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월만의 복직 첫날 (2002.04.02 성경윤 분회장)[사진-copyleft 워킹보이스]
지난 3월22일부로 마을버스가 300월에서 350원으로 50원 올랐다. 비싼 집값을 감당할 수 없어 역세권에서 멀리 떨어진 집을 마련할 수밖에 없는 서민들이 마을버스에 오르며 "언제 버스비가 올랐냐"며 마뜩찮은 표정으로 50원을 동전함에 넣는 것이 조금씩 자연스러워질 즈음인 지난 27일, 잔돈을 거슬러 주던 마을 버스기사가 오히려 손님들에게 "마을버스비가 올랐어요?" 하고 반문한다. 바로 전국민주버스 대상운수분회 성경윤 분회장.
성 분회장은 지난해 6월 '계약기간 만료에 의한 계약해지'라는 명목으로 해고되었다가 그 해 11월, 서울지노위의 판정을 뒤엎고 중노위가 '부당해고'로 판정해 이날 10개월 만에 운전대를 잡았다.
기쁜 일이지만 성 분회장은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겁다. '복수노조'라며 탈퇴를 종용하는 회사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노조를 지키려다 해고되었던 조합원들의 전원 복직과 함께 예전보다 더 열심히 노조활동을 할 다짐을 해 보지만, 검찰에 계류 중인 '복수노조'건이 언제쯤 수사가 끝날 지, 또 결과는 어찌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유령처럼 나타난 경인지역마을버스노조
민주버스노조 대상운수 분회는 지난해 3월에 설립되었으니 이제 1년이 조금 넘었다. 그 1년 동안 대상운수분회는 명월관노조가 그렇듯, 한통산업개발비정규직노조가 그렇듯, '복수노조'라는 장애물에 발목이 잡혀 근로조건개선은커녕 회사와 제대로 된 교섭은 해보지도 못하고 조합 탈퇴를 강요 당해 왔다.
그런데 대상운수분회의 경우는 좀 더 어이가 없다. 정규직 노조에서 조직대상을 갑작스레 변경한 것도 아니고, 기존의 기업별 노조가 있는데 초기업단위 노조를 세우려 한 것도 아니다. 전국민주버스라는 산별노조에 가입하고 분회설립신고를 하고 나니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 소속의 '경인지역마을버스노조'라는 또 다른 초기업단위 노조에 이미 4명이 가입되어 있다고 알려온 것이다.
그러나 민주버스 대상운수분회가 서울 영등포구청에 노조가입을 알리는 공문을 보낸 것은 노조설립 다음 날인 3월6일이었고 경인지역마을버스노조가 가입신고를 한 것은 그보다 2주일이나 늦은 20일인 것으로 볼 때 해당 관청의 행정처리가 석연치 않아 보인다.
이에 대해 성 분회장은 "이미 기업 내 복수노조 금지가 2006년까지 연장된 것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분명히 조합설립 신고를 한 것은 우리가 먼저였고 경인지역마을버스노조는 민주버스 보다 2주일이나 늦게 설립신고를 했다"며 "조합 가입원서에 가입 일로 기입된 날짜를 기준으로 노조설립의 선후를 따진다면 이미 노조가 있어도 나중에 만들어진 노조가 조합원 가입날짜를 그보다 앞당겨서 적은 후 신고하면 다 모두 복수노조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민주버스 대상운수분회는 "경인지역마을버스노조는 대상운수 마을버스 기사들이 민주버스의 분회를 결성하자 '복수노조 금지조항'을 악용하여 가입날짜를 조작, 급조된 노조임이 틀림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경인지역마을버스노조는 지난 1월4일에 창립되어 한 달 사이에 40-50개의 사업장에 분회를 조직했는데 이상하게도 조합원은 분회당 1~2명에 그치고 있다. 1년이 지난 현재는 약 140개 업체가 분회로 가입했지만 이들 사업장 역시 조합원은 많아야 3~4명에 불과하다.
민주버스노조는 이러한 기형적인 경인지역마을버스노조의 형태를 지적하며 "어떠한 노동조합 활동도 하지 않고 마을버스 업체 내 노조설립을 막으려는 목적으로만 만들어진 전형적인 '유령노조'"라고 주장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유령'에게 빼앗긴 시간이다
민주버스는 경인지역마을버스노조에 대해 지난해 4월6일 사문서(노조가입원서) 위조 및 금품수수로 위원장과 대상운수 조합원 4명을 검찰청에 진정했지만 검찰 수사가 지나치게 진전이 없자 진정을 취하했다. 그리고 8월12일 서울남부경찰서에 노조업무방해 혐의로 다시 이들을 조사해달라는 취지의 진정서를 제출, 일부혐의가 인정이 되었다. 이어 노조는 9월12일, 대검찰청에 업무방해 및 지배·개입혐의로 경인지역마을버스노조를 고소하고 검사의 기소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어찌 보면 경인지역마을버스노조는 정상적으로 노동자들의 요구를 통해 정상적으로 생겨난 조합이라고 보기엔 지나치게 많은 허점을 드러내 온 것은 사실이다. 지부의 분포나 가입시기, 가입인원으로 볼 때도 그렇지만 경찰수사과정에서 100개가 넘는 지부를 가지고 있는 노조가 독립적인 사무실 하나 없이 위원장 혼자서 모든 업무를 보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또한 구청에 대상운수지부 신고를 할 때에도 창립총회나 임원선출 과정 없이 허위로 한 것이 드러나 한차례 지부설립이 반려되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민주버스노조의 복수노조 혐의가 벗겨진다고 해도 앞으로 몇 년이 걸릴 지도 모를 조사과정과 소송과정에서 발생되는 노조활동의 어려움이다. 민주버스노조는 회사에 교섭을 요청하는 공문을 지난해 3월23일부터 보냈지만 회사는 "민주버스노조는 복수노조이므로 단체교섭에 응하지 않겠다"는 내용만 노조쪽에 통보할 뿐이었다. 이후 여러 차례 단체교섭을 요청했지만 사측은 응하지 않았고 조합원들에게 비합법노조라며 탈퇴할 것을 종용했다.
이렇게 설립 당시 조합원이 전체 가입대상의 50%가 넘는 19명이었지만 노동부로, 검찰로 뛰어다니며 노조의 합법성을 인정받으려 애쓰는 과정에서 많은 조합원이 이탈했고 끝까지 노조를 지키던 분회장을 포함한 6명은 모두 계약해지됐다. 입사 당시 연봉제로 계약을 하긴 했지만 계약기간에 정함이 없었고 여태껏 계약기간 만료로 계약해지를 한 적이 없음에도 노조를 설립한 이후부터 난데없이 '단기 연봉 계약직'이 된 이들은 모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냈다. 그리고 중노위에서 자진 퇴사한 2명을 제외하고 전원복직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복직되어 돌아간 회사에는 복직대상자들을 제외하고는 남아있는 조합원도 없다.
결국 이 같은 복수노조금지조항을 빌미로 한 유령노조의 출현은 노동부와 행정관청이 초기업단위 노조의 복수노조 문제에 있어 기업별 노조의 경우와 가입대상부터 본질적으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시류에 거스르는 판단을 하고 있고, 거기다 노조의 실태나 가입시기 그리고 정황 등을 제대로 확인조차 하지 않고 형식적인 행정처리로 일관함으로써 발생되고 있다.
그리고 결국 이는 열악한 근로조건을 개선하고자 어렵사리 노조를 조직한 비정규직 노조의 또 다른 암초로 고스란히 다가오고 있다. 노동부의 행정해석대로라면 경인지역마을버스노조에 한 두 명씩 가입되어 있는 140여 개의 마을버스회사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은 이 노조를 제외한 어떤 노조도 만들거나 가입하지 못한다. 단지 노조 관계자라고는 위원장 한 명 밖에 없는 데도 말이다.
그러나 민주버스 대상운수 분회는 이러한 상황을 끈질기게 시정해 줄 것을 요구하며 끝까지 노조를 지켰다. 그 때문에 계약기간 만료를 빌미로 한 해고까지 당했지만 이 역시 부당해고임을 인정 받았고, 복직한 이들 4명은 새롭게 시작할 것을 다짐한다.
복수노조의 유령에 홀려 그 동안 입은 노조의 상흔을 치유하기는 쉽지는 않아보여도 오랫만에 반대 차선 운전석에서 따뜻한 눈빛으로 손을 들어주는 동료들을 보며 새롭게 희망을 가져본다. 언제까지 다른 방향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언젠가는 떠난 조합원들도, 지금은 나서지 못하는 동료들도, 운행 중 손 인사가 아니라 같은 민주노조의 구호로 팔을 쭉쭉 뻗을 날이 있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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