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노련 문화제 '한판 붙자!' 공연 스케치

- 자, 이제 시작이다!

금새라도 비를 쏟아낼 듯 찌푸린 하늘이다. 생명으로 다가오는 봄은 산고를 겪듯 바람도 심란하고 자주 찌푸린 얼굴을 보여주곤 한다. 일전(一戰)을 앞둔 전노련 깃발들이 그 하늘아래 신촌으로 속속 모여들던 그날, 3월 14일. 이날은 전노련 15년 역사의 노정속에 새로운 이정표가 세워진 날이다. 빈민의 이름을 걸고 문화제를 우리 손으로 연 날이기 때문이다. 그 이정표에 우리는 무엇이라고 새길 것인가

1차 백만노점 투쟁 결의대회

전노련은 전국민중연대(준) 회의를 통해 월드컵을 앞두고 진행되고 있는 노점단속 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 구성을 결의하였고 지난 3월 5일 민주노총,전국농민회총연맹,전국연합,전철연,자통협,사회진보연대, 사회당 등의 사회단체가 참여하는 공동대책위를 구성하였다.

그리고 문화제 전날인 13일 탑골공원에서 공대위 대표자 및 전노련 수도권 지역장들과 회원들이 참여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개최하였다. 이 자리에서 노점상 단속에 대한 40여개 단체의 반대의지를 분명히 하였다.

공대위는 다섯가지 주장을 통해 영세노점상이 국제적 행사를 앞두고 생존권을 유린당해서는 안되며 현재 노점상에게 무차별적으로 발부되는 벌과금을 중단할것과 현재 단속을 위해 운영되는 노점상대책반의 활동을 지원을 위한 기구로 바꿀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확대실시되고있는 용역발주를 중단하고 이 비용으로 지역발전및 복지기금으로 전환시킬것을 요구하였다. 3월 14일 신촌현대백화점 뒤에 있는 놀이터에서는 서부지역 동지들이 일치단결의 모습으로 전국의 노점동지들과 연대단체들을 맞기 전에 사전집회가 있었고 1시부터 본집회가 시작되었다.

수도권 지역을 비롯 울산,대전,광주,부산 등지의 노점상 3천여명이 모여드는 가운데 무대 전면에는 붉은 휘장에 새겨진 '빈민해방' 문구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김흥현 15기 전노련 의장은 대회사에서 100억에 이르는 용역체결비용으로 노점상문제를 해결할 것을 정부에 촉구하였다.

오종열 민중연대 공동대표 겸 전국연합 상임의장은 연대사를 통해 세계적 도시들에서 볼 수 있는 풍물로서의 노점상을 예로 들어 정부의 무감각과 무대책을 비꼬았다. 그리고 ( ) 민노총 직무대행, 이필두 전노총련 의장, 남경남 전철연 전의장, ( ) 자통협 의장 등은 연대의 동지애로 구호를 선창해 우리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인간답게 살고싶다. 생존권을 쟁취하자!'
'너희는 탄압이면 우리는 단결이다!'

이어 김인수 수석부의장을 필두로 정병찬 동대문지역장, 최인기 사무처장, 우득종 서부지역장, 권용택 종로지역장으로 면담팀을 꾸려 서울시청으로 향했다.

3시경 공진모 서부지역 연사부장의 결의문낭독으로 집회를 마무리하고 문화제 무대가 꾸며진 연세대 대강당으로 향했다. 연합풍물패의 선두로 1km에 이르는 거리를 메운 동지들이 흥겹고도 진지한 얼굴로 행진하였다.

빈민문화제 '한판 붙자!'

그렇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길거리에서 싸워온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무대 조명이 밝아짐과 동시에 무대 뒤편에서 양쪽으로 붉고 푸른 만장이 입장하였다.

'먹고 살자는데 노점단속 웬말이냐!'
'배고파서 못살겠다 노점단속 중단하라!'
'생존권을 쟁취하고 인간답게 살아보자!'
'전노련 깃발아래 생존권을 쟁취하자!'
'단결만이 살길이다 단결하여 투쟁하자!'

구호들의 입장.

그 긴 세월동안 열사의 피로 이루어진 우리의 피땀으로 이루어진 구호들의 입장. 그것을 지켜보는 사이 침묵 속으로 깊어지는 우리들의 회한과 감동. 이 사회는 우리에게 구호를 외치게 하였다. 부드러운 대화가 아닌 딱딱한 비명같은 무거운 구호말이다.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사회가 빈민의 목을 조르고 내지르는 단말마 같은 구호들. 길거리 좌판하나를 지키기 위해 우리 늙은 팔뚝을 높이 쳐들어야 하고 서로의 몸을 쇠사슬로 묶어야하고 내 몸에 불을 붙여야하는 게 현실임을 우리는 이제 안다. 그래서 구호를 목이 터져라 외치는 것이다.

율동패 '몸짓사랑'의 힘찬 몸짓은 온 몸으로 구호를 외치는 공연이었다. 노래패 '우리나라'의 노래와 연대발언은 노래로 싸울 수 있음을 다시금 새기게 하는 아름다운 체험이기도 했다. 전노련 율동패는 짧은 기간 연습에도 흐트러짐 하나 없이 멋있는 동작을 보여주었다.

광성지역의 수장으로 늘 투쟁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김장현 지역장이 늘 자랑이던 세딸중 둘째딸과 함께 나와 주고받은 편지글이 힘겨운 부모노릇에 지친 동지들에게 눈물을 삼키게 하였다.

부부가 손수레에 매달려 먹고사느라 어린 딸들과 함께 할 수 없는 아픔과 그럼에도 오히려 엄마아빠를 배려하고 걱정해주는 딸들에 대한 고마움과 노점상의 딸에서 이제 당당히 민중의 딸로 커주길 기원했다.

동대문지역 송정자 회원이 무대 한 켠에서 '늙은 노점상의 노래'를 부르는 동안 영사막에는 우리의 일상이 비쳐지기 시작했다. 손님에게서 꼬깃한 천 원 한 장을 받고 야채를 파는 할머니. 비닐 쳐진 한 평 공간 안에서 얼굴이 발갛게 익은 채 떡볶기를 파는 아줌마. 좌판 뒤에서 동료와 마주한 채 거리의 먼지를 곁들여 밥을 먹는 아저씨.
그러나 역시 더 큰 우리의 박수를 받은 건 투쟁의 모습이었다. 차바퀴 앞에 드러누워 몸부림치는 밀양오일장 아주머니들. 방패앞에서 구두발 앞에서 주먹질해보지만 무력하게 쓰러지고 마는 북부지역 아줌마들. 무장한 전경들보다 더 견고한 결의로 달려드는 젊은 동지들. 연세대 대강당을 가득 메운 동지들은 공연이 늦게 시작되어 예상보다 늦게까지 진행되었음에도 끝까지 지켜보며 박수를 보내주었다.

이런 성숙한 태도야말로 우리 투쟁에 밑받침이 될 힘임을 믿는다. 공연의 말미에 이르러 김인수 수석부의장의 면담결과보고가 있었다. 시정관계자( )의 어조는 다름이 없었다. 우리의 투쟁도 변함없이 가열차게 진행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수석부의장의 구호가 공연말미를 장식해주었다.

'전노련 깃발아래 당당하게 한판 붙자!'
연합풍물패 상쇠의 낭낭하게 실내를 울려퍼지는 가락에 이어 걸판진 풍물뒷풀이로 문화제가 막을 내렸다. 문화는 멀고 공허한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기본 의식향유이자 권리이다.

숨쉬는 것이나 우리가 싸우는 것과 다르지 않은 우리만의 체취가 녹은 문화를 찾아보자. 오늘은 이후 전노련 역사에서 이렇게 기록되리라. 신자유주의 억압뚫고 빈민의 이름으로 한판 문화를 만들어낸 날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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