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만나고 싶었습니다] 민중미술가 임옥상

임옥상. 민중미술의 1세대이자 대표적인 화가. 2001년까지 11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80년대 현실과 발언전, 문제작가 작품전, 90년대 동학혁명 100주년 기념전, 달리는 도시철도 문화예술관 등에 출품하였고 환경조형물로는 담배인삼공사 앞 '다함께 부르는 노래', 정신대 역사관의 '누가 이들에게, 대지의 어머니'. 판문점의 자유의 소 '엘자'등의 작품이 있다. 93년에는 민족미술협의회 대표로 활동하였고 현재 문화개혁시민연대, 환경운동연합, 참여연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작가, 시대를 말하라

2000년 서울에서 아셈(아시아유럽정상회담)회의가 열렸을 때, 서울의 민중들은 시애틀과 프라하에서 있었던 반세계화의 물결을 이어가기 위해 올림픽공원에 모였었다. 그날 그 자리에서는 세계화의 주역 미국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장면이 하나 있었다. '자유의 신 in Korea'. 사람들 뒤편에서 덜그럭거리며 고철덩어리가 일어서고 있었다. 포탄과 고철로 만들어진 사람, 혹은 괴물. 미 공군사격장의 사격연습으로 온 마을이 소음과 포탄에 신음하고 있던 매향리를 형상화한 작품이었다.

"우연히 매향리에 갔다가 그곳의 그 비인간적인 환경을 보고 충격을 받아 즉흥적으로 만든 작품입니다. 그곳의 포탄 쪼가리들로. 이것을 매향리에 세워두면 주민들이 싫어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아니더라구요. 이게 바로 자신들의 모습이라고 마음에 들어했습니다."

봄꽃과 햇살이 눈부신 길을 걸어 가나아트센터의 작업실로 찾아갔을 때, 임옥상 씨는 회의를 하는 중이었다. 지난 2월 이곳 새 작업실에 들어와 민예총에서 제의한 북한에서의 전시, 세계환경회의, 10월 개인전 등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는 그는 정말이지 바쁜 것 같았다. 시대를 앞서가는 예술가들이 대개 그렇듯, 그에게는 나이가 보이지 않았다. 약간 긴 머리카락, 흰 쫄티, 인디언같은 눈빛, 활력이 넘치는 제스처. 그 활력이 그를 바쁘게 만든 것은 아닐까.

"작가가 자기 자신 속에 유폐되어서는 안되죠. 시대의 부름에 따라 작가들이 작업을 하고, 한편으로는 시대를 이끌어나가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행동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작가와 작품을 구분 짓는 이분법은 잘못된 것입니다. 삶과 작업, 작가와 작품은 일치되어야 합니다."
작업실 한쪽에는 'The Great American Phallus'가 서 있었다. 역시 매향리의 고철들로 만든 거대한 미국의 성기였다. 세 다리로 버티고 선 그것은 육중한 성기로 마주선 이에게 위협을 가하고 있었다. 그의 등뒤에는 미국의 지난 9·11 쌍둥이 빌딩 폭파 사건이 담긴 작품이 걸려 있었다. '아메리칸 드림' 1과 2. 그는 군산복합체로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한편 전지구적 자본의 질서를 만들려고 하는 경찰국가 미국의 허상을 신랄하게 꼬집고 있었다.

조심하십시오, 민중미술 등장 경보

그의 대학시절은 어땠을까. 그가 대학을 다니던 70년대는 박정희 군사독재가 지속되던 불안한 시절이었다. 그에 항거하는 흐름이 그가 다니던 미술대학에는 전멸이었다. 죄의식과 창피함에 그림과 연극, 술이 분출구가 되어주었다. 새로운 기법을 통한 현대적인 작업을 했다. 그는 그때의 작업에 대해 '형식주의에 경도됐었다'라며 화실 한 쪽의 추상화를 가리켰다. 그 때의 성향과 닿아있는 작품. 다분히 낭만적이고 감성적이던 이 시기의 분노와 열정은 대학원에 들어가 극복됐다. '내용이 없는 형식, 형식이 없는 내용은 아니다. 아름답지 않은 것을 아름답게 그리려 하지 말자. 현실을 보자. 군사독재, 남북분단, 미제국의 영향……. 이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감상이 되는 그림을 그리자.'

그런 그에게 붙은 이름이 '민중미술가'였다. 지배층은 저항과 반항의 몸짓을 나타내는 이들을 묶어 부르기를 좋아했다. 민중신학, 민중미학, 민중미술.

"나는 그런 이름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지들이 그러더라고. 띠-띠- 여러분 조심하십시오, 드디어 민중미술이 나타났습니다. 듣고 보니 어, 좋은데. 그래서 민중미술이라는 이름을 오히려 제 정체성으로 가져왔죠."

거리로 걸어나온 그림

'민중미술가' 임옥상은 80년대 작품 압수와 경고, 요감시에 시달려오면서도 현실에 발언하는 그림을 그려왔다. 90년대 들어서는 80년대까지 민중미술이 가진 지식인 중심의 한계에서 나아가 거리로 나왔다. 95년 '성공한 쿠데타는 기소할 수 없다'는 판결에 화가 나 5·18 기소 포스터를 제작해 광화문, 강남, 서울역 등지에 붙여대다 잡혀가기도 했다. 광주비엔날레에서는 3김 게임을 발표하려다 좌절하기도 했다. 게임 형식을 미술로 차용한 작품이었다.

"화면에 똥덩어리가 떠요. 그리고 파리 세 마리가 나타나 똥을 갉아 먹습니다. 그러다 똥을 다 먹으면 죽죠. 숙주가 없어지면 죽는 존재.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작품의 내용과 형식이 끊임없이 현실과 사람들에 밀접해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그는 또한 작품이 사람들 속에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작품은 상품이 아니며, 개인에게 소유시키는 것이 아니라 함께 누릴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손대지 마시오, 가 아니라 내 작품에 와서 손대고 놀아라, 합니다. 그 속에서 더욱 생명력을 얻는 작품. 공공미술의 개념이 필요합니다."

매향리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자유의 신 in Korea', 거대한 얼굴동굴에 사람이 들어가 앉아 땅을 느낄 수 있는 '흙의 소리', 담배인삼공사 앞의 소리나는 분수. 현실에서 나오고, 호흡하길 원하며, 있어야 할 곳에 자리잡은 그의 작품들이다.

소리에 주목한다

그러나 혹 민중예술이라는 말은 시대착오적인 감상을 주기 일쑤고, 예술은 결국 민중들의 급박한 삶과는 먼 것이 아닐까.

"자본주의는 가난을 확대재생산하면서 존재합니다. 복지 국가란 없어요. 공동체사회만이 길입니다. 현실의 급박함을 무시할 수는 없지요. 그러나 작가는 파도에 휩쓸려가는 것이 아니라 파도를 잘 타는 사람이어야 할 것입니다.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미술을 도구로만 쓸 생각을 해요. 미학의 회복, 예술가들이 가진 상상력, 비전, 직감을 받아들여서 그들의 내용과 함께 할 수 있게 해야지요."

예술가 임옥상은 지금, 20세기에 잊어버린 기능을 회복시키는 작업을 고민 중이다. 그는 우리가 너무 삶만을 떠들고 있으며, 죽음과 신에 관한 경외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사람과 자연 옆에서 그것의 '소리'를 들으려 노력함으로써 진정한 소통과 치유가 가능해질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소리에 주목한다.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서로 한발씩 상대에게 다가가야 한다. 최단거리까지 다가가지 않으면 상대의 숨소리는 감지되지 않는다. … 미술-시각예술이야 말로 눈감음이 필요한 예술이다. 눈감음은 소리를 듣는 일이지만 또 자신과 만나는 일이다. 내면의 소리를 듣는 일, 자신과 대화하는 일. 우리는 모든 것과 작별함으로써 새로운 것을 만날 수 있다.
-임옥상, 소리에 주목한다, <문학사상> 3월호


자신의 작품을 멀티적으로 표현한다거나, 소리의 친밀함을 애정이 듬뿍 담긴 몸짓으로 보여주던 그가 생각하는 예술, 그것은 '딴지'다.

"기본적으로 모든 예술은 사회주의적입니다. 동지애, 사랑이라는 덕목을 제시하지 경쟁 같은 것을 제시하지는 않죠. 급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잠시 쓰러트려서 돌아보게 만들고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것. 한마디로 예술은 자본주의의 적이죠."

대학생신문 원주 기자 hoho@e-unipress.com

태그

민중미술가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편집실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