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식 좌파 정치와 사회주의적 좌파 정치 사이에서


최근에 흘러가는 정치 상황의 방향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좌선회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은 전반적인 집단적, 대중적 이동이라는 차원에서 사실상 전후 최초의 좌향좌라는데 그 의의가 있다. 문제는 이것이 그 자체로 사회주의적 차원의 좌파정치를 강화하느냐의 관점에서는 일단 아니라고 할 수 있겠으나, 부르주아 혹은 지배 세력간의 균열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하기에 따라서는 사회주의적 정치세력의 입지를 마련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요즘 집권 여당인 민주당 경선 및 야당, 언론이 총동원되어 전개하는 이념논쟁을 보노라면 그 살풍경과 격렬함에 놀랄 따름이며, 총만 들지 않았을 뿐이지 계급투쟁에 돌입한 인상이다.

부르주아 정치는 선거를 그 기본으로 한다. 하지만, 이러한 선거 역시 사회-경제적 계급관계의 변화 및 대중적 정치의식의 흐름을 반영하게 마련이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선거가 사회-경제적 착취관계를 은폐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지배계급의 과두지배를 합법적으로 인정하고 그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점에서 그 기만성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선거 역시 형식적이나마 대중적 다수의 추인을 얻는 식으로 민주적 외양을 유지해야 한다는 견지에서는 노동자 계급을 위시한 사회대중의 정치화를 촉발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87년 대선 이후 지금까지의 대통령 선거에서 유권자 열 사람 가운데 여덟 사람이 이러한 자기 기만행위에 참여해왔다는 점에서 노동자 계급인지 아닌지 그 구분조차 무색할 노릇이다.

지역분할과 반공주의의 공멸

최근의 정치적 흐름은 과거의 그것과 몇 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눈에 띠 는 점은 그 동안 한국의 부르주아계급이 대중들에게 정치적 지배를 관철하기 위해 사용해왔던 유력한 전략인 지역분할과 반공주의가 더 이상 먹혀들고 있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지배세력은 바로 이 점에 경악하고 있다. 가령 민주당 경선을 시작으로 불기 시작한 이른바 '노무현' 돌풍을 예로 들자면 노무현은 경선 시작 약 보름만에 자기의 지지율을 30% 이상 끌어올렸다. 30%를 선거에서의 득표수로 단순 환산하자면 거의 7~800만 명 가량이 마음을 바꾸어 먹은 것이다.

이에 반비례하여 김대중 정권 4년 동안의 온갖 실정, 부정부패 덕에 차기 대통령을 거저 먹을 것 같았던 이회창과 민주당내 유력한 대통령 후보였던 이인제의 지지율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지지율의 등락 자체에 있다기 보다 이들이 어떠한 정치전략을 택하고 있으며 그것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고 있는 가 하는 점이다.

이회창과 이인제는 마치 사전에 입이라도 맞추어 놓은 듯 가당치도 않게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에게 좌익이라는 이념공세를 퍼붓기 시작했다. 이는 이른바 그동안 한국정치에서 위세를 떨쳐온 우향우 전략의 최근 결정판이다. 이와 달리 노무현은 이념공세에는 직접적으로 응대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과거 이러한 공세가 있을 때 사용되었던 김대중의 뉴 DJ플랜과 같은 우선회를 택하지 않고 오히려 정면대결을 선호했다. 자신의 지지율이 지금껏 왜 상승했는가를 직감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 우익 기관지 역시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했고 이후 지원 사격을 개시했지만 때늦은 것이었다.

이러한 공세를 비웃기라고 하듯 노무현 지지세는 더욱 가파르게 상승했으며 불과 한두 달만에 대통령 선거구도를 일거에 뒤흔들어 놓았다. 이는 DJ 정권의 실정에 대중들이 학을 띠고 매번 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이 그 반사이익을 챙겨 왔던 그간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가히 가공할 만한 사태의 반전이다.

反DJ, 反신자유주의를 독식한 노무현 '열풍'

노무현 현상의 등장은 외관상으로는 영, 호남의 고른 지지와 수도권, 그 가운데 30~40대 청장년층의 폭발적 지지에 기반한다. 하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 노무현의 지지율 상승은 역설적이게도 반 DJ, 반(反) 신자유주의라는 대중적 정서를 그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구체적으로 김대중 정권 4년 기간 동안의 노동자 민중의 지난한 투쟁과정에서 촉발된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약 40 여일간의 민영화 반대 파업을 성사시킨 발전소 노동자들의 투쟁성과를 노무현이 고스란히 정치적으로 독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부터 노무현 바람으로 특징지워지는 최근의 한국정치의 흐름은 일과적 현상이 아니라 그 사회-경제적 물질성을 체득한 안정적 흐름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다.

노무현식 좌파의 특징은 중도 좌-우파를 아우르는 미국식 민주당의 형태와 유사하다. 곧 리버럴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보수 수구세력과의 대칭관계를 분명히 하겠다는 것이 이른바 노무현식 정개개편의 본질이다. 문제는 이러한 중도 좌우 통합의 바람이 워낙 강해 노동자-민중 운동 세력의 재편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이며, 사실상 이러한 재편 움직임이 이미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일차적 대상이 바로 민주노동당이다.

정보수집력에 있어서 미국 첩보기관이 가장 월등할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인정한다면, 노무현은 미국을 포함한 대외관계 및 국내 부르주아 세력과의 관계 재정립을 시도할 것이며, 그 방향은 대략 민주노동당 및 민주노총 주류가 인정해 줄 수 있는 수준에까지 미칠 것이다.

홍세화씨 등 믿었던 도끼들이 노무현을 지지하면서 민주노동당에 당혹감을 더해주고 있는 최근의 사태전개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시나리오는 신빙성이 매우 높다. 이는 결국 사회운동적 좌파정치에 엄청난 공백과 함께 죽느냐 사느냐 하는 사태로 귀결한다.

대중적 좌선화의 거대한 흐름속에서 발전소 파업을 사회주의적 정치세력의 강화라는 관점에서 대처해 들어갔더라면 설사 깨지더라도 민주노총의 정치적 영향력과 권위는 그 어느 때보다 제고되었을 것이 그 싸움의 정치적 성과는 민주노동당이 그대로 받아 안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몰라도 사태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민주노총이야 현재의 위기상황을 하기에 따라서는 일군의 노동운동 관료들을 숙정하고 사회주의적 노동운동의 내용을 강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활용할 수 있을 지 모르겠으나 민주노동당이 표방해 온 정치적 흐름은 사실상 소멸 일보 직전까지 갈 공산이 크다.

왜냐하면 그들은 최근의 대중적 좌선회의 움직임을 사회주의적 정치선전의 강화로 돌파할 생각을 거의 갖고 있지 않으며, 그보다는 다가올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보다 중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치방침은 민주노동당의 생명시계를 더욱 단축시킬 뿐이다.

현재의 국면은 대중적 좌선회의 거대한 흐름이 시작되었다는 것, 이를 정치적으로 가장 잘 활용하고 있는 세력이 바로 노무현을 위시한 한국의 리버럴 좌파세력이라는 것이 전반적 사태 전개의 핵심이다. 더구나 이들은 차기 대선을 통해 정치권력을 장악할 가능성에서 이미 반환점을 돌아섰다고까지 할 수 있다. 이는 거꾸로 한국의 사회주의 정치세력에게도 더욱 활발히 공공연한 활동을 전개하야만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그 첫걸음은 바로 민주노총을 위시한 노동자 민중운동조직에서 사회주의적 정치방침을 강화하여 그 진지를 확고히 하고, 대중적 차원의 사회주의 정치선전의 수위를 가일층 강화하는 일이다. 이를 통해 한국의 정치상황을 보수-리버럴-사회주의 정치세력의 3자 구도로 몰아 가는 것, 여기에 노동자의 힘의 단기적 정치활동의 방점이 놓여져야 할 것이다.

노동자의 힘 최형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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