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섭 jks@kdlpnews.org
한나라당 대선후보 울산 경선이 있기 전날인 지난 17일. 네명의 경선 주자들은 울산방송 합동토론회에 나섰다. 한결같이 "한강의 기적은 태화강의 기적"이라며 울산을 칭송했던 네명의 후보들.
그러나 울산 경선이 있었던 18일 울산 종하체육관에 태화강의 기적을 이룬 노동자는 없었다. 시간은 오후 2시. 노동자 초청을 생각할 수 없는 정당이니 별 문젠는 없는 시간이다.
민주당 후보가 사실상 확정된 상태에서 엉거주춤 뒤따라오던 한나라당의 꼴이 좀 우습게 됐다. 한나라당 울산 경선은 '국민참여'라는 경선의 큰 취지를 전혀 살리지 못한 급조 당원들만의 대회였다. 또 모집된 5백49명의 국민참여 선거인단 중 30대 1백43명, 20대는 8명에 불과할 정도로 젊은 층의 참여가 극히 저조했다.
18일 종하체육관.
체육관 앞마당을 가득 메운 각 후보진영의 지지자들이 "대통령 000"을 외치고 있었다. 지난 13일 인천에서 압승을 한 이회창 후보의 운동원은 20여명으로 다른 후보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었다. 이부영 후보와 최병렬 후보의 운동원들이 오히려 많은 모습.
이회창 후보는 자신의 독주가 한나라당 경선의 국민적 관심도를 멀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해 결국은 자신의 국민적 지지도가 떨어뜨릴 것을 염려해야 하는 '묘한' 처지다.
울산 경선이 끝난 직후 1위를 차지한 이회창 후보에게 기자들이 "예상보다 지지율이 낮지 않았느냐"고 묻자 "이제 불공정 경선이라는 주장을 하지 않겠죠"라고 여유를 부린 것도 이 같은 처지를 반영해 주는 것.
식전 행사인 영상물 상영은 '정리해고 된 대우자동차 가족들의 눈물짓는 모습'부터 시작됐다. 이어 4.10 대우차 폭력을 담은 장면이 나올 때는 흡사 민주노총에서 만든 영상물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
15분씩 할당된 각후보의 연설이 끝났다. 벌써부터 자리를 뜨는 사람들이 많다. "투표를 하지 않고 가느냐"의 기자의 질문에 중년 여성들은 답을 피한 채 걸음을 재촉했다.
'국민참여' 경선이기에 당원이 아닌 선거인단에 참여한 '국민'을 인터뷰하기 위해 이리저리 자리를 옮겼다. 기자가 게을러서인지, 아니면 일반 시민이 없어서인지 선거인단에 참여한 일반 국민의 인터뷰는 결국 실패. 다만 선거인단은 아니지만 이부영 후보를 지지한다는 시민을 만날 수 있었다.
김영대(73. 남구)씨는15분씩 할당된 후보들 연설이 끝난 후 "저마다 김대중 정권의 비리를 얘기하고 있지만 자신들이 집권했을 때는 더 큰 비리가 있는 지 생각하지 않느냐"며 "낯짝이 너무 두껍다. 이부영 후보가 그래도 가장 나은 것 같다"고 말했다.
대의원인 손정호(55. 북구 대의원)씨는 이회창 후보의 낙승을 예상하면서 "지금은 한나라당 경선이 주목을 받고 있지 못하지만 초반이 지나고 중반으로 넘어가면 틀려질 것"이라고 낙관적으로 예상했고 김갑수(55·대의원·울주군)씨는 노풍에 대해서 "길고 짧은 건 대선에서 대봐야 안다"고 한마디.
오후 5시경, 투표를 마친 선거인단이 체육관을 빠져나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7, 8명과 함께 체육관을 나서는 대의원 강원보(47·동구)씨에게 "개표결과를 듣지 않고 가느냐"고 거듭 질문하자 "집에 가서 텔레비젼으로 보면 될 것"이라고 짧게 답했다.
부산 해운대구에서 살고 있는 임석재(41)씨는 울상이었다. 임씨는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과 한나라당 경선을 모두 쫓아다니며 음료수 등 먹거리를 판매하는 노점상.
"기자십니꺼. 좀 써주이소. 이거 축제가 되야카는데 도무지 장사가 안됩니더. 장사가. 저번 민주당 울산 경선이 훨씬 사람이 많았다 아입니까."
오후 5시 50분, 경선결과 발표는 선거인단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탓에 맥이 없었다. 결과는 전체 선거인단 1천1백2명 가운데 7백64명이 투표에 참가(투표율 69.3%), 이회창 후보 4백46표(59%), 최병렬 후보는 2백6표(27.2%)로 이부영 후보는 73표(9.7%) 이상희 후보는 31표(4.1%)를 얻는 것으로 마감했다.
경선을 지켜보던 한 기자는 "민주당 경선에 맞대응하기 위해 급하게 짜여진 경선이라 미숙한 점이 많아 보인다"고 말했는데 한나라당 경선의 마지막 풍경은 이를 증명하는 해프닝으로 끝났다.
경선이 끝난 후 체육관 옆에 따로 마련된 기자실. 30여명의 기자들이 노트북에 쓴 기사를 전송하기 위해 전화기를 들었지만 전화기는 먹통. 한나라당 관계자들이 후보들이 모두 비행장으로 떠나자 전화선을 모두 끊은 것. 경선은 끝났지만 마감이 끝나지 않은 기자를 달래며 당직자들이 동분서주 전화선을 복원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84호] 4.22 ~ 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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