어요. 미안한 마음뿐이라고 하더군요. 자신들도 마음고생이 심했대요. 조합의 결정이 어떻게 나든 그대로 따르겠다고 했어요. 복귀를 했다가 다시 파업대열에 합류하려고 했던 사람들도 있었는데 사측이 복귀했다가 파업에 나가면 위장복귀로 간주하고 소명기회도 없이 파면하겠다고 협박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현장을 다시 복원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들어왔으니 이들과 함께 다시 조직을 꾸릴 겁니다. 다만 악의적인 불참자들은 징계를 해야겠죠."

점심시간이 되자 조합원들이 몰려들었다. 38일간 산개투쟁을 하다보니 서로 얼굴을 본지 한 달이 넘었다.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할 법도 하다. 복귀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아직은 온통 '파업얘기' 뿐.

25년간 근무한 박상수(48)씨도 마찬가지.
"대학교 3학년, 2학년 다니는 자식놈들이 있는데, 내가 파업할 동안 자식들은 집회 나갔어. 난 파업하면서 패기도 생기고 젊음도 되찾은 거 같아. 10년은 젊어진 거 같다."

최구호(38)씨는 뼈있는 한마디를 한다. "우리보고 불법파업이라고 매도하지만 정치권도 파업하지 않나. 자기들끼리 싸워서 국회를 못여는게 파업이지 뭐야. 우리가 파업하는 거 보다 훨씬 경제적, 국가적 손실이 날 것 같은데."

기자가 인천화력을 방문한 하루뒤인 10일, 발전노조 중앙쟁위대책위원회는 "민주노총에서 폐기한 잠정합의안을 발전노조에서도 파기한다"고 선언하며 "원칙을 고수한 비타협적인 투쟁으로 제2총파업을 준비할 것"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안만호 부지부장은 마치 이런 결정이 있을 걸 알았던 사람처럼 말했다.

"조직정비가 끝나고 지침만 떨어지면 다시 배낭 쌀 준비를 할겁니다."
조합 사무실 앞에 피어있는 벚꽃은 이제 끝물이다. 벚꽃보다 강렬했던 산개투쟁을 펼쳤던 그들이 지금은 벚꽃보다 오래갈 투쟁을 준비중이다.
[83호] 4.15 ~ 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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