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지만 끈질기고 처절했던 대우차 정리해고 분쇄투쟁
지난 2월 5일, 대우차 김일섭 위원장을 비롯한 수배자들이 1년 가까운 상곡성당 농성을 정리하고 경찰에 자진출두하고 있다.
1,751명 집단 정리해고 통보에 맞서 정리해고 분쇄 총파업을 벌였던 대우자동차 노동조합(위원장 직무대행 강인희)이 지난해 말부터 사측과 진행한 특별단체교섭에서 지난 9일 단협 개정과 노조승계, 고용 및 단협승계, 정리해고자 300명 복직 등 현안문제에 잠정합의했다.
지난해 4월 10일 김대중 정권의 폭력경찰이 해고자들의 정문 출입을 봉쇄하며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른지 정확히 1년만이다.
단협개악 일부 수용했으나 고용 단협 노조승계 합의, 정리해고자 복직 물꼬 터
잠정합의안을 보면 단협과 관련해 회사의 정리·해산·합병 등 경영권에 해당하는 사항에 대해 기존 노조와 ‘합의’하도록 되어 있던 조항을 ‘협의’로 바꾸는 등 단협개악안이 포함되어 있다. 노조 강인희 직무대행 또한 “단협개정을 놓고 좋은 평가가 있을 수 없다”며 단협개정에서 일정한 양보가 있었음을 시인했다.
그러나 공장 폐쇄 협박과 정부·채권단·사측·GM의 총체적 압박, 그리고 집행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아지지 않는 현장조직력, 이 점을 잘 알고 있는 사측의 노골적인 협상거부 등을 감안했을 때 이번 잠정합의안은 작지만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먼저 GM으로의 매각시 그동안 최대 쟁점 중 하나였던 노조·고용·단협 승계 3가지 모두를 합의하는데 성공했다. 합의의 성격상 경영권을 인수할 경우 GM측이 인수하게 되는 현재 사업부문에 근무하는 전 직원의 고용을 승계하고 이번에 개정된 단체협약을 승계한다는 GM측의 확약서가 합의서에 첨부되었다.
더욱 주목해서 보아야 할 부분은 정리해고자 300명에 대한 복직 합의다.
대우차 노사는 “올해 말까지 정리해고자 300명을 복직시키되 대상자 선정기준은 노사 실무협의기구를 구성하여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을 마련토록 하고 노동조합의 입장을 적극 배려한다”고 합의했다. 물론 1,751명 정리해고 규모에 비해 대상자가 300명에 불과한 점, 복직투쟁에 동참하고 있는 해고자가 350여명에 달하는 점에 비추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이 어떻게 마련될 것인가 하는 점이 남아 있긴 하지만, ‘복직요구 수용불가’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던 정부와 채권단의 벽을 허물고 정리해고자 복직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이번 합의의 의미를 부정할 수는 없다.
여기에 “2004년 말까지 생산물량 증가로 신규인력 충원이 필요한 경우 정리해고자 복귀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한다”는 추가 문구를 삽입해 앞으로도 정리해고 복직자는 늘어날 수 있다.
또 파업 이후 일방 중지되었던 각종 후생복지사항을 원상회복시켰고, 사측의 상여금 250% 반납 요구 또한 막아내는데 성공했다. 단 올해 5월 상여금 50% 삭감에 합의했는데, “노동조합이 삭감 상여 50%를 정리해고자 문제 해결에 사용하고자 할 경우 회사는 이를 지원한다”는 별도 합의서를 체결, 이를 정리해고자 지원기금으로 사용할 뜻임을 분명히 했다.
노조, GM의 쟁의권 제한 수용거부
GM측은 대우자동차 매각협상에서 갖은 수단과 방법을 써가며 억지를 부려왔다. 그중 GM이 가장 집요하게 물고늘어진 부분이 ‘평화적 노사관계’ 분야였다. GM은 “대우차 단체협약 중 일부조항이 경영권을 침해하는 독소조항”이라며 대우차 노사의 단체협약이 자신들 뜻대로 개정되지 않는 한 본 계약을 체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합의’로 되어있는 조항을 모조리 ‘협의’로 바꾸고 노조활동 축소, 노조승계 폐지 등 노조의 자주권 침해를 받아들이라고 요구하다 3월부터는 한술 더 떠 “전 세계 GM사업장의 평균 쟁의로 인한 손실일수보다 부평공장이 적어야 한다”는 쟁의권 제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부평공장 인수를 포기하겠다고 협박하기에 이르렀다.
이를 받아들이게 되면 부평공장은 1년에 5시간 이상 쟁의를 할 수 없게 된다.
노조는 공장폐쇄 위협 앞에서 끝까지 굴하지 않고 ‘GM 요구 수용 불가’ 입장을 견지했다. 사측의 교섭거부가 이어지고 노조 때문에 매각협상이 지연된다는 언론의 악의적 비난도 노조를 무너뜨리지 못했다.
결국 3월 18일 그동안 노조가 요구해 왔던 3자(노조·사측·GM)교섭이 열렸고, 이날 GM측은 본 계약서에 고용승계를 명문화하겠다고 밝히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현장 동력은 무너질대로 무너진 상태였지만 “결코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며 포기하지 않았던 결과였다. 이 선언 이후 교섭은 급류를 타게 되어 지난 9일 잠정합의에 이르게 되었다. 정부와 채권단, 경영진은 결국 GM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는 것이 증명된 순간이었다.
정부, GM에 수많은 특혜 부여해
노조가 자주권을 지키기 위해 처절하고 끈질긴 투쟁을 벌이는 동안 정부는 GM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며 ‘퍼주기’에 바빴다. GM은 올해 3월 갑자기 지난해 맺은 양해각서(MOU)를 뒤집고 △인수법인 축소 △매각대금 인하 △우발채무 보증 등의 내용으로 구성된 ‘최종인수안’을 내놓았다.
GM의 요구에 따라 맺어진 매각합의서 내용을 보면 그야말로 가관이다.
GM은 이집트 생산공장 등 14개 해외법인 인수를 거부해 2억 2천만 달러의 부채를 인수하지 않게 됐다. 또 실사과정에서 새롭게 드러날 수 있는 우발채무의 경우 채권단이 3년 동안 2억 9천 7백만 달러 한도 내에서 추가 부담하기로 했다. 여기에 채권단은 GM에 무려 20억 달러의 신규대출을 해주기로 했으며, 대출금리는 6%대의 초저금리가 적용된다.
표면적인 매각가격은 12억 달러이지만, 이번 대우차 인수로 GM이 내놓는 매각대금은 현금 4억 달러에 불과하며, 정부는 6개월간 특별소비세 납부를 유예해 주기까지 했다. ‘헐값매각’이라는 비판을 피할래야 피할 수가 없는 것이다.
“정리해고 분쇄투쟁,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일 뿐”
문성현 금속연맹 전 위원장을 비롯해 대우차 투쟁에 함께 하다 집시법, 화염병 처벌법 등으로 구속된 노동자만 전국적으로 100명을 넘어선다. 경찰병력 투입에 항의해 금속연맹은 지난해 2월 26일 오후 4시간 부분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4월 10일 폭력만행 사태는 전국민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이에 놀란 김대중 대통령이 유감을 표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1년 넘게 싸우는 대부분의 기간 동안 대우차 노동자들은 ‘외로운’ 싸움을 벌여왔다. 여기에 노조 전직 위원장들이 주축이 되어 구성한 ‘대우차 정상화 추진위원회’가 사사건건 노조의 발목을 잡았던 상황까지 이겨내야 했다.
대우차 경영진뿐만 아니라 정부와 채권단, 그 뒤에 숨은 GM까지 상대해야 했고, 매일같이 언론이 써대는 ‘매각협상 난항 - 핵심원인은 노조 고집’ ‘한 회사의 노사관계 파행이 한국 경제를 병들게 하고 있다’라는 비난에도 시달려야 했다.
회사가 강인희 직무대행 체제에 대해 “산곡성당 지도부가 배후조종하고 있다”며 비난을 퍼붓자, 결국 지난 2월 5일 김일섭 위원장을 비롯한 수배자들이 강인희 직무대행 체제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1년 가까이 진행해오던 농성을 정리하고 경찰에 자진출두, 구속수감의 길을 택해야만 했다.
물론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 할지라도 지난 9일 나온 잠정합의안은 “그 정도면 잘한 것”이라 만족할 만한 것이 못된다. 여전히 회사와 GM측은 합의문을 축소해석하려 하고 있고, 심지어 합의문을 이행할지 여부도 불투명한 게 사실이다.
대우차 투쟁은 분명히 승리한 싸움이 아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패배한 싸움이라 확정지어 얘기하지 못한다.
“이만하면 됐지” 하며 무너지고 싶은 유혹을 끝까지 이겨내고 노동조합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정리해고에 합의하지 않았다. 희망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순간에서도 노조 지도부와 정리해고자들은 결코 꺾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이 곳 농성장을 정리하는 것은 / 투쟁의 끝이 아니라 / 새로운 투쟁의 출발일 뿐이다 / 이미 올려진 정리해고 분쇄투쟁의 깃발이 / 대우자동차를 넘어 공공부문으로 / 그리고 가장 많은 착취 속에 허덕여야 하는 /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까지 / 노동해방의 기나긴 여정에 / 끈질긴 투혼으로 불살라 놓았기 때문이다” (김현, ‘농성투쟁을 정리하며’)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