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이 아니라 일이 필요해요

30세, 1남4녀 중 장남, 직업훈련원 졸업, 전자기기 기능사 2급 자격증 소지… 그러나 입사면접 1백여회에 현재 무직. 윤성근 씨의 이력서다. 윤 씨가 100%에 가까운 취업률을 자랑하는 직업훈련원을 졸업하고도 취업에 번번이 실패한 이유는 오직 뇌성마비 2급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대기업에서는 이력서조차 받지 않았어요. 소규모 업체들도 면접만 봤다하면 난색을 표했지요. 전공인 컴퓨터를 활용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도 문전박대 당하기 일쑤였습니다."

지난 94년 직업훈련원을 졸업한 직후 '국민문고'에 입사원서를 내고 면접장으로 가던 윤 씨는 정문에서 가로막혔다. "면접 보러 왔다"는 설명도 소용없었다. 문을 막아선 장정들은 "사람 다 뽑았으니까 돌아가라"며 막무가내로 윤 씨를 돌려세웠다.

윤씨는 결국 구직 1년만에 '전공의 꿈'을 접었고, 만년필 제조업체인 파이롯트 도금실에 취직했다. 염산 등 위험한 화공약품을 많이 다뤄 '기피업종'으로 분류된 덕분에 가능했다. 그나마 독성 강한 약품은 윤 씨를 이내 질병으로 내몰았다. 6개월만에 허벅지에 '산독'이 일기 시작했다. 지독한 피부병으로 매일 고생했지만 바로 회사를 그만둘 수도 없었다. 경비원으로 일하는 아버지에게 여섯 식구 생계를 온통 떠넘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병원치료 받으며 도금실에서 1년쯤 일했죠. 하지만 결국 공장이 성남으로 옮겨가면서 그만 둬야 했습니다." 이후 윤 씨는 봉제공장과 공공근로 등을 전전하며 생계를 이어오다 지난해 8월 '장애인실업자종합지원센터'를 접한 뒤 정력적인 장애인 복지사업을 펼쳐오고 있다.

"초등학교 때 8비트 컴퓨터를 처음 만져본 뒤, 고등학교에서도 컴퓨터를 전공할 정도로 좋아했습니다. 관련 공부도 많이 하고 자격증도 땄지요. 하지만 사용자들은 저를 뽑지 않았습니다. '장애인은 자본가들이 착취에 장애를 느끼는 사람들'이라는 누군가의 말이 그제서야 실감났습니다."

현행 고용촉진법은 '직원 3백명당 2%를 장애인으로 고용할 것'을 규정해 장애인 노동권을 일부나마 보장하고 있지만, 이를 지키는 회사는 많지 않다. 장애인을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사회분위기도 이들을 힘들게 만든다. "면접 볼 때마다 '내가 장애인이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어요. 아마 장애인이라면 매일 한번씩은 자살충동을 느낄 겁니다. 한강에 뛰어내릴까, 수면제를 먹어볼까… 저도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생각을 합니다. 신체의 장애는 능력의 장애가 아닌데, 사회의 벽이 너무 높아요."
장애인 노동권 문제는 사실 '장애인'의 문제라기보다 '노동권'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윤 씨의 설명이다. 민주노총 노동자들이 '장애와 비장애 연대투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인간의 보편적 노동권'으로 상황을 인식해주기 바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짧은 대화를 마치고 '집회가 있다'며 자리를 뜨는 윤 씨. 절룩이며 걷는 윤 씨의 뒷모습에서 불안함보다는 '사회의 장애'에 맞서 싸우는 사람만의 당당함이 엿보였다.

이승철 keeprun@no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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