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원/문학평론가ㆍ<비평과전망> 편집위원
"관념상의 과격성이라는 것은 그것 자체가 무엇을 산출한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실제로는 극히 흔해 빠진 것을 전혀 실현할 수 없습니다." 일본의 문학비평가 가라타니 고진이 한 말이다.
극히 흔해빠진 일상적 삶도 바꾸지 못하면서, 상상력의 고무풍선을 한없이 날려버리는 지식인의 폐단을 지적한 말로 볼 수 있다. 아무리 인간이 꿈꾸기에 능한 동물이라지만, 그 꿈이란 것도 현실과의 '속도조절'을 생각하지 않으면 환상으로 전락한다. 물론 이 말이 꿈꾼다는 행위 자체를 무의미한 것으로 격하시키는 진술은 아니다.
꿈꾼다는 행위를 통해서, 인간은 그 꿈과 비교하여 낮은 곳에 있는 현실을 들어올린다. 꿈과 현실을 최대한 근접시키려는 노력을 위해서라도 꿈꾸기는 계속되어야 한다.
다만, 그 꿈의 실천은 가장 낮은 곳으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 문학의 출발점을 이루는 상상력이란 고무풍선과도 같은 것이어서, 한없이 지상으로부터 날아오르기를 욕망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가장 높이 나는 갈매기가 가장 멀리 보는 것과 달리, 너무 높이 나는 고무풍선은 결국 터져 버린다. 문학이란 끈 달린 고무풍선과도 같다. 비유컨대 작가란 땅 위에 서서, 자꾸자꾸 날아가려 하는 고무풍선의 끈을 잡고 있는 자인 셈이다.
고무풍선은 상상력이고, 땅은 현실이며, 그 끈을 잡고 있는 사람은 작가라는 간략한 등식이 형성되는 셈이다. 내가 이 도식적인 등식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문학권력' 논쟁의 와중에 하도 엉뚱한 반론을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문학논쟁이냐는 이야기로부터, 그렇게 좀스럽게 놀지 말고 하늘을 보라는 초월론, 우리만 문제냐 너도 문제라는 양비론, 제도나 구조 안에서 인간은 무력하기 짝이 없다는 불능론, 왜 남의 동네 일에 끼어 들고 난리냐는 텃세론--대략 이런 반론들이 줄기차게 제시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일부 몰지각한 문인들은 꿈꾸는 일이 마치 문인들만의 고유한 특권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지만, 실상 그것은 모든 인간의 기본적 권리이자 근원적인 성향이다. 현실이 타락했다고 무차별적인 비판을 서슴지 않는 사람들이, 기이하게도,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은 흥미로운 아이러니다.
문학이 죽었다고 엄살 떨면서 오히려 한심하기 짝이 없는 킬링타임용의 작품을 발표한다거나, 알 만한 출판사와 평론가들이 이솝우화에 등장하는 거짓말쟁이 소년으로 변신하는 것을 보는 독자들의 머리는 혼란스럽다.
문학에 대한 논쟁은 승패의 문제가 아니다.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표면적 진실의 확인을 넘어, 이면의 진실까지를 환기시킨다는 점에 있다. 아이의 손에 들린 풍선을 보며,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83호] 4.15 ~ 4.21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