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조운동의 붕괴와 재건

*조합원의 분노를 전달하기 위한 민주노총 농성단. 4/9민주노총 중앙위에서

민주노조운동, 두 갈래 길에 서게 되다.

아무도 믿어 의심치 않았던 4월 2일 총파업은 무산되고 말았다. 더욱 믿어지지 않는 사실은 당시 총파업을 유보시킨 근거이다. 민주노총 노정교섭단과 집행부는 "4월 3일 파업동력이 급격히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과 함께 "발전노조는 옥쇄투쟁이든 복귀선언이든 곧바로 파업을 마무리할 것으로 파악됐다"는 것을 파업을 철회한 근거로 삼았다고 했다. 나아가 형식적으로 체결당사자인 발전노조가 "민영화 문제는 거론하지 않는다(노코멘트)"에 이미 동의한 상태였으며, 후에 교섭단과 연락과정의 혼선에서 비롯된 것으로 밝혀졌지만 "발전노조가 수정안을 내고, 그에 근거해 잠정합의가 이루어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었다"는 정황을 근거로 들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판단과 정황에 근거함으로써 "교섭타결(합의)에 집착하는 오류를 범했으며" 결과적으로 "오전 11시 교섭재개가 자충수를 불렀다"고 해명했다.

이상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4월 2일 총파업투쟁에 대해 민주노총 지도부는 여전히 이를 발전노조에 대한 지지·지원투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또한 민주노총 지도부는 4월 2일 투쟁의 성격과 동력을 2월 26일 연대투쟁 때의 그것과 같은 차원으로 사고했다. 다시 말해 민주노총 지도부는 발전노조 투쟁이 한 달을 훨씬 넘기면서, 비록 내부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정세의 주도권을 노동자대중이 발휘하고 있었다는 사실과, 동시에 2월 26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탄력이 붙고 있던 대중투쟁의 역동성을 전혀 파악하고 있지 못했다.

이로써 민주노총은 4월 2일 총파업투쟁을 시작으로 국가기간산업 사유화 저지 투쟁을 발전노조'만'의 투쟁에서 노동자대중 전체의 투쟁으로 확대·확산시키는 것은 물론 민주노총이 이 투쟁의 실질적인 지도부로 등장할 수 있는 결정적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 결과 민주노총은 지난 4년 동안 지속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분쇄 투쟁전선을 새롭게 강화하는 것은 물론 이를 통해 노동자계급의 정치 역량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계기를 맞는 대신 오히려 총체적 위기를 불러들이게 되었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4월 2일 밤을 넘기면서 자신들이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질렀는가를 겨우 알아차리기 시작했지만 그 때는 이미 사태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빠진 뒤였다. 민주노총은 4월 3일 투본회의와 4월 8일 중앙위원회를 통해 단병호 위원장을 제외한 임원이 총사퇴하고 비상대책위 체제로 전환하는 조직적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4월 24일 임시 대의원대회를 통해 비상대책위 구성과 이후 투쟁방향을 확정할 예정이다. 이제 민주노총은 두 갈래 길에 서 있다. 지난 1987년 이후 전진과 후퇴를 거듭하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성장과 발전을 이룩해온 민주노조운동이 마침내 무너져 내리는 길로 접어들게 될 것인지, 아니면 반대로 비록 전체적으로는 성장과 발전을 이룩했지만 때마침 더 이상 진전할 수 있는 새로운 계기를 찾지 못하고 답보 내지 정체 상태에 빠져있던 민주노조운동을 오히려 새롭게 강화하는 길로 다시 나아가게 할 수 있을 것인지가 그것이다.

무엇이 4월 2일 총파업 철회를 낳게 했는가?

위에서 우리는 4월 2일 총파업이 철회되게 된 한 단면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말 그대로 한 단면일 뿐이다. 민주노총 지도부가 저질은 오류가 총파업 철회를 낳은 근원(近源)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을 결코 근원(根源)이라고 할 수는 없다. 여기에는 보다 넓고 뿌리 깊은 원인이 존재한다. 그것은 오늘의 민주노조운동을 구성하고 있는 역사적·구조적 맥락으로부터 주어지고 있다.

먼저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최소한 민주노총 출범 이래로 민주노조운동은 주로 민주노총의 정체성을 둘러싸고 논쟁을 벌여왔다. 그리고 그 논쟁의 역사적 계기는 안으로는 이른바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으로부터 촉발되었으며, 밖으로는 신경영전략, 세계화,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응을 둘러싸고 형성되었다. 특히 1998년 노사정위원회에서의 '정리해고합의'와 그 뒤 비대위의 파업 철회를 계기로 민주노총의 정체성은 한 고비를 맞게 되었다.

예컨대 민주노총은, 아래로부터의 대중투쟁에 근거하여 자본과 정권과의 계급적 대립 관계를 강화하는 속에서 노동자대중을 계급적으로 단결시키고 이에 바탕한 독자적인 정치적 진로를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조직 확대·재편(산별노조건설)에 기초하여 자본과 정권과의 교섭력을 강화하고 이 연속에서 의회주의적 정치세력화의 길로 나아갈 것인지를 놓고, 정체성의 혼란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혼란이 이후 크고 작은 투쟁에서 거듭 반복됨으로써 민주노총 상층지도부는 노동자대중으로부터 불신과 불만의 대상이 되어갔다.

특히 상층지도부와 노동자대중 사이의 간격은 단지 총연맹 차원에 그치지 않고 단위사업장으로까지 번져 나갔으며, 이러한 현상은 상대적으로 투쟁적 성격이 강하다고 알려진 집행부도 결코 예외가 아니었다. 이로 인해 투쟁이 투쟁을 낳는 역동성은 점점 약화되고, 투쟁 일정을 나열하는 식의 박제화된 투쟁이 대신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럴수록 각 단위의 상층지도부는 더욱 교섭에 매달리게 되고, 투쟁은 그저 교섭을 위한 압력 수단으로 전락해 갔다. 예컨대 투쟁을 통한 투쟁 강화, 투쟁을 통한 단결 확대, 투쟁을 통한 계급의식 획득이라는 노동자계급의 원칙과 철학은 무뎌지는 대신 노동자대중이 투쟁과 요구의 주체에서 한낱 동원의 대상으로 취급되고, 노동자대중으로 하여금 계급적 단결이 아닌 부문적·직업적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사고하게 하고, 노동자대중이 역사와 정치의 전면에 나서지 못하고 부르주아 선거 일정에 수동적으로 조응하게 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발전노조의 장기 투쟁을 통한 '투쟁의 독재'도 끝내 이 거대한 역사의 수렁을 넘지 못하고 만 것이다.

다음 구조적 맥락에서 볼 때, 알다시피 민주노총은 민주노조운동의 한 형식 또는, 비록 양적으로는 민주노조운동의 전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거대하지만, 일 부분이다. 민주노조운동은 민주노총을 뛰어넘는 개념이며 범주이다. 노동자의 힘, 민주노동당, 사회당, 그 밖의 정치세력이 민주노조운동의 한 구성 부분을 이루고 있다. 또한 이른바 '현장조직'도 단위사업장 수준이든, 전국적 수준이든 비록 형식적으로는 민주노총에 포함되어 있지만 그 활동과 운영을 독자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역시 민주노조운동의 한 구성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오늘의 민주노조운동을 구성하고 있는 단위는 민주노총, 제 정치세력, 현장조직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의 결정만으로 총파업을 조직하거나 집행하는 것은 사실상 여의치 않다. 특히 그 투쟁이 정치투쟁의 성격을 띨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예컨대 2001년에 민주노총이 조직의 공식 입장으로 김대중 정권 퇴진투쟁을 결정했지만 민주노동당이 이에 동의하지 않음으로써 힘있는 집행을 하기가 어려웠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민주노총이 의결과 집행을 하는 데에는 이미 민주노총 체계 내부적 과정뿐만 아니라 제 정치세력과 현장조직의 태도와 입장이 어떠하냐에 따라 그 투쟁의 성격과 수위를 결정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총파업의 조직자이자 집행자의 역할은 아직까지는 민주노총이 담당하고 있다. 다시 말해 민주노총의 공식 의사 결정을 뛰어 넘어 총파업을 조직하거나 집행할 수 있는 정치적 권위와 지도력은 형성되어 있지 않다. 즉 제 정치세력이나 현장조직 역시 민주노총의 공식 의사 결정을 매개로 하여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태도를 개입시키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역으로 제 정치세력이나 현장조직이 민주노총의 그늘 아래 숨는 것이 충분히 가능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즉 제 정치세력이나 현장조직의 무능과 한계로부터 비롯된 결과까지도 그 책임을 모두 민주노총에 지우게 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이번 발전노조 투쟁 과정에서, 또한 4월 2일 총파업을 조직하거나 집행하는 과정에서 과연 노동자의 힘을 포함한 제 정치세력이나 현장조직이 얼마나 자신들의 역할을 충실히 했는가를 냉정하게 반성해야 한다.

이와 같이 민주노조운동이 안고 있는 역사적·구조적 맥락을 제대로 이해할 때만이 4월 2일 사태에 대한 총체적 인식이 비로소 가능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도 그로부터 나올 수 있다. 결론적으로 지금 민주노총이 맞고 있는 위기는 민주노조운동진영 내 특정 세력'만'의 문제가 아닌 그들 모두가 역사적으로 형성한 결과로부터 비롯된 것이며, 민주노총을 포함하여 민주노조운동진영을 계급적·정치적으로 이끌 수 있는 정치적 구심이 형성되고 있지 않는 데 따른 것이다.

어디로부터 출발할 것인가?

지금 민주노조운동은 민주노총의 4월 2일 총파업 철회로 인해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으며, 심지어 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져 있다고 할 수 있다. 발전노조 조합원 역시 무자비한 현장탄압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 좌절은 이르다. 현실을 냉정하고 냉철하게 분석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역시 객관적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고 할 때, 투쟁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정황과 조건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4월 2일 총파업 철회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분노가 즉각 터져 나왔으며, 결국 그 힘이 민주노총 지도부 총사퇴를 이끌어 냈다. 모든 동지들이 4월 2일 총파업은 충분히 가능했으며, 대중의 역동성이 살아나고 있음을 피부적으로 느꼈다는 것을 도처에서 고백하고 있다.

이제야 말로 민주노총, 나아가 민주노조운동의 정체성을 대중적으로 분명히 세우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 점이 불투명하거나 불분명한 채로 남아 있어서는 투쟁을 새롭게 조직하는 것도 어렵거니와 또 다시 더 큰 위기를 불러들일 수도 있다. 민주노조운동의 정체성은 마땅히 아래로부터의 대중투쟁에 기초하여 자본과 정권과의 적대 관계를 강화하고 이 힘에 근거하여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진로를 결정하는 방향으로 잡혀야 한다. 최근 '노무현 현상'이 말해 주고 있는 핵심도 바로 이 지점이다.

즉 대중의 '변화와 개혁'에 대한 열망과 욕구가 그 어느 때보다 거세게 분출하고 있으며, 그 속에, 비록 아직 대중이 분명히 의식하고 있다고 까지는 할 수 없지만, 신자유주의에 대한 거부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민주노조운동의 전략적 목표를 노동자 계급정치 강화에 두어야 하며, 이를 위해 투쟁을 통한 투쟁 강화, 투쟁을 통한 계급적 단결, 투쟁을 통한 계급의식의 획득, 즉 투쟁을 통한 노동자계급 주체 형성을 목표로 해야 한다. 예컨대 국가기간산업 사유화 저지 투쟁, 발전노조탄압저지 투쟁, 주5일 근무제 도입과 관련한 노동법개악기도 저지 투쟁, 불안정노동철폐 투쟁, 근골격계 투쟁, 공무원노조 합법화 쟁취 및 노동3권 완전 쟁취 투쟁, 철도 및 가스노조 재파업 투쟁, 5월 임단투 투쟁 등 숱한 투쟁 과제를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분쇄 투쟁전선으로 집중함으로써 사안별 투쟁을 단일한 계급투쟁 전선으로 묶어 세워야 한다. 바로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이 아니라 명실상부한 총파업 투쟁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토록 이미 객관적으로 충분히 존재하고 있는 대중투쟁 동력을 강화하는 실천을 즉각 시작해야 한다.

비상대책위원회는 현장 지도력을 중심으로 구성해야 한다.

물론 우리는 비상대책위 구성이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측면에 한정해서 현재의 사태가 극복될 수 있다고 바라보고 있지 않다. 이 역시 하나의 계기이며, 과정일 뿐이다. 그러나 비상대책위가 또 다시 노동자대중의 요구와 열망을 무시하는 방향으로 구성된다면 그 자체는 분명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만약 비상대책위가 현재의 산별연맹과 지역본부 체계 내에서'만' 구성된다면 이는 그야말로 최악의 경우가 될 것이다.

현실적으로 산별연맹과 지역본부 체계를 배제하는 지도력을 당장 구성하기가 여의치 않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해도 산별연맹과 지역본부는 비상대책위의 일부로서 참여해야 한다. 그랬을 때 비상대책위는 무엇보다 4월 2일 투쟁을 실질적으로 조직했던 현장에서 직접 참여해야 하며, 이후 투쟁을 추동하려는 의지가 있는 사업장에서 나와야 한다. 그와 동시에 바로 그들 투쟁하고자 하는 현장노동자들이 인정할 수 있는, 현직 지도부는 아니지만 민주노조운동의 역사에서 상대적으로 지도력을 인정받고 있으며 또한 이번 투쟁에 앞장 설 의지가 있는, 그러한 지도력을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여기서 핵심은 바로 현장에서 지도력을 배출하는 것이다. 이것이 안 되는 조건에서는 그 어떤 방안도 사실상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특히 '현장조직' 또는 현장활동가들이 전면에 나서 활동해야 한다. 더욱 바람직한 것은 지금 즉각 현장에서, 지역에서, 연맹에서 민주노총 지도력을 건설하기 위한 토론과 투쟁을 시급히 조직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아래로부터 지도력을 형성해 나가야 한다.

우리는 지금 상황에서 단호히 배격해야 하는 것은 노동자대중의 단결과 투쟁을 저해하는 결과를 낳을, 예컨대 선거 체제로 전환하려는 시도나, 조직 보존을 우선하려는 그러한 입장과 태도라고 판단한다. 민주노조운동진영은 갖고 있는 역량을 집중하여 공동투쟁전선을 형성하는 데 기꺼이 나서야 한다. 선거나, 조직 보존을 염두에 두는 행위를 한다면 그야말로 공멸의 길을 자초하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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