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다녀온 캠프에서 찍은 사진속의 얼굴들이 너무 행복해 보인다. 먼저 데바의집 식구들 소개를 해야겠다.
뒷줄 왼쪽 끝이 식구 중 유일한 비장애인인 최병덕(베드로)이고 오른쪽 끝이 최재호(요셉), 사진에 빠진 근(육)무기력 장애 2급 안태철 원장(바오로) 3명이 이를테면 데바의 집 창립 멤버이다. 모두 미혼이고 카톨릭 수도원 장애인 시설에서 오랫동안 봉사한 인연이 계기가 되어 지난해 뭉치게 되었다.
뒷줄 가운데 최우성은 43세로 나이가 제일 많지만 마음은 어린애와 같아 항상 아이의 천진한 미소를 짓는다. 그 왼쪽의 정상권(38세)은 식탐이 많아 물을 마셔도 한번에 쭉 들이키고, 밖에 나가면 무조건 앞으로 어찌나 빨리 가는지 손을 꼭 잡고 있어야 한다.
장애가 있지만 이를 딛고 장애인 이동권 확보에 누구보다 열심이고 울산 장애인이동권연대 커뮤니티 관리자이기도 한 최재호가 어깨동무하고 있는 이가 김형남이다.
정신지체와 하반신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바구니와 모자 등을 만드는 제주도 정동 공예 기술자이고 휠체어 마라토너이기도 하다. 늙은 어머니를 두고 공동체에 합류한 그는 말은 못해도 장애인 문제에 대해 절절이 말하고 싶은 것이 역력했다.
앞줄 이준범(왼쪽)과 유재경은 둘 다 정신지체 장애로 19세 동갑내기다. 준범이는 자폐까지 있는데 책읽기와 음악을 좋아한다. 동요뿐 아니라 가수 이름만 대면 김종서에서부터 주현미까지 노래가 줄줄 흘러 나온다. 양정동에서 자란 재경이는 얼마전 캠프에서 여자친구를 사귀어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받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데바의 집’ 이름에 담긴 뜻은.
데레사와 바오로 성인의 앞 글자를 각각 따서 장애인 소공동체인 우리 집의 이름을 ‘데바의 집’이라고 지었습니다.
데레사는 수도원에서 묵묵히 봉사하다 24살의 나이로 돌아가신 카톨릭의 수호성인을 말하고, 바오로는 외국의 많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던 성인입니다.
달천마을에 소공동체를 이룰 집을 짓다 이 곳에 보금자리를 꾸리게 된 과정은.
사실 이곳보다 달천마을이 더 바람직한 삶의 공간이었습니다. 넓은 공간에 마당이 있고, 자연과 더불어서 풀냄새도 맡을 수 있고, 그곳이라면 형제·자매들과 함께 서로 공유하며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20평 정도의 축사도 허물고 70평 정도의 공간이었는데, 50평 규모로 집을 지으려 했어요.
그러나 마을 주민들의 장애인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과 이해심 부족으로 결국 집을 짓지 못하고, 이 곳 쌍용 아진 아파트로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이 곳 ‘데바의 집’은 아파트라 형제들만 함께 모여 공동체를 이루었지요. 아파트라는 공간이 같은 주민의 이해가 없으면 사실 더 살기 힘든 공간입니다. 주민들께서 그쪽보다 이해를 많이 해주셔서 이렇게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소공동체를 생각하게 된 계기는.
대부분 장애인 수용 시설이 100명, 200명씩 많은 인원을 포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이 내 형제고 내 가족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가족 공동체를 추구합니다. 이렇게 살 때 서로 이해하며 마음이 오가지 않겠어요.
관리차원의 수용시설보다 장애인들에게 가정의 따스함을 추구하는 소공동체가 사회복지의 바람직한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10명 내외가 가장 좋은 규모라 생각합니다. 한명이 2~3명 정도 밀착할 수 있는 구조가 되어야 이들의 아픔, 기쁨과 슬픔도 함께 할 수 있겠지요. 우리집에 오신 분들이 아파트라 집이 좋으니까 ‘참 잘 사는구나’ 하십니다. 장애인들이 골방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혼자서 밥도 못해먹고 힘들게 사는 것만 생각해서는 안돼요. 내가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듯이 장애인들도 누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혼자서는 이렇게 못합니다. 여럿이 모여야만 힘이 되어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것이지요.
울산 공공시설 학교 등의 실태는.
울산대에 가 봤어요. 입구부터가 난감해요. 높은 언덕에 턱이 있고 휠체어를 타고 가도 혼자서 도저히 갈 수가 없어요.
우리 식구 중 이번에 같이 실태조사에 간 형남이가 휠체어 마라톤 선수인데도 힘이 들어 불가능해요. 휠체어가 지나가는 길만 만들어 ‘장애인 시설 이렇게 만들어 놨다’ 보여주기에 지나지 않더라구요. 점자 표시도 거의 없고 정말 장애인 시설이 형식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교도 입학하기 어렵겠지만, 설령 입학한다 하더라도 다닐 수 없는 지경이예요. 휠체어 타고 화장실 이용하기도, 나와서 손을 씻기도 어렵고, 그나마 입구에 턱이 있어서 혼자서 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뇌성마비 장애인 최옥란씨의 죽음을 통해 우리가 생각해야 할 점은.
장애인이 병이 들고 아프면 그것만으로도 많은 비용이 듭니다. 의료보호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경우도 교통비 등 그 외의 추가비용은 각자 알아서 해야 합니다. 더구나 기초생활수급자인 장애인의 경우 최옥란씨 경우처럼 치료를 받기 위해 추가되는 비용이 포함되지 않으면 생존 그 자체가 위협받을 수밖에 없어요.
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장애인의 권리를 찾고자 했던 최옥란씨가 결국 사회의 무관심속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리는 이분을 생각하면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70% 이상의 장애인들이 생존이 어려운 상황인데, 국가적 차원에서도 이해를 못하는 것 같아 너무 안타깝습니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의 이해와 관심입니다. 그럴 때 국가에서도 눈을 크게 뜨고 새롭게 장애인 문제를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장애인 권리 확보에 가장 시급한 것은.
아직 많은 장애인들이 가정에서 나오지 못하고 갇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이 어서 활짝 바깥으로 나올 수 있어야 합니다. 이들도 대자연을 접하고 여행기고 영화도 보고 싶습니다. 이것은 머리가 좋든 나쁘든, 몸이 성하든 불편하든,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똑같이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장애인들이 생각을 잘 못한다 해서, 몸이 불편하다 해서 불이익을 받으면 안되는 것이지요.
아울러 똑같이 교육받을 수 있고 일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이동이 자유로와야 합니다. 움직일 수 없다면 어떻게 교육받고 일할 수 있겠습니까? 장애인 이동권 확보를 요구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4·20 장애인의 날에 울산 장애인이동권연대가 발족할 예정인데.
달천마을에 보금자리를 마련하려던 것을 이루지 못하고 이곳에 정착하기까지 여러분들이 많은 관심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분들과 장애인 문제에 힘을 보태고자 하는 여러 사람이 모여 실태조사도 하고 준비과정을 거쳐 울산 장애인이동권연대를 장애인의 날인 4월 20일에 공식적으로 발족하게 된 것이죠. 그날 성남동 차없는 거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사진전과 거리 문화제도 열 계획입니다. 정부에서는 평소에는 별 관심없이 있다가 해마다 장애인의 날을 맞이하면 일회성 행사 치르기에 머물러 왔습니다. 비장애인의 시선으로 장애인들이 좋든 말든 상관없이 말이죠. 그 날만큼은 장애인의 관점에서 비장애인처럼 기쁘고 즐겁게 하루를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해 서울 오이도역에서 장애인 노부부가 사망한 리프트 추락 참사를 계기로 서울 등지에서는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울산은 정말 열악한 상황입니다. 실태조사를 해보니 상황은 더욱 심각하구요.
‘데바의 집’에서는 최재호(요셉) 형제가 울산 장애인이동권연대 집행국장을 맡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바위에 계란 던지는 심정이지만 점점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우선 널리 알리는 것부터 시작하려 합니다.
‘데바의 집’을 운영하며 어려운 점은.
처음에 이사 오고 난 뒤 주민들과 약간의 마찰은 있었습니다. ‘몇 명만 살아라, 옆의 아파트를 구입하지 마라’ 등의 요구가 있었지요. 저희들이 그 요구들을 다 수용했습니다. 왜냐하면 애초부터 저희는 아파트를 원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집 식구들이 키도 크고 나이도 많지만 지능은 2~3살 정도로 매우 어립니다. 바로 옆이 놀이터입니다만 혹시 아이들과 부딪칠까 염려하는 주민들의 마음도 다 이해하기에 차를 타고 야외로 데리고 나갑니다. 서로 이해하는 선에서 함께 살아가고자 합니다.
국가보조가 없어 여러분들의 나눔과 정성으로 운영되고 있는데요. 먹는 것은 거의 자립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교육이나 그 외의 것들은 아직 막막합니다. 국가가 큰 보호시설이나 인가단체만 아니라 장애인들의 현실을 파악해 우리와 같은 비인가 단체 등에도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습니다.
사실 어려운 형편이지만 지난 식목일에 2박 3일로 거제도에 캠프를 다녀왔어요. 앞으로 바다도 가보고 기차 여행도 해보고 계절마다 캠프를 다녀올 계획입니다. 봉사자의 도움 없이는 어려운 일이라 여러분의 관심이 큰 힘이 됩니다.
무엇보다 어머니와 같은 따뜻한 손길이 필요해요. 지역의 여러분이 이곳 식구들과 결연을 맺어 외출도 하고 즐거운 시간도 보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