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의 좌우지간]노무현 돌풍

진중권/<아웃사이더> 편집주간
당에서 노무현 돌풍에 대해 시니컬한 논평을 냈다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이 사건을 보면서 당의 정치감각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지켜본 바에 따르면 노무현 돌풍의 주역들은 민주당 지지자들이 아니다. 누가 나와도 민주당 후보를 찍을 사람들이 아니라 이인제가 나오면 투표날 차라리 배낭 메고 산행할 사람들이다.

말하자면 한나라당은 싫고, 민주당을 지지하자니 성이 안 차고, 그렇다고 민주노동당을 지지하기엔 선뜻 맘이 내키지 않는, 그러나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는 앞으로 우리 당에 지지를 보낼 수도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우리 당의 논평은 쓸 데 없이 이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얼마 전만 해도 민주당은 진짜 당원이 6천명 밖에 안 되는 한심한 정당이었다. 영 마음에 들지 않는 이인제가 당을 장악해도 유권자들은 그것을 '대세'로 받아들이고 순응해야 했다.

당 밖에서 네티즌들이 노무현에게 보내는 폭발적 지지도 당의 조직을 장악한 이인제의 대세를 꺾을 수는 없을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바로 그 불가능한 일들을 네티즌이 해치웠다.

이를 통해 민주당은 낡은 공급자 위주의 정치에서 새로운 수요자 위주의 정치로 방향을 전환하고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이것은 조용한 혁명이다. 네티즌들은 자기들이 이룩해낸 이 혁명에 대단히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당에서는 정세를 좀 더 섬세하게 파악했으면 좋겠다.

노무현을 공격한다고 그 지지가 우리에게로 오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당에서는 이 곤혹스런 국면을 달리 활용해야 한다. 즉 민주당과 한나라당 사이에 벌어지는 이념논쟁을, 우리의 진보적 이념을 선전하는 전/략/적/ 기회로 이용해야 한다.

민주당은 은근히 우리 당이 자기들 몸에 칠해지는 색깔을 대신 뒤집어 써주기를 바란다. 어차피 우리는 색깔 드러내놓고 정면돌파해야 할 입장, 이 기회를 이용하면 우리의 선전공간은 어렵잖게 확보된다.

노무현? 대통령이 되어 1년만 지나면 저절로 극복된다. 1년이면 환상 속의 지도자가 현실의 정치인이 되는 데에 충분한 시간이다. 그 다음은? 네티즌들의 진보적 성향이 오랜 패배주의를 벗고 움직이기 시작한 이상, 노풍에 뒤로 또 다른 바람이, 민주노동당의 돌풍이 불 것이다.
[84호] 4.22 ~ 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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