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르몽드 지가 1면 머릿기사로 보도하는 가운데, 유럽의 신문들은 일제히 지난 3월 23일 이탈리아 로마의 대중시위를 보도하였다. 보도상으로는 2백만명이 모였다고 했으나 노조의 집계로는 3백만명이 운집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요한 사안일 경우 1백만명이 모이는 것은 이탈리아 노동운동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지만, 3백만 명이 모인 것은 이탈리아 역사상 초유의 일대 '사건'이다.
주최측인 노조조차 최대한으로 잡아 1백만명이 모일 것으로 예상했었고, 심지어 시위 당일 오전에도 1백만명으로 발표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시위 장소인 고대 로마 대전차 경주장인 '치르코 마씨모' 광장에는 본격적인 시위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반정부 구호를 담은 수만 개의 깃발을 든 시위대들이 속속 몰려들었다. 시위대열은 1백만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는 이 광장을 넘쳐 콜로세움을 포위하고도 끝없이 확장되고 있었다.
희대의 대장관을 연출한 이 날 시위는 구체적으로 베를루스코니 정부의 노동법 개악에 반대하여 일어난 것이었으나, 보다 큰 맥락에서는 제노바 G8정상회담 당시의 반신자유주의 시위의 맥락에 선 것이었다.
보수 일간지들은 이 날 시위가 노동법 개악과 반테러리즘에 같은 비중을 두고 일어난 것으로 보도하였다. 실제 노동법 개악을 기획한 노동부 고문관 비아지 교수가 지난 3월 19일 저녁에 암살되었고, 사건 발생 후 붉은 여단이 자신들이 한 일이라고 발표했다고 보도되었다.
그러나 3백만이라는 대규모 동원이 가능했던 것은 반테러리즘의 명분으로 이루어졌다기 보다 노동법 개악으로 현실화될 대량해고에 대한 위협 때문이었다. 현 베를루스코니 정부는 부당 해고시 적절한 보상과 즉각적인 복직을 규정한 노동법 18조를 개악하여 해고 요건을 완화하려고 기도하고 있다. 동원의 주요 명분이 반테러리즘이 아니라 노동법 개악에 있다는 것은 노조의 주장을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노동법 개악 반대와 반정부 노선을 분명히 하되 그 방법이 테러는 아니다'라는 것이 노조측의 입장인 것이다.
붉은 여단의 암살 사건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 적지 않다. 3월 2일 집회 당시에 이미 정부는 붉은여단 잔여파들의 참여를 언급했을 뿐만 아니라, 비밀경찰은 노동부 고문관 비아지의 암살 기도를 사전에 이미 알고 있었고 또 실제 당사자에게 위험을 경고하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1970년대 초 이탈리아식 국공합작이라 할 수 있는 공산당 내각참여를 앞두고 일어난 알도 모로 암살 사건의 영상이 겹쳐지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당시 기민당 좌파의 영수로서 공산당의 정책참가를 실현시키고자 했던 그는 붉은 여단에게 납치 살해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내무장관이 이후 증언한 바에 의하면 공산당의 연정참가를 두려워한 CIA와 기민당 우파의 공작 개입이 있었다고 한다. 또다시 대규모 시위를 앞둔 현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1994년 1백만명의 시위로 인해 1년만에 권좌를 내 놓아야 했던 악몽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실제 시위 직후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노조가 비아지 교수 암살 사건을 방조하였다고 비난하면서, 27일로 예정된 노조와의 회동을 전격 취소하고 테러리즘에 의한 사회 혼란과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노조에 대한 정부의 대립이 막다른 골목으로 치달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노조의 대응도 강고하다. 공산계 노조의 주도로 기독계 노조와 공화/사회계 노조가 참여하는 4월 연대파업 결정도 흔들리지 않고 있으며, 총파업의 열기는 더욱 달아 오르고 있다.
며칠간의 대립 끝에 오히려 정부측이 한 걸음 물러서는 듯하다. 테러리즘을 이용한 여론 공세 이후에도 노조의 대응이 수그러들지 않자 27일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총파업 다음날부터 노조와의 대화에 나설 수 있다고 밝힌 것이다. 그러나 노조의 총파업을 기정사실로 인정한 가운데 나온 이러한 정부측의 대응은 테러리즘을 이용한 공세의 성공여부를 총파업의 규모를 보고 판단한 후 대화의 기선을 잡고자하는 의도를 숨긴 것이라 판단된다.
노동법 개악을 둘러싼 이탈리아 정국을 노동운동진영이 풀어가는 방법은 오직 하나 굽힘없는 파업투쟁일 수밖에 없음을 반증한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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