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법을 만든다. 법은 '국가의 강제력을 수반하는 사회규범'이다. 그런데 최근 이 '강제력 있는 사회규범'인 법을 만드는 국회에서 명백히 근로기준법을 위반하고도 시정조치 요구까지 미온적으로 대처한 사례가 있어 '입법기구'로서의 의미를 무색케 하고 있다.
비정규직에게 월차·주휴수당 지급 안 해
지난해 6월부터 국회 기록보존소에서 국회 연표작성 등의 기록업무를 하는 일용직으로 근무해 온 서진아(가명·28)씨. 서씨는 지난해 급여에서 월차수당과 주휴일수당이 빠졌고, 올 들어서도 여전히 주휴일수당만 줄 뿐 월차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그동안 토요일에는 격주로 쉬는 주 5일 근무를 해 오던 서씨는 4월 들어 업무량이 많아지자 쉬는 토요일까지 포함, 2주를 연속해서 토요일에도 5시까지 근무했다. 그런데 그 2주에 해당되는 급여가 다른 때보다 훨씬 많은 것에 놀랐다. 알고 보니 토요일에 5시까지 근무한 데 대해 시간외근로 수당이 지급된 것이다. 그동안 서씨는 시간외 근무를 하고도 자신은 일용직이라 시간외근로수당을 받을 수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생각지도 않은 수당이 지급된 것을 이상하게 느낀 서씨는 자신과 같은 일용직에게도 월차나 주휴가 발생하는 것인지 까지 궁금하게 됐다. 근로기준법이란 것을 처음 뒤져봤다. 그런데 또렷하게도 나와 있었다. 사용자는 1주간 소정근로일수를 개근한 자에게 주유급휴일을, 1달 개근한 자에게는 월차유급휴가를 주어야 한다고 말이다. 어느 곳에도 일용직을 비롯한 비정규직들은 이 조항에서 제외된다는 말은 없었다.
서씨는 지난 7개월 동안 만근을 했다. 당연히 그 동안 못 받은 급여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금액을 계산해 봤다. 만근을 하지 못한 달을 뺀 지난해 5개월과 올해 2개월 간의 월차수당 23만원과 지난해 21주간의 주휴수당 67만2천원, 그리고 지난해 토요일 연장근무수당(4시간분·오후 1~5시)에 대한 금액 28만8천원 등 총 119만원이었다.
하지만 밀린 임금을 달라는 요청에 따라 이달 10일 서씨에게 쥐어진 돈은 33만2천원. 관할 서무계의 말로는 "이는 월차는 제외하고 1년 간의 주유급휴일 수당 가운데 그동안 무상으로 지급되었던 중식대(하루 3,000원)를 뺀 금액"이란다. 서씨는 "마땅히 주어야할 월차수당도 소급액에 포함되어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임금의 일부를 식권으로 대신 주었다고 말하는 경우는 또 어디 있느냐"며 반발했다.
근로기준법 제42조에는 '임금은 통화로 직접 근로자에게 전액을 지급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그런데 그동안 '도의적으로' 줘 왔다는 식권을 그저 근로기준법에 의해 정당한 급여를 소급해 준다는 이유로 '법대로 할 테니 제공된 식권 값은 급여에서 제하겠다'로 바뀐 것이다.
사실관계 확인을 요구하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국회 기록보존소의 이성진 서기관은 19일 "사실, 우리도 일용직을 장기간 고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일용직도 만근을 하면 주유급휴일과 월차가 발생되는지 알지 못했다"며 의도적으로 발생한 일이 아님을 강조하면서 "경험부족으로 인한 무지에서 발생된 일이니 지금까지 체불된 수당은 월차를 포함해서 정확히 소급해서 지불하겠다"고 말했다.
법을 만드는 곳에서 법을 몰랐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급여를 지급하는 기록보존소 서무계에서 일용직에 대한 급여산출방법을 모르고 있었다는 데 있었다. 오히려 담당 서기관은 "기록보존소 일용직 일당이 다른 부서보다 높은 3만2천원인데, 올해부터는 식대를 포함해서 3만5천원으로 올렸다"면서 "만약 일용직에게도 월차나 주휴가 발생하는 것을 알았다면 애초에 그렇게 급여를 높게 설정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볼멘소리를 한다. 또한 그는 "경험부족으로 인한 무지에서 발생된 일인데 외부에까지 알릴 필요가 있느냐"며 서씨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런데, 담당 서기관은 아직 모르나 보다. 수년간 외부와 단절하고 산골에서 살다가 막 내려온 사람도 앞좌석에서 안전벨트 안 매면 범칙금 내야한다. 하물며 입법기관인 국회에서 "법을 몰라서 못 줬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한 바탕 코미디다. 만약 서씨가 이를 주장하고 나서지 않았다면 국회 기록보존소의 일용직들에게 월차나 주휴수당을 주지 않는 범법행위는 계속되었을 것 아닌가.
서씨는 "일용직의 한 사람으로서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는데도 국회 안에서조차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하는 것이 충격적이었다"고 말한다. 더불어 서씨는 "애초부터 사건을 확대시키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면서 "근기법에 명시된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는데도 신속하게 시정해 주기는커녕 사실을 은폐하려 회유나 협박을 하고 결국 어떻게든 소급액을 최소화하려는 등의 행태를 보이는 것에 참을 수가 없었다"고 심정을 털어놨다.
얼마 전 지하철 9호선 국회통과 구간 노선이 국회의 반발로 KBS기술연구소 앞 좁은 도로 쪽으로 우회하도록 노선이 변경됐다. 시민들은 국회 앞 횡 하게 뻥 뚫린 도로를 두고 비좁은 곳으로 우회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저 '법을 만드는 높으신 분들은 지하철을 안 타니까'하며 그 권위의식에 냉소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국회에는 서씨 같이 그 법의 권위에서도 보호받지 못하는 일용직들이 있으니 또 다른 서씨가 우회한 지하철로 출근해서 노동자들의 최저수준의 권리를 명시한 근로기준법을 적용 받기 위해서 먼 길로 돌아가는 일이 없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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