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도/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지난 4월 11일 이후 베네수엘라에서 전개된 정국은 한편의 숨막히는 드라마였다. 쿠데타로 실각된 차베스 대통령이 27시간만에 국민의 힘에 의해 권좌에 복귀한 것이다. 어느 한 순간도 예측할 수 없었던 반전의 연속이었다.
민중의 환호 속에 돌아온 차베스는 첫 일성으로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그리고 민중의 것은 민중에게"라는 말로 국민들에게 냉정함과 침착함을 잃지 말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정치적 보복이 없을 것임을 천명하며 국민화합을 강조했다.
베네수엘라 역사에서 가장 공정했던 1998년 12월 선거에서 44살의 공수부대 중령 출신인 차베스는 56.2%의 득표로 압승했다. 역사상 가장 젊은 대통령이 된 차베스의 등장은 부정부패를 이야기하지 않고는 설명이 안 된다.
1958년 독재자 뻬레스를 몰아낸 이후 '민주행동당'과 '기독사회당' 양당에 의한 보수정치인들의 정치적 타협과 지배는 부정부패의 온상이 됐다. 40년간 지속된 정치체제는 대다수 국민이 아니라 소수 정치인만을 위한 것이었다. 세계 4위의 석유 산유국인 베네수엘라는 국민의 70% 이상이 빈민층으로 "황금 벤치에 앉아있는 거지"였다.
이같은 상황에서 부정부패 척결과 기득권 세력의 해체를 주장한 차베스의 등장은 변화를 갈망하는 민중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었다. 대통령에 당선된 차베스는 과거청산을 강력히 추진하면서 사법부 개편, 국회해산, 제헌의회구성, 제헌헌법 등 정치개혁을 추진했다. 그리고 2000년 7월 신헌법에 따라 다시 치른 대선에서 59%의 압도적 지지로 재당선됐다.
차베스 대통령은 베네수엘라 수출의 80%를 차지하는 국영석유공사 등 국영기업의 구조조정, 공공시설을 위해 개인 소유 유휴농지의 국가 수용 등을 골자로 하는 토지개혁, 그리고 구 노조를 해산하고 새로운 노조 건설을 위한 노조개혁 등 '혁명적' 정책들을 추진했다.
기존 노조가 구 정치권과 결탁해 반정부운동을 선동함으로서 경제개혁에 장애가 되고 있다고 판단한 차베스 정부는 2000년 11월 국민투표를 실시해 주요 노조연합과 약 9천 개에 달하는 산하노조의 위원장 자격을 박탈했다.
이러한 급진적 개혁을 불안하게 느낀 정치인, 언론, 경제인, 교회, 군 고위장성 등 수구 기득권 세력들은 차베스 대통령의 개혁에 저항해왔다. 특히 신문 시장의 60% 이상을 점하는 2대 수구언론(유니버살지와 나시오날지)의 차베스 정권에 대한 공격은 마치 우리나라 조선과 동아 등 거대 언론이 김대중 정권을 비판, 공격하는 것과 유사하다. 그리고 이들의 뒤에는 98년 선거에서 차베스 후보의 입국을 거부했던 미국이 있었다.
이번 쿠데타에 미국의 직접적 개입에 관한 증거는 없다. 그러나 그럴 개연성은 충분하다. 최근 수개월 동안 차베스 반대세력들은 미국 고위층과의 많은 접촉을 해왔다.
쿠데타의 직접적인 계기가 됐던 총파업을 주도했던 오르떼가 노동자총연맹(CTV) 위원장은 지난 2월 미국을 방문 미 국무부 관리들을 만났었다. 또 작년 11월 미국은 국가안보합동회의에서 "베네수엘라를 외교적으로 고립시키겠다"고 발표했었다.
미국은 쿠데타 직후 차베스의 실각을 "쿠데타가 아니라 국민의 뜻이 반영된 정권변화"라고 논평했다. 이는 페루와 칠레 등 대다수 미주기구(OAS)국가들이 쿠데타로 들어선 정부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과 크게 대비된다.
이번 쿠데타의 주역은 재계 실력자들과 군 고위 장성들이다. 이들은 1973년 칠레의 피노체트가 미국의 간접적인 지원 하에 아옌데 사회주의 정권을 쿠데타로 무너뜨린 것처럼 워싱턴의 암묵적 지지 하에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러나 의외로 거센 민중의 저항으로 인해 실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총칼의 위협 속에서도 끝까지 사임을 거부했던 차베스 대통령은 국민의 열렬한 환영 속에 마치 서부 영화에 나오는 '장고'처럼 다시 권좌로 돌아왔다.
대통령 취임과 함께 나라 이름까지 바꾸며 '신 베네수엘라' 건설을 외쳤던 차베스 대통령은 신자유주의를 반대하고 고유가 정책을 주도하며, 쿠바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미국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이란, 리비아 등을 방문하는 등 전통적인 친미주의적 외교를 버리고 미국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대다수 민중의 지지를 받는 정책을 펴지만, 방법이 독재적이라는 기득권층의 비판을 받았던 차베스 대통령은 이제 '비온 뒤 땅이 더 굳어지듯' 국내에서 입지를 보다 강화시킬 수 있을 뿐만이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미국과의 관계도 보다 유리하게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84호] 4.22 ~ 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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