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호/연재] 북반구 노조에 대한 페미니즘의 도전 : 가능성과 모순

노조 페미니즘은 임금노동과 무임금 노동, 가정과 직장, 경제와 사회의 이데올로기적 분할을 해체하는데 근본적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지역사회로부터 분리된 영역으로서의 직장을 사고하는 것을 도전함으로써 공/사 분리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불러일으켰고 직장과

북반구 노조에 대한 페미니즘의 도전 : 가능성과 모순

[소셜리스트 레지스터」2001년호, 로즈메리 워스켓

이번 호부터 2회에 걸쳐 연재하는 "북반구 노조에 대한 페미니즘의 도전 : 가능성과 모순"을 연재한다. 이 글은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등장부터 노동계급 페미니즘의 성장으로 이어진 과정에서 남성중심적, 권위적 노동운동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보여준다. 또한 경제주의와 개혁주의적으로 빠져든 여성운동의 문제에 대해서도 살펴본다. 다음 호는 '경제 구조조정과 페미니즘의 제도화'에 대한 내용이며, 오늘 우리의 여성운동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되어 연재한다.

고도로 발전된 대부분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조합에 대한 페미니스트의 도전은 25년 전에 분출되었다. 이 에세이는 여성과 노조 사이의 대립적인 관계의 역사를고찰하고 노조의 조직, 활동, 그리고 노조의 역할과 목적의 총체적 비전을 구성하는 데에 페미니즘이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한 평가이다. 페미니즘은 자본주의 세계에 맞서는 노조운동을 부활시키고 사회주의를 향해 그들이 조금이라도 나아가도록 도왔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복잡하며, 페미니스트 세력의 다양한 조류들과 더불어 이 조류들이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진척됐던 노조와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과 융합되는 방식 모두에 대한 평가를 포함한다.

20세기 말을 조망해보면, 노조 페미니즘의 구성에는 세 개의 독특한 세력이 있었다. 즉, 1970년대 동안 발전한 사회주의 페미니즘, 1960년대 초부터 여러 국가에서 시작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으며 여성 노조 활동가들의 상당부분 경제적 투쟁으로부터 등장한 노동계급 페미니즘, 그리고 일반적으로 '기회평등'의 구호 아래서 진행된 주류 젠더 정치 운동이 있었다. 1970년대 말과 1980년대에 여러 자유 민주주의 국가 내에서 솟아 나온 이 세 개의 조류 모두는 오늘날 노동운동 내부에 긴장으로 남아있고, 서로 상호작용해 중요한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 에세이의 전체적 주장은 법률상, 그리고 단체교섭에 있어 페미니즘의 공헌이 실재적이고 상당하다는 것, 가정과 직장 사이의 이데올로기적 분리에 페미니스트 시각이 효과적으로 도전했다는 것, 몇몇 노조 내에서 민주주의가 운영되는 방식에 페미니스트적인 영향으로 변화했다는 것, 그리고 지도층에 여성이 더 많이 활동하고 있다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는 작업장과 공동체와 사회가 어떠해야하는지에 대한 노동조합의 시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실로 그들의 남성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노조 페미니스트들도 경제주의 그리고 개혁주의적 의제를 추진했고, 이의 근원은 남성 지배적인 기업형 노동조합주의만큼이나 주류 페미니즘에 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페미니즘과 노조운동의 만남이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전망이 노동운동을 변화시키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이 에세이는 주로 캐나다 페미니즘을 실례로 들고 있다. 캐나다 페미니즘이 얼마나 대표적인가는 말하기 어렵지만 그들은 지난 50년 동안 진행된 발전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등장

페미니즘은 자본주의적 자유민주주의 사회 안에 사회주의 운동에 있어 결정적 순간에 재등장했다. 1960년대 말, 이 사회들 대부분에서 국가는 정치, 사회와 노동현장에 급진적 변화를 요구하는 노동자와 학생들의 진보적 운동으로부터의 도전을 받고 있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페미니즘은 그 시대의 정치적 사회적 헤게모니에 대한 광범위한 도전의 일부로서 재등장한 것이다. 이러한 도전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되었다. 전통적인 권위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과 도전으로, 어떤 지역에서는 학생 급진주의자들과 함께 한 노조의 전투성으로, 개발자의 권력에 도전하는 새로운 좌파 공동체 운동과 정치로, 국제연대 투쟁으로, 그리고 여성의 정치세력화와 개인적 성적 정치를 변화시키기 위한 요구로 표출되었다.(1)

그때까지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은 일반 사회나 사회주의 조직 내부에서나 여성의 종속과 억압을 변화시키는 데 관심을 거의 두지 않았다. 사회주의 운동 안에서 여성들은 적극적이었지만 일반적으로 비서로서, 회원관리자로서, 차나 타주는 사람으로서 사무보조 일로 밀려나 가시화되지 않았다. 1960년대 인간해방에 대한 생각은 이를 변화시키는데는 큰 기여를 하지 않았다. 좌파 조직 내 대부분의 영역에서 여성들은 종속적 위치를 부여받았다. 사회주의운동 내의 가부장제는 보수적 기관들 내에서 만큼이나 강력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주의자 여성들은 그들 자신과 그들이 속한 정당과 조직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조직하기 시작했다.(2)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 좌파진영 여성들에게 몇 가지 가능성이 열려졌다. 몇몇은 그들이 이미 속해 있는 사회주의자 조직 내에서 투쟁을 시작했다. 정파 조직들의 가부장적 관계와 권위주의적 운영에 대해 변화를 시도하다 지친 몇몇은 (이 운동을) 떠나 여성해방운동을 구성하던 작은 조직들의 다른 여성들과 합류했다. 어떤 이들은 양쪽 모두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 또 다른 이들은 정치적 활동의 중심을 여전히 노동운동에 두고 있었다. 영국에서는 쉬리아 로우보텀, 린 시걸과 힐라리 웨인라이트가 쓴 [미완을 넘어(Beyond the Fragments)]에서 노동당과 다른 좌파 정당 몇 조직에 대한 1970년대 말의 실망의 관점에서 이와 같은 논쟁을 풀어갔다.(3) 그들의 관점은 여성해방운동의 경험이 그 어느 때보다 '더 민주적이고 진실로 더욱 대중적이며 더욱 효과적인 사회주의 운동' 건설에 장애가 됐던 것들을 극복하는 데에 많은 기여를 했다는 것이다.(4)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로 자신을 규정하는 여성들에게 좌파 조직 내에서든 노동운동 혹은 일반적인 여성운동에서이든 다른 여성들과 함께 일한 경험은 그들을 민주적 참여를 촉구하게끔 만들었다. 이는 전위주의(vanguardism)와 좌파 분파주의들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자신들이 이후에 쓴 글에서 이 경험을 되돌아보면서 여성들이 함께 협력하는 과정이 일상을 보다 민주적으로 살아가고 급진적 변화를 위해 투쟁할 수 있도록 하는 집합적 능력을 발달시켰다고 주장한다.(5) '2세대' 페미니즘의 가장 중요한 통찰 중 하나는 여성이 자주적 활동의 개발하고, 경험하고 있는 종속으로부터 스스로 자유로워지고, 자신의 수동성, 복종, 자신감의 부족을 극복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노동계급 남성들이 여성해방운동의 교훈을 적용함으로써 일도 이익이 많았다. 그러나 물론 그 당시 그들이 그러한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여성의 자주적 활동을 발전시키는 것은 분석과 토론을 통한 의식화, 그리고 민주적 의사소통 과정을 개발하고 권위적이고 관료적인 구조에 반대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런 점에서 페미니즘이 "맑시즘의 급진적으로 민주적이며 해방의 전망을 회복하고 발전시키는, 맑시즘의 부흥을 일으키기 위한 큰 자원"(6)이라는 요한나 브렌너의 주장은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의 관점을 정확히 포착한 것이었다.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운동을 좌파가 완전한 자기 모델로 삼아야한다고 주장 한 적이 없고, 오히려 힐러리 웨인라이트가 말했듯이 "여성운동은 어떠한 사회주의자들도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성과, 또는 최소한 그 성과를 달성하기 위한 시초를 형성"했다.(7)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또한 페미니즘이 노조 안에서 전통적으로 종속되어 있던 사람들에게 교육과 참여를 장려하고 그들을 포함시킴으로서, 권위주의적이고 관료적 구조와 실펀을 변화시킴으로서, 그리고 위계를 없애고 평등주의를 장려하므로써 노조를 민주화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이러한 생각을 노조운동 안으로 가져왔고 작업장에서의 저임금과 낮은 지위, 노조 내부에서의 종속과 비가시성에 싸우는 과정에 있던 여성 노조 활동가들과 연대했다.(8)

노동계급 페미니즘의 등장과 성장

지배계급 여성들의 관심은 계급 그 자체의 변화없이 젠더 관계 내부를 변화시킬 가능성에 대한 생각에 머물러 있다. 분명한 것은 노동계급 여성들의 관심사는 특히 모호하고 전통적인 가족 형태가 가족 경제의 기반이 변화함에 따라 훼손되고 있기 때문에 보다 근본적인 모순에 직면하고 있다라는 점이다.(9)

노동계급 여성 삶의 물질적 조건을 변화시킨 것은 여러 자본주의 경제질서 안에서 여성 노조 활동가들에 의한 전투성 증대였다. 1960년대 말에서 80년대까지 대부분의 국가에서 여성들 -특히 기혼 여성들-이 임금 노동자로 대대적으로 유입되었는데, 사실 상당수의 노동계급 여성들은 이미 임금노동자로 일해왔다.(10) 아이를 가져도 그녀들은 임금 노동력으로부터 떠나지 않았고 남성들로부터 분리된 직업에 남아 있었다. 특히 20세기 초기부터 노동계급 여성들 상당수가 산업 생산에 고용되었던 프랑스의 사례에서도 이와같은 현상을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프랑스에서 여성조합원들의 전투성이 여성운동의 재등장 훨씬 이전에 나타났다는 사실은 그다지 놀랍지 않다.(11)

영국, 캐나다와 미국 노동계급 여성들의 경험은 약간 달랐다. 1960년대와 80년대 사이에 이 세 나라에서는 임노동력에의 참여가 급속히 증가했고 그 결과, 여성들 다수가 노조로 조직되었다. 이는 주로 공공부분에서 일어났다. 이들 각 나라에서 노동계급 페미니즘은 1970년대와 80년대에 조직화된 여성들이 진행한 파업과 전투적인 투쟁으로부터 나타났다.(12) 당시 이 파업들은 여성들의 것으로 규정되지 않았다. 노조내 여성들이 여성주의적 언어에 보다 익숙해지고 난 후가 되어서야 이러한 파업이 평등을 위한 투쟁의 시초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거의 모든 경우에서 핵심 이슈는 저임금 혹은 동일임금(이후에 사회주의 페미니즘에서 이를 저임금노동의 원천으로서 여성이라 개념화했다)에 대한 요구였다.(13) 더 높은 임금에 대한 요구는 노동현장에서 여성의 낮은 지위와 노동에 대한 존중과 존엄에 대한 강조와 함께 이루어졌다. 노동계급의 경험을 가진 여성들은 여성해방 운동을 그들이 누릴 수 없는 사치품으로 여겼다. 자신의 브래지어를 태우고 성해방을 요구해 대중적 존경을 받은 북아메리카 여성들의 이미지는 기본적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가족임금을 최대한 늘려야 한다는 염려하는 나날이 하는 여성들에게 사치로 비춰졌다. 도로시 스미스가 지적했듯이, 가부장제는 중간계급 여성만큼 노동계급 여성들에게 가시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가부장제는 "계급지배를 만들어내는 일련의 제도적 과정과 같은 데 기반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런 과정의 가부장적 행위는 계급 지배로부터 쉽게 구별되지 않는다."(14)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그들이 노조안으로 가져온 분석을 통해 여성 조합원의 삶의 물질적 현실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인식을 퍼트렸다. 여성들은 비공식 집단에서, 나중에는 공식 교육 과정과 워크샵에서 여성 억압의 물질적 이데올로기적인 토대에 대해 토론했다. 많은 나라에서 노조 운동 외부에 있던 페미니스트들은 파업중인 여성들을 지원하기 위해 시위대에 합류해 노조자매들과 연대했다.(15)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이탈리아에서는 1970년대에 여성 노조원 모임들이 신좌파 출신이 여성들의 발의로 만들어졌다. 그들은 노조 내에서 여성 자치 조직을 요구했고 쟁취했다.(16) 이 네트워크들은 오히려 고용 상 요구보다 오히려 정치 활동에 중점을 두었다. 이는 1970년대 중반에 미국과 캐나다에서 조직되기 시작한 노조 안에 남성중심의 단체교섭과 정치를 변화시키는 것을 주로 강조했던 비공식 여성위원회와 대조를 이루는 것이었다.(17)

노동조합에서 가장 논쟁이 분분한 문제 중 하나는 노조 내 여성들의 독자적 조직화와 관련된 것이었다. 비공식 여성위원회는 1970년대 중반 캐나다와 미국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공식위원회, 각종 교육과정, 워크샵과 회의 등이 이를 계승했다. 전에 지적했듯이, 페미니즘의 가장 중요한 통찰 중의 하나는 여성들이 자신의 수동성과 종속에 맞서 적극적인 참여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들에게 침묵하고 눈에 띄지 않게 남아 있으려는 경향이 있고 남성의 지배와 정복을 막아내지 못하기 때문에 여성조합원들은 남성들이 없는 자리에 자신끼리 여성의 종속에 대해 함께 토론하고 논쟁하고 분석할 수 있는 분리된 모임을 만들었다. 이전의 '의식화'과정으로부터 발전한 이런 분리는 여성들로 하여금 자기 노조 내에서 자기 위치를 온전히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기술, 지식과 자신감을 발달시킬 수 있도록 해줬다. 더 나아가 이러한 포럼들 내에서 전통적 노조 회의에서 목격되는 관료주의와 권위주의적 운영을 반대하며 민주적 여성주의적 운영을 발전시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독자적 여성위원회는 또한 여성 조합원들이 교섭 테이블과 협상에 자신들의 요구를 반영시키기 위한 전략을 짤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18)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의 독자적 조작화가 결국 노조 전체를 강화시킨다고 주장하긴 했으나, (이런 독자적 조직화가) 운영과정 및 그들의 권리 주장에 있어 여성들의 주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문제도 있긴 했다.(19) 제인 젠슨은 프랑스의 경우 노조 내 여성 자치 조직의 설립으로 그들이 노조의 주요 사업의 일부가 아닌 주변적 노동자로 비춰지게 됐고, 그 결과 그들은 노동시장 혹은 노조에서 일반 노동자로서 평등한 취급을 받게 됐다고 주장한다.(20) 분명한 것은 여성들이 노조 내에서 그들의 세력을 강화하려면 자치와 통합 사이에 균형을 유지해야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이다. 여성과 기타 종속적 집단들은 많은 경우 분리된 위원회로 묶었으며 '진지한' 노조 사업으로부터 분리되고 주변화되었다. 더구나, 여성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노조정책에 의견을 반영시키려는 시도에서 여성들은 '아내'라는 명목으로 주변화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노조원 부인들의 위원회는 노조의 의사 결정으로부터 분리되고 주변화된 것으로 노조가 조직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1984년 영국의 "탄광폐쇄에 반대하는 여성들"과 1978년 캐나다의 "인코 파업을 지지하는 아내들"이 있다. 각각 노조와 지역사회 간의 연대 증진을 위해 조직되었다. 둘 모두 가정이라는 사적 영역이 (공적) 노동의 영역과 통합되어 투쟁을 지원하고 행동을 하는 지역사회를 만들어냈다. 두 그룹 모두 지역사회로부터 노동이 분리되는 것에 중요한 의문을 제기했다. 탄광에서 일하는 남성만큼이나 지역사회에 그들의 삶 대부분도 탄광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지 않는가? 그들(여성)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의견을 제시하거나 할 수 있어야 하지 않는가? 이러한 의미에서 두 그룹 모두 노동계급 민주주의, 그리고 생산하는 자와 '재생산'하는 자 양쪽 모두가 전체 노동계급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의사결정에 대해 토론하고 기여할 권리와 관련된 문제를 제기했다.(21)

1980년대 초가 되자, 노조 페미니스트들은 작업장에서, 그들의 노조 안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여성의 종속을 변화한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과 정책을 토론하고 개발하기 시작했다.(22) 이는 여성의 '3중 생활'(노동자로서, 부모로서, 그리고 노조 활동가로서)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노조 행사 시 육아서비스 제공 등 가정 안에서의 부담으로부터 여성을 해방시키는 정책을 개발하는 것을 포함한다. 가정과 작업장 사이의 관계, 그리고 두 영역에서 여성의 종속에 대한 강조는 기존 노조의 전통적인 목표에 의문을 던지는 효과를 낳았다. 노조는 오직 작업장에 관련된 문제만 다뤄야 하는가, 아니면 사회적 문제 전반에 관여해야 하는가? 캐나다에서는 1980년대 말부터 노조 페미니즘이 낙태, 보육, 성적 인종적 괴롭힘과 기타 평등 이슈들에 관한 정책을 포함하도록 기존 노조의 협소한 시야에 도전했다.(23) 이제 캐나다에서는 단체교섭에 여성과 차별당하는 기타 집단의 요구가 포함되어야 하며, 더 일반적으로는 노조운동이 작업장 이슈를 넘어 총괄적으로 노동현장과 사회 사이의 관계를 반영하는 사회적 관심 분야를 다뤄야 한다는 사실이 확립됐다.

여기까지 보면 노조 페미니즘은 임금노동과 무임금 노동, 가정과 직장, 경제와 사회의 이데올로기적 분할을 해체하는데 근본적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지역사회로부터 분리된 영역으로서의 직장을 사고하는 것을 도전함으로써 공/사 분리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불러일으켰고 직장과 사회 간의 관계에 대한 노조운동의 전망을 확장하려는 잠재성을 증대시켰다. 예를 들어, 페미니스트들은 노동시간 단축과 같은 이슈을 재개념화해 그 요구를 확장시켰고 가정과 지역사회에서의 문제와 연결시켰으며 노동력 재생산과 지역사회의 문화 활동을 발전시키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요구할 수 있었다.(24)

* 후주

1) 린 시걸, [Is the Future Female], 런던, 비라고 프레스, 1987, p. 206.

2) 이는 공산주의 정권 하에서 얻는 성과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프리그 흉은 통일 이전 동독 여성들은 사회적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서독 여성들보다 더 독립적이었다고 지적한다. 그녀의 책, [Beyond Female Masochism: Memory-Work and Politics] 런던, 베르소, 1992, pp.185-217 을 보라.

3) 쉬리아 로우보텀은 노동당 헤크니 지부의 젊은 사회주의자 그룹에서 트로츠키주의자를 만난 경험과 1960년대 후반 그녀가 국제사회주의자(IS)에 잠시 참여했던 1960년대의 경험을 묘사했다. "1968 5월에 분출된 에너지"에 압도된 그녀는 그후 이어진 좌파 운동이 겪었던 패배를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었다. 그러나 1968년의 급진적 운동은 그녀의 정치적 '눈과 귀'를 열어주었다. 인간해방과 자본주의의 '정신지배' 거부에 대한 강조는 민주적 중앙집권제와 더불어 혁명적 지도자들의 "우월하다고 하는 지식이 민중에 대한 속임수를 정당화한다는 주장"의 한계를 그녀로 하여금 인식하게 만들었다. 민중을 지도하는 권력의 장악이 혁명적 지도자들의 뛰어난 지식에 의해 정당화되어졌다. 1970년대 초가 되자, 그녀는 '구 좌파'가 됐고 그때가 되어서야 그녀는 태동하기 시작한 여성해방운동에 참여하였다. 쉬리아 로우보텀, 린 시걸 그리고 힐라리 웨인라이트, [Beyond the Fragments: Feminism and the Making of Socialism], 런던, 메를린 프레스, 1979, pp. 26-39.

4) 로우보텀 외, [Beyond the Fragments], p.14. 같은 책에서 힐러리 웨인라이트의 주장도 보라. pp.231, 252 와 [Arguments for a New Left], 옥스퍼드, 블랙웰, 1994.

5) 로우보텀 et al., "Beyond the Fragments", pp.211-53; 캐롤린 에건 "Toronto’s International Women’s Day Committee" Heather Jon Maroney and Meg Luxton, eds. Feminism and Political Economy: Women’s Work, Women’s Struggles, Agincourt: Methuen Publications, 1987, pp.109-18; and 요한나 브레너, "Feminism’s Revolutionary Promise: Finding Hope in Hard Times", 소셜리스트 레지스터, 1989, pp. 245-63.

6) 미국의 입장에서, 요한나 브렌너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페미니즘 이론은 경제적 환원주의, 기술에 대한 무비판적 접근과 생산주의, 노동과 노동자와 노동계급에 대한 협소한 정의, '공'과 '사' 사이의 자본주의적 분리에 대한 반복과 더불어 이론적 분석과 정치적 조직화의 공간으로서 공적 영역에 우위 부여, 특히 감정적 필요가 정치적 이해관계를 형성하는 방식에 대한 무관심, 그리고 젠더 정체성과 정치적 경제적 "이해"간 관계 등 의식에 대한 몰이해 등 맑스주의 이론이 구축한 체계를 허무는 데 기여했다." 브렌너 [Feminism’s Revolutionary Promise], pp.245-6.

7) 로우보텀 et al., [Beyond the Fragments], p.250. 이런 생각은 노동자계급을 교육시키고 지도하는 자와 지도받는 자 간의 관계를 변화시킨다는 그람시의 전망과 관련된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중요성은 대중을 교육시키고 움직이게끔 한다는 생각들이 여성집단 내 논쟁과 실천의 일부가 된 방식에서 나타난다. 일상, 경제, 시민사회와 국가를 민주적으로 통치하기 위한 능력 배양을 통해 '자본주의 내에서의 생산력'을 발전시킨다는 이론에 대한 최근의 논의(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의 주장도 포함)를 보기 위해 레오 파닛치와 샘 긴딘의 "Transcending Pessimism: Rekindling Socialist Imagination", [사회주의 레지스터](2000년 호, pp.1- 29)를 참조하라.

8) 헤더 존 메로니의 중요한 에세이를 보라. "Feminism at Work", [뉴레프트 리뷰] 141호, 1983년 9·10월호.

9) 도로시 스미스, "Women, Class and Family", Women, Class, Family and The State, 토론토, 갤러몬드 프레스, 1985, p.40.

10) 프랑스와 독일은 예외였다. 1950년 노동력의 여성비율은 프랑스에서 35.9%, 그리고 독일에서 35.1%였다. 이러한 비율은 1982년까지 약간 증가했을 뿐이다. 1950년 캐나다와 미국에서 여성비율은 21.3%와 28.9%였고 1982년까지 비율이 40.9%와 42.8%로 상당한 증가를 보였다. 이자벨라 벡커 "Women’s Employment in Comparative Perspective", [Feminization of the Labour Force](제인 젠슨 et al., eds., 옥스퍼드, 폴리티 프레스, 1988, pp.17-44)를 보라.

11) 제인 젠슨은 1960년대 중반 내내 "단순분업과 생산 극대가 중요한 업종에 고용된 많은 여성들이 전투적 투쟁의 최전선에 등장했다"고 주장한다. [Legacies of the French Women’s Movement: Mobilisation of “Difference”in the Labour Movement], 캐나다 정치과학협회 연례회의 보고서(위니펙, 1986. 6, p.15). [Gender and Reproduction: Or Babies and the State], 제인 젠슨, 정치경제연구 20호(1986년 여름, pp.9-46), 임금노동자의 여성에 대한 존중과 보육정책에 있어서의 영국와 프랑스의 차이에 대한 토론을 위하여.

12) 로즈마리 워스켓, "The Politics of Difference and Inclusiveness within the Canadian Labour Movement", [Economic and Industrial Democracy], Vol.17, No.4(1996. 11) 1990년대가 되자 미국에서 조직된 노동자 수의 엄청난 감소는 다른 종류의 노조주의를 탄생시켰다. 캐나다 노동운동은 감소를 경험하지 않았고 노조 내 여성들은 1950년대와 1960년대의 낡은 노조 운영 방식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도맡고 있다. 줄리 화이트, "Sisters in Solidarity: Women and Unions in Canada, Toronto", 톰프슨 교육 출판사, 1993.

13) 헤더 존 메로니는 [Feminism at Work]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그러나 노동계급 페미니즘의 성장은 여러 가지 결과을 낳았다". 그녀는 이어 노동계급 여성들의 전투적 투쟁이 "경제주의를 향한 좌파의 경향을 강화시켰다"고 지적한다.

14) 스미스, [Women, Class and Family], p.40.

15) 프랑스 제인 젠슨, "The Limits of “and the” Discourse: French women as marginal workers", {Feminization of the Labour Force}, 제인 젠슨, et al. eds., 옥스퍼드, 포리티 프레스, 1988, p.17; for Canada , 캐롤린 에건, "Toronto’s International Women’s Day Committee", p.114, for Britain, 쉬리아 로우보텀, {The Past is Before Us: Feminism in Action since the 1960s}, 런던, 언윈 히먼 Ltd., 1989, pp.225-226.

16) 이탈리아에 대해서는 비앙카 베칼리 & 구글리엘모 메아르디, "When Equal opportunities is not enough: The ambiguous and changing relations between women and unions in Italy", [제 12차 유럽주의자 국제회의] 발제문(2000. 3. 30 - 4.1)을 보라.

17) 캐나다 온타리오에서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조직된 여성노동자(OWW)]을 결성하였다. 개별노조의 총연맹을 가로질러 조직된 OWW는 온타리오노동조합연맹(OFL)의 승인을 얻지 못했으나 그렇지만 낙태를 포함해 광범위한 이슈들을 둘러싸고 OFL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별도의 조직화에 대한 동의는 린다 브리스킨 & 패트리카 맥데모트의 "Union Women and Separate Organizing", [Women Challenging Unions: Feminism, Democracy and Militancy](토론토, 토론토대학 출판부, 1993, pp.89-108)에서 볼 수 있다. 페미니즘과 노조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미리엄 에델슨의 "Challenging Unions: Feminist Process and Democracy in the Labour Movement"(여성발전을 위한 캐나다연구소, 1987)를 보라.

18) 테비 필드, "The Dilemma Facing Women’s Committees", [Union Sisters: Women in the Labour Movement], 린다 브리스킨 & 린다 얀즈 eds., 토론토, 여성출판사, 1983, pp. 293-303. 줄리 화이트, [Sisters in Solidarity], pp.123-24.

19) 스웨덴 "LO"내 계급 연대가 여성의 독자적 조직화를 가로막았다는 점은 흥미롭다. 조직분리는 계급연대를 깨뜨리는 것으로 비춰졌다. 리안느 메혼 "Learning to Embrace the Differences Within: Toward the Renewal of Swedish Unions", [제12차 유럽통합주의자 국제회의] 발제문

20) 제인 젠슨, [The Limits]

21) 헤더 존 메로니의 [Feminism at Work], 린 시걸의 [Is the Future Female], pp.202, 233, 로즈메리 월스켓의 [The Politics of Difference and Inclusiveness]를 보라.

22) 줄리 화이트의 [Sisters in Solidarity], 자넷 로우틀리지의 "Women and Social Unionism", [ Resources for Feminist Research], Vol.10, No.2, 1981, 데비 필스의 "The Dilemma Facing Women’s Committees"를 보라.

23) 제인 스틴슨, "Window on the North: Women’s Issues and Labour In Canada", [Labor Research Review] no.11, 1988.

24) 비앙카 베칼리 & 구글리엘모 메아르디, "When Equal opportunities is not
enough"에서 노동시간 단출을 둘러싼 리발타 FIOM 여성들의 활동에 대한 논의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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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 페미니즘 , 페미니스트 , 북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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