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노동자 [산개·대중파업]의 발전·확대·추락… 그러나 새로운 출발


3월 25일 발전파업 1달이 넘어가는 질긴 투쟁은 전국노동자 총력투쟁을 마침내 이끌어 냈다. 민영화 저지 발전파업 승리를 위한 단 하나의 길로 진군하기 위한 위대한 연대 총파업을 결정한 것이다. 간부(만)의 파업도 아니다. 4시간이라는 시한부 파업도 아니다. 단 하루만의 파업도 아니다. 아니 한번 집중하고 마는 파업이 아니라 2단계 연대 총파업(4월9일)을 계획으로 갖고 있는 총파업인 것이다. 민영화 저지를 위한 진정한 승부를 가르고자 함이며, 죽기를 각오하고 덤비고 끝내 이기고 말자는 총파업인 것이다.

4월 2일 투쟁은 어떻게 조직되고 있었는가?

4월1일 저녁 7시 경 민주노총 허영구 직무 대행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원칙적인 계획은 자료에 다 나가있다. 금속은 자동차 3사와 금속노조, 공공연맹은 주요사업장(한국통신, 서울지하철 등)이 빠진 상태지만 사회보험노조나 중소기업 중에서 가능한 조직들, 병원이 대학병원 중심으로 파업을 최대한 조직하고 있고, 택시, 화물 역시 투쟁이 준비되고 있으며, 특히 전교조의 조퇴 투쟁이 1차적으로 돌입할 예정이다. 그러면 어느 정도 갈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대대결정 사항을 갖고 투본회의를 통해 '어렵지만 밀고 갈 수밖에 없다.' 지난 4년 동안 해오지 못했던 것을 발전노조 투쟁을 계기로 민주노총이 받아 안고 가는 것이기 때문에 이 파업 투쟁에 관련해 투쟁 동력과 현장조건을 파악하고 판단해서 파업으로 가는 것은 어렵다. 무리지만 밀고 가야한다고 본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비록 현실은 어렵지만 이 투쟁을 밀고 갈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러나 투쟁동력은 그 때까지 투쟁하는 대중들이 파악한 바에 의해서도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4월2일 총파업투쟁을 하는 데 아무런 문제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2월26일에 비해서도 훨씬 강화되어 있었다. 그 점을 아래에서 확인해 보자.

현대자동차, 자발적 투쟁으로 현장을 조직하다

현대자동차에서는 모든 현장조직들이 울산 '신자유주의 분쇄 울산 공동투쟁실천연대(울산 공투련)로 결합하여 입장의 차이를 떠나 당면투쟁을 사수하기 위한 활발한 활동을 벌여나갔다. 단사 내 선전전을 강화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 울산 공투련의 활동은 발전노조의 파업투쟁이 위력적으로 전개되면서 현장조직들의 자발적 결의에 연이어 출근투쟁을 잡아나가기 시작했다. 출근투쟁에 어느 정도의 대오가 결합할 것인가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첫 출근투쟁부터 100여 명의 현장활동가와 지역활동가들이 참여하면서 힘있게 시작됐다. 연일 이어진 출근투쟁 대오는 금새 200여 명을 넘어서면서 위력적인 규모로 진행되었다. 출근투쟁이 이렇게 위력적으로 진행되면서 현장 선전전이 급속히 강화되었으며, 현장활동가들은 자발적으로 스티커 부착, 서명운동, 공동 유인물 발행, 발전가대위를 중심으로 한 지역투쟁의 적극 결합으로 나아갔다. 이런 활발한 활동을 바탕으로 현장동력은 급속히 조직되었고, 민주노총 총파업 지침에 대한 조합원들의 높은 관심을 끌어냈다.

공공연맹, 4월1일 현재 38개 노조, 2만 6천명이 파업을 준비하다

공공연맹의 경우는 한국통신, 서울지하철 등이 이번 투쟁에서 제외되어 있는 현실이고, 나머지 사업장들의 경우에도 실질적인 파업투쟁을 하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과 변수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산하 노동조합들이 어쨌든 각종 기자회견과 지침을 통해 총력투쟁을 전개할 것을 속속 선언하는 중에 있었다. 비록 이러한 천명이 구체적인 계획과 일정으로까지 제출되고 있지 못한 한계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항공산업 노조를 비롯하여 많은 사업장에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4월2일 총파업투쟁의 파고가 일 경우에는 4월 9일부터 예정되어 있던 2단계 투쟁부터는 실질적인 파업투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점점 고조되고 있는 중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병원 현장에도 연대투쟁의 함성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의 공동 단협 투쟁이 예정되어 있는 5월 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조차 이번 투쟁은 병원노동자 스스로에게 물러설 수 없는 자신의 투쟁일 수밖에 없다"는 서울대병원 지부 사무국장 이향춘 동지의 말처럼, 이미 병원 현장은 "연대 투쟁을 외면하고 대충 넘어가는 지부야말로, 정부가 공언하는 탄압에 가장 크게 노출될 것이며, 죽기 살기로 투쟁하는 지부야말로 별다른 탄압이 없을 것이다"(본조 어느 부위원장)는 말처럼, 연대 정치 총파업 결의는 이미 '선택이 아닌 필수적 정치행동'이라는 공감이 형성되고 있었다. 물론 고민도 작지 않았다. 정말 파업의 대오에 합류하는 현장의 동력이 얼마나 될 것인지, 그리고 모두들 우려하는 것처럼 흉내만 내고 몸보신에 치중하려는 행태가 나타나지는 않을 것인지 각각의 판단도 다양했다. 그러나, 이미 지부별로 농성투쟁에 돌입하고 4월 2일 조합원 임시 총회를 조직하면서 4월 투쟁의 향방에 대한 지도부의 예측은 덧없는 수고가 되고 있었다.

화학섬유연맹의 쌍두마차, 죽어있던 화섬과 석유화학 노조들이 움직이다

화학섬유연맹은 32개 노조 1만2천여명이 4월2일부터 시작되는 민주노총 총파업에 동참할 예정이었다. 이번 총파업에는 엘지정유, 한화석유, 대림산업 등 여수산단 18개 노조와 코오롱, 한국합섬, 금강화섬 등 구미 화섬3사, 그리고 금호타이어 노조가 전면파업 또는 부분파업의 형태로 결합하기로 돼 있었다. 이는 애초 3월27일의 화섬연맹 중앙위 결정, "연맹은 민주노총 4.2 전면 총파업 투쟁방침을 적극 받아 안고 총파업 투쟁을 사수하며 총파업투쟁에 참가하지 못하는 조직은 간부파업 이상을 실천한다"는 것에 비춰보면 대단히 진전된 상태다. 당시 화섬연맹 중앙위 결정은 총파업투쟁 '조직'이 아닌 '사수'였고, 실제로 당일 점검결과 전면파업에 돌입할 수 있는 사업장이 하나도 없는 가운데서 사실상 '간부파업'을 결의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더욱 높은 수준의 결의를 모은 것이다.

투쟁의 선봉 금속연맹 역시 미련없이 투쟁에 앞장섰다. 민주노총의 3월26일 임시대대 결정(4.2 총파업 돌입)을 "준수하겠다"고 주요 연맹들, 주요 단사들에서 되풀이 또 되풀이 외쳤다.

그러나 누가 어디서부터 파업이 무너져 내리는가.

4.2 총파업을 하루 앞둔 4월1일. 현대자동차 노조는 13시에 임시대대를 열고 있었다. 이미 집행부 원안으로 '4시간 파업'을 정해놓음으로써, "민주노총 지침에 따라" 총파업을 결행한다는 3.26 민주노총 임대결정을 준수하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누구를 위해? 비슷한 시간, 기아자동차 노조에는 외부(주로 언론사)에서 전화가 빗발치고 있었다. 그때마다 기아노조는 "지침 준수"를 주장하고 있었다. 이들 자동차 노조의 눈에는 바로 4월2일 모든 연맹, 모든 단사가 동시에 민주노총 지침을 따르지 않는 것이 중요하게 보였던 것인가. 4월2일 현재. 현대자동차 노조는 13시에 사업부별 집회 후 태화강으로 이동하기로 돼 있었다. 그 시각 언론은 "발전 타결"이라는 오보를 내보내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 시각 민주노총은 '긴급지침'으로 '현장대기'를 때렸고, 현자노조 집행부는 "15시부로 현업 복귀" 지침을 위원장 명의로 내려보냈다. 기아 현대가 전면파업이 아니라는 것이 확인되는 순간 어찌하여 이것이 모든 연맹이 스스로 투쟁 수위를 낮추는 빌미가 된다는 말인가. 전교조는 지부당 1명 조퇴로 후퇴했다. 택시는 또 어떠한가.

발전노조 상황:

4월 2일. 낮 12시부터 언론에서는 "타결임박""타결""사실상 타결"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이 시간에도 다수의 발전조합원들은 지도부가 교섭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몰랐다. 이날 밤 발전 상황실은 홈페이지를 통해서 "경찰이 막지 않을 것이다. 보고대회를 하기 위해 명동으로 모여라"는 지침을 내렸지만 경찰은 막고 있었다. 조합원들이 명동성당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이호동 위원장은 성당 밖에서 조합원들에게 발언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이호동 위원장은 잠정합의안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조합원들을 설득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잠정합의안에 대한 그 어떠한 집행부의 입장도 들을 수 없었다. 대신 "조합원에게 반드시 물을 것입니다. 그리고 복귀도 조직적으로 결정하겠습니다"며 이후 총투표와 복귀에 대해 언급했다. 4월3일: 조직적 결정에 의한 복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전 8시 이미 몇몇 지부상황실은 전화를 받지 않았고, 그 지부들은 이미 지부장 복귀명령에 의해 복귀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날 아침 지부장들은 위원장 명령에 의해 각 지부상황실로 복귀명령을 내렸고, 공개상황실은 동국대로 집결할 것을 명령했다. 각 지부 상황실은 혼란에 빠졌다. 결국 지부상황실의 판단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고 대오는 급격히 무너졌다. 오전 10시. 동국대로 집결한 대오는 800여명에 불과했다. 인천, 서인천, 신인천은 인천대로 집결했고 동국대에 모인 보령, 당진, 울산, 동해 동지들은 분노와 울분을 참지 못했다.

정윤지 동서본부장은 "잠정합의안에 대해 죄송하며, 개인적으로 만족하지 않고 부결이 옳다"고 발언했다. 뒤이어 엄경식 서부 본부장의 재파업 결의를 촉구하는 발언에 조합원들의 분노는 폭발했다. 실망과 분노, 허탈감에 못 이겨 조합원들은 삼삼오오 대오를 이탈하고 그 수는 계속 증가하는 상황에서 재파업 결의 발언은 너무나 공허했다. 야유와 고함 속에서 자유발언이 쏟아져 나왔고 일부지부는 이탈하는 대오를 잡고 복귀 후 현장투쟁을 결의하기 위해 집회장을 빠져나갔다. 그 와중에 어느 지부의 경우에는 조합원들의 분노와 '계속투쟁 결의'에 놀란 지부장이 "우리는 승리했다. 이 후 들어가 현장투쟁 제대로 하면 된다"는 발언으로 혼란에 빠진 조합원을 기만하더니 급기야는 큰절까지 올렸다.

잠정합의안과 총파업 유보에 대한 대중의 분노, 그리고 민주노총 임원 총사퇴

민주노총이 노정교섭을 통해 내온 잠정합의안을 둘러싸고 홈페이지에는 박훈 변호사를 비롯한 분노한 조합원들이 '민주노총'의 '민주'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민주노총은 4월3일 긴급투본회의를 열고 잠정합의안을 '거부 내지 폐기'하는 것으로 결정했으며 잠정합의, 총파업 유보의 책임을 지고 단위원장을 제외한 임원 전원이 사퇴하는 안건을 8일 중앙위원회 안건으로 상정하였다.

발전노조의 복귀는 상황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투쟁의 시작이다.

발전노조 조합원들은 이제 탄압에 맞서 현장에서 다시 투쟁을 시작해야 하는 위치로 돌아왔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전체 운동진영 역시 4월3일 민주노총 투본회의의 '공기업 사유화에 대한 저지전선을 확대하여 실질적으로 저지시킨다', '발전소 매각을 강행하거나 현장에 대한 전면탄압이 진행될 경우 대대에서 결의된 총파업투쟁을 전개한다'는 결정과 같이 다시 투쟁을 조직해야 할 위치에 여전히 서 있다. 우리 역시 총파업투쟁전선을 다시 복구하고 노동자대중투쟁을 강화하는 임무를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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