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하자센터에 있는 십대들이 대통령 선거에 대단히 무관심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언론에서는 국민적 관심을 끌고 있다고 하지만 그들은 좀처럼 선거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나만 하더라도 이런 정치에는 애써 무관심해야 한다고 '각오'를 다지지만 정치적으로 훈육된 궤적이 있어 여간 쉽지가 않다. 민주당 국민경선이 있는 날이면 오늘은 "누가 이겼을까"라는 궁금증에 인터넷을 뒤져보기도 하고, 노무현 돌풍의 사회적 원인을 괜히 혼자서 생각해보기도 한다.
일부 청소년 단체가 제기하고 있는 청소년 선거 관련 이슈가 관심을 끄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선거 참여와 정치 무관심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풀어갈지, 이 간극에 놓여있는 감수성의 차이가 이런 운동에서 접점을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해서 보게 된다. 하지만 첫 느낌은 선거 참여 문제가 새로운 감수성에 맞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다. 그것은 아마도 이 의제화 과정에서 청소년이 배제되어 있기도 하고, 설령 참여한다고 하더라도 청소년들이 문제를 새롭게 풀어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선거권이 없어 기성 정치에 무관심한 것도 아니고 선거권이 주어져도 별로 행사할 의사도 없는 젊은 세대를 기성 정치에 참여시키는 것은 이런 방식의 운동으로서는 쉽지 않은 것 같다.
또 하나 실망스러운 것은 청소년 선거권 문제가 청소년 예산 증액의 문제로 다루어진다든지, 국가의 청소년 정책을 수행할 행정 단위의 구성 문제에 대한 입장을 확인하는 것으로 환원된다든지 하는 식의 발상 때문이다. 이런 정치 일정에 편승한 논의들은 청소년을 정치적으로 주체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행 계획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청소년 자신도 아닌 청소년 '단체'가 청소년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이 문제를 의제화하려는 데에는 그 단체의 연륜만큼의 정치적 수 읽기가 있다는 사실만이 눈에 띄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나는 지금 청소년 단체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요즘은 그런 정치적 노련함을 탓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다만 청소년이 자신을 주체화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지 생각해보는 중이다. 지금까지 청소년은 계속 누군가에 의해 대변되어 왔고, 기성 세대의 관점에서 '육성'하거나 '보호'하는 대상이 되어 왔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가 없는 것이다. 청소년의 일상과 존재조건이 사실은 정치와 무관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너무 명백한 것이다.
청소년 자신들이 기존 제도권의 정치 일정을 타산해가면서 자신의 권리를 위한 운동을 조직화하는 상상을 한다. 그리고 이런 정치적 주체화 과정이 있으면 새로운 목소리를 낼 수 있고 나아가 기존의 말과 정치의 방식을 바꾸는 자극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한다. 정치라는 말의 의미가 아무리 타락해도 '정치적 올바름'의 문제를 우회할 수는 없다는 생각 때문인지 나는 지금 내 공간에서 청소년들과 함께 이런 사회 읽기 연습을 하는 것으로 즐거운 상상을 대리 만족시키고 있다. 하자센터에서 진행하는 <십대를 위한 사회과학> 강좌를 통해 나는 자신의 존재와 일상에서 정치와 무관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의 '환상'일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이야기를 건넨다. 그들은 아직 그들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지만 언젠가 그들의 이야기를, 자신의 언어를 만들 수 있을 것을 기대하면서 강의 준비를 한다.
하자센터 부소장 전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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