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국가'미국과 정보전쟁


홍성태 (상지대 교양과 교수)

부시행정부 등장 이후에 국내외 양심세력에게 비판받았던 미국의 패권주의는 911테러이후 수그러들기는커녕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전세계적으로, 폭력적으로 확장되고 있다. 자신은 국제 규범을 모두 위반·묵살하면서, 남에게는 “반테러 전선에 동조하지 않으면 적으로 취급하겠다”고 하고, 자신은 세계최대의 무기수출국이면서 남의 무기수출을 `악'이라고 지목하는 것이 지금 미국의 모습이다. 이번 호 네트워커 표지이야기에서는 미국의 패권주의가 정보통신분야에는 어떻게 관철되고 있는지 비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 이글은 2002 제주인권학술회의에서 발표된 논문을 요약한 것입니다.

'9·11 공격사건'은 '전쟁국가' 아메리카합중국의 성격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전쟁국가'란 자국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주요 수단으로 전쟁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국가를 뜻한다. 전쟁을 벌이기 위해서는 전략핵무기를 중심으로 하는 직접적인 물리력 외에도 군사비를 감당할 수 있는 경제력, 무기를 개발하고 생산할 수 있는 과학기술력, 적국과 세계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정리할 수 있는 정보력, 전쟁의 대의를 널리 선전할 수 있는 매체력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지금 이 세계에서 다섯 가지 힘을 모두 잘 갖추고 있는 나라는 아메리카합중국밖에 없다.

그런데 오늘날의 전쟁은 단순히 직접적인 물리력의 충돌이 아니다. 물리적 파괴 뿐 아니라 정보의 흐름을 파괴하고 통제하는 활동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특히 정보기술이 발달하면서 정보전쟁이 강화되었다. 이러한 정보전쟁은 크게 세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사이퍼(Cypher)전쟁이다. 이것은 적의 통신을 도감청하고 암호를 해독하는 활동을 뜻한다. 오늘날 이 활동은 우주에 떠 있는 위성까지도 이용해서 진행된다. 또한 그 대상은 직접적인 적뿐만 아니라 우방국들과 자국민들까지도 포함하게 되었다. 사이퍼전쟁은 자신에 관한 정보는 철저히 감춘 채, 타자에 대한 정보는 어떤 것이나 수집하고 처리함으로써, 이 세계를 완벽히 통제하고 지배하려는 활동
이다. 둘째, 미디어(Media)전쟁이다. 이것은 각종 대중매체를 이용해서 정보를 조작하고 사람들의 의식을 왜곡하는 활동을 뜻한다. 사실의 보도부터 영화와 같은 허구물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대중매체는 전쟁을 위해 널리 이용되고 있다. 세째, 사이버(Cyber)전쟁이다. 이것은 그 전략적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사이버공간의 이용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적대적 활동을 뜻한다.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정보통신망을 무력화하는 활동이라는 점에서 이것은 1990년대에 들어와 새롭게 나타난 정보전쟁이라고 하겠다.

다시 말할 것도 없이 아메리카합중국은 정보전쟁에서도 세계최강을 자랑한다. 이 나라가 정보전쟁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과 재원을 쓰고 있는가는 물론 철저한 비밀이다. 간혹 조금씩 드러나는 그 실체를 보노라면, 이 나라에서 'X파일'과 같은 편집증적 TV물이 만들어지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는 새
언제 어디서나 감시받을 수 있고, 또 자기도 모르는 새 그렇게 수집된 정보가 처리되어 어디에선가 계속 쌓여간다. 'X파일'의 편집증은 이러한 사실의 산물이다.
세 가지 정보전쟁은 정보기술의 발달과 함께 제시된 차례대로 나타났다. 현대의 정보전쟁은 유무선통신의 등장과 함께 나타난 사이퍼전쟁으로 시작되었다. 오늘날 아메리카합중국은 말 그대로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사이퍼전쟁을 펼치고 있다. 2차대전이 시작될 무렵부터 대중매체의 시대가 전개됨에 따라 그것을 이용한 미디어전쟁이 시작되었다. 이것은 라디오에서 텔레비전으로 변해가는데, 라디오는 2차대전 때에 나치가 가장 잘 이용했다면, 텔레비전은 걸프전 때에 아메리카합중국 정부가 가장 잘 이용했다. 사이버전쟁은 1990년대 이후에 나타난 최신의 정보전쟁이며, 이 분야에서도 아메리카합중국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앞서 있다.
특히 사이버전쟁은 아메리카합중국 정부가 인터넷에서 새로운 안보상의 위협을 찾아낸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할 수 있다. 그 위협은 인터넷을 통해 자국의 정보통신체계가 교란되거나 정보가 유출될 가능성으로 요약된다. 사이버전쟁에 대한 우려를 바탕으로 아메리카합중국 정부는 이에 대한 대책을 활발하게 세워가기 시작했다. 핵심은 인터넷을 통해 외부로부터 침투해 들어오는 것을 막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인터넷의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한 광범위한 감시기술을 개발하고 이용해야 한다. 문제는 사이버전쟁을 위해 인터넷의 이용을 감시하고 자국 국민의 인권을 침해하는 데서 빚어졌다.

FBI는 1997년 7월 9일에 테러 및 범죄단체, 마약거래, 포르노업체들의 컴퓨터 통신 이용을 막기 위해 인터넷 등 컴퓨터통신 암호화 데이터를 해독할 수 있도록 도청과 암호코드 해독열쇠 사용권한을 부여해 줄 것을 의회에 요청하여 큰 논란을 빚었다. FBI는 암호화장치 개발자가 암화화될 메시지를 해독할 수 있는 열쇠를 제3자에게 맡기는 '열쇠회수제도'를 마련해 관계 당국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른바 '클립퍼 칩'(Clipper Chip) 논쟁을 통해 널리 알려진 이 제도는 암호기술을 사실상 무력화하고 사민권(프라이버시권)을 크게 위축시킬 가능성 때문에 비판되었다.
암호기술에 대한 통제가 시민의 '방패'를 없애려는 것이라면, 새로운 감시기술의 개발은 시민의 삶 속으로 뚫고 들어갈 수 있는 '창'을 만들려는 것이다. 2000년에 들어 FBI가 '카니보어'(Carnivore)라는 이름의 감시체계를 개발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카니보어를 어떤 서버에 설치해 두면, 감청대상으로 분류된 정보를 고스란히 복사할 수 있고, 그 중에서 범죄혐의가 있는 정보를 골라서 저장하게 된다. FBI는 제한적으로 사용한다고 주장하지만, 카니보어는 결국 그것이 설치된 서버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모든 통신을 감시할 수 있다. 카니보어로 말미암은 사민권의 침해와 감시권력의 강화는 불을 보듯 환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FBI는 더욱 강력한 '인터넷 사찰체제'를 구축
하려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9·11 공격사건'은 그 결정적인 기회였다. 이 사건이 일어난 직후에 아메리카합중국 의회는 '반테러법'을 제정했다. 이제 수사기관은 테러에 대한 대비를 이유로 모든 통신을 무제한 도감청할 수 있으며 이에 필요한 영장은 비밀리에 발부받을 수 있다. 2005년 말까지 그 수명이 제한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반인권법'이라는 사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와 함께 2001년 초에 'DCS1000'으로 이름을 바꾼 카니보어가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또한 2001년에 FBI가 새로운 감시기술로 채용할 것으로 알려진 '매직 랜턴'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매직 랜턴'은 인터넷을 이용해서 이용자 몰래 그가 사용하는 컴퓨터에 심어 놓는 스파이웨어로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컴퓨터의 자판입력을 알아낼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감시기술만이 사이버전쟁의 무기는 아니다. 아메리카합중국은 전세계 정보산업에서 막강한 독점력을 행사하고 있다. 바로 이 독점력이 사이버전쟁의 무기가 될 수도 있다. 이와 관련된 가장 좋은 예로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즈를 들 수 있다.
잘 알다시피 세계의 개인용 컴퓨터 가운데 95%가 윈도즈를 운영체계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 윈도즈가 NSA에 '뒷문'을 열어주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캐나다 온타리오에 있는 컴퓨터 암호해독회사의 한 전문가가 1999년 9월 3일에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NT에서 'NSA키'라고 적힌 두 번째 비밀키를 찾아냈던 것이다. 그는 이 수상한 키가 NSA로 하여금 컴퓨터에 마음대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해 주는 비밀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마이크로소프트는 소프트웨어의 수출과 관련한 NSA의 기술적 규제를 준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키라고 반박했으며, NSA의 대변인은 답변 자체를 거부했다.

지금 아메리카합중국에서는 '정보고속도로'를 대신해서 '군사고속도로'가 한참 닦이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이 고속도로로 수많은 자원과 목숨이 실려갈 것이다. 지난 세기를 지나며 아메리카합중국이 괴물이 되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군사적인 경우에는 더욱 더 그렇다. 직접적인 물리력만이 아니라 정보전쟁의 면에서도 그렇다. 이 나라는 결코 '아름다운 나라'가 아니다.


태그

미국패권주의 , 정보전쟁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편집실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