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 copyleft 교육희망] 자리 잃은 교사 / 수업권 포기한 아이들 / 무책임에 절망한 학부모
곽민욱 기자
1년을 끌어온 인권학원 사태가 일단락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 교육청이 지난 2월 19 일부터 3월 9일까지 감사과에서 벌였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인권학원은 이사회 운영과 관련 2000년 1월부터 사실상 이사장이 이사회에 참석하지 않았고 일부 이사들도 불참한 가운데 이사회를 개최해 의결 및 정족수에 미달하거나 직무대행자 미지정, 회의소집통지 절차 위배 등 56회의 부당 운영 사례가 드러났다.
■ 1년 동안의 파행 일단락 될 듯
또 자격이 없는 설립자가 결재하는 등 부당하게 법인업무에 간여한 사실도 적발해냈다. 교육청은 특히 2000년 251차 및 260차 이사회에서 의결한 3명의 이사 중임은 의결 정족수 미달임을 확인하고 임원취임승인 처분을 취소했다.
그리고 5명의 임시이사를 2∼3일 안에 파견할 것임을 밝혔다.
그리고 이사회 회의록 허위작성과 법인업무 부당 간여 등의 불법 사실에 대해서는 관련자를 형사 고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서울교육청은 교사 19명이 파면·해임되고 교장직무대행과 관련한 문제를 수습하는 데 우선 힘을 쓸 것임을 강조하면서 지난 해 7월과 달리 법인측의 관선이사 직무정지 가처분 행정소송에서 패소할 우려가 없다고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 6일까지 일주일여 동안 등교거부 투쟁까지 벌였던 학생들은 8일, 9일부터는 임시이사 파견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듣고 수업에 복귀했다. 한 달이 넘은 공백을 메우려 대청소도 실시했다. 수업을 재개한 날 출석률이 7∼90%로 후유증이 있었지만 수업을 진행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전해졌다.
각각 성명서를 낸 인권연합 분회와 서울지부는 서울교육청이 구 이사진 중 2명을 남긴 것에 대해 “구성원의 화해를 전제로 한 정상화 계획을 제출한 바 있는 재단측이 복귀하자마자 무차별 징계를 하고 관선교장직무대행을 쫓아냄으로써 분규를 촉발 시켰다”며 “약속을 어기고 학사파행의 원인을 제공한 책임을 물어서라도 전원 임시이사를 파견할 수 있지 않느냐”고 못마땅해하기도 했다.
인권학원 교사들이나 학생들 중 임시이사를 곧 정상화로 받아들이는 숫자는 많지 않다.
먼저 지난 2월 25일 19명의 교사에 대해 결정된 파면과 해임 조치 철회가 거론된다.
■ “선생님을 돌려달라”에 성실히 답해야
교육청도 지난 8일 지난 해 복무감사 결과 교육청이 요구했던 수준(중징계 5명, 경징계 10명)에 맞추겠다는 의사 표한 바 있어 대폭 완화 혹은 철회가 예상된다. 한편, 지난 해 7월 파견된 임시이사들이 선임했던 교장직무대행에 대한 원상복귀도 주요하게 거론되는 과제다.
하지만 일부 교사들의 반발과 자격증 문제, 구 재단이 선임한 교장들과 자리가 중복되는 문제 등 해결하기엔 의외로 복잡하다. 여기에 소요 사태를 주도했던 학생들에 대한 징계나 시위에 가담했던 학생들에 대한 결과 처리 에 있어서도 곤란하다.
나아가 현재 진행중인 고소·고발건의 취하 등 서로 피해를 줄이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전교조 서울지부장을 비롯한 지도부 2명과 학부모 1명이 사태와 관련 구속된 바 있고, 이미 4명의 교원이 신분을 잃었다. 이미 고통을 겪었지만 재단과 교사간, 교사와 교사 사이에 민형사상 수많은 고소·고발이 오갔다. 유형·무형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향후 갈등 촉발 여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학생들은 교사들이 교단에서 떠나는 상황이 발생하면 다시 교실을 뛰쳐나갈 수도 있다는 지적은 새겨둘만 하다.
■ 갈등 씻겨야 진정한 정상화
교육청은 교사들간의 갈등을 누누히 강조하고 있다.
분명 재단의 비리와 전횡에 반기를 들고 일어선 교사들과 이에 동참하지 못한 교사들과 반목과 오해가 존재하고 있다.
분규가 발생한 4개 학교(신정여상, 신정여중, 한광고, 구로여정산고)에는 현재 2개의 시간표와 한 반 두 담임 현상이 여전히 남아있다.
따라서 분규에 참여한 교사와 그렇지 않았던 교사들 모두 교과·담임·보직 배정에 있어 납득시킬만한 조정안을 마련하지 않는 한 갈등의 불똥은 어디로 튈 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학생과 교사간의 갈등이다.
다수의 학생들은 19명의 교사들에 대한 징계위원회에 참여했던 교사들과 재단의 비리에 맞선 싸움을 저지했던 교사들에 대한 상당한 불신을 가지고 있다.
수업이 재개된 이후에도 일부 학생들은 교실 앞문을 잠궈놓는 등 집단적인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는 먼저 제시한 정상화 과제들을 진행하면서 지속적인 대화와 설득으로 풀어야 할 과제로 지목된다.
성원식 전교조 인권연합 분회장은 “학교 구성원들간의 갈등이 많이 고민된다”면서 “임시이사가 파견된 이후 정상화에 필요한 조치가 취해진다면 먼저 마음을 열고 화해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임을 밝히고 있다.
한편, 임시이사진이 어떻게 구성될지 여부가 정상화의 향배를 가름할 것으로도 전망된다. 서울 교육청은 공정하고 객관적인 인사로 구성한다고만 했을 뿐 구체적인 기준과 원칙을 제시하지 않았다.
현행 사립학교법에 의하면 학교 이해 당사자들이 임시이사를 요구하는 방식이 아닌 한 임시이사는 전적으로 교육청에 달려있고 말 그대로 ‘임시’ 역할만 할 수 있을 정도로 자체적으로 정상화를 주도할 권한이 주어져 있지 않다.
국회 교육위 소속 의원의 한 보좌관은 “임시이사 선임이 교육청에 막강한 권한이 있어 사태가 원만하게 해결되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며 “무엇보다 사태의 본질을 알고 정상화 의지를 가진 가진 인물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취재후기]인권학원 사태를 함께 고민하는 이유
지난 11월 14일 서울 행정법원에서 서울교육청의 관선이사 직무정지 가처분 소송에 대해 재단의 손을 들어줬을 때 재판정에서 이 광경을 목도한 인권학원 교사들의 얼굴에서 쏟아져내린 절망감을 잊을 수는 없다.
19억 재정비리 사실이 밝혀졌어도, 열악한 교육환경에서 시달렸던 아이들의 눈물이 교육청 앞에 고였어도, 교사들의 분노에 떤 시간이 끝없이 이어졌어도 사립학교법이라는 높다란 가시 덩굴을 넘지 못한 채 주저앉고 만 것이다.
이 밖에도 사립학교법은 시종일관 인권학원의 뒤를 따르며 고비마다 발목을 잡았다.
회계장부가 소각되고 회의록이 날조되고 자격이 없는 자가 결재권을 쥐고 학교를 흔들었지만, 교육청이 손을 쓰지 못했다는 사실은 공공성을 외면한 사립학교법의 실상을 나아가 우리 교육의 현주소를 일러준다.
때문에 굳이 우리 교육에서 차지하고 있는 사학의 비율을 거론하지 않아도, ‘사학의 자율성’이란 구호가 오늘날 신자유주의 교육의 선두를 이끄는 사례를 들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은 ‘인권학원의 절망’에 같이 가슴을 졸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인권학원 사태는 교육이란 단지 지식을 전달하고 개인의 능력을 기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소중한 원칙을 일깨워준다.
턱없이 비싼 앨범비, 특기적성교육비, 명찰비, 수학여행비로 인해 배움의 의미에 관심을 멀리한 채 교사들을 불신해오던 학생들이나 이중출석부, 취업생 숫자 등 형식과 편법에 가르침의 의미를 잃고 고민에 빠졌던 교사들이나 지난한 투쟁 기간 잃었던 시간과 함께 불신과 고민을 털어버렸던 것도 분명 사실이다.
이는 곧 교육 현장에서 크건 작건 부당한 조건과 현실을 직면하며 때론 잊어버리며, 때론 자위하며 살아가는 '교육 동지'들이 인권학원 사태를 단지 한 학교의 사례로 치부하며 혀를 차고 말 것이 아니라 가슴에 새겨 연대의 정신을 가다듬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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