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철/민주노동당 정책연구간사ㆍ한국정치연구회 연구원
한국정치사에 있어서 부패정치는 해방 이후 최초로 수립된 '분단국가형성기'의 이승만 정권에서부터 '민중배제적 개발연대 시기'의 박정희 정권, '민주화 이행기'의 전두환, 노태우 정권, 그리고 '제한적 민주주의 시기'의 김영삼 정권과 현 김대중 정권에게 이르기까지 지속성을 띠면서 매우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이때 그것은 모든 역대 정권에 있어 주로 취약한 정당성을 보완하기 위한 통치자금과 권력과의 유착을 통한 이윤확보를 목적으로 하는, 정권-특정 자본분파 간의 '후원-수혜'라는 거래관계를 통해 전개되어 왔다.
하지만 그 구체적인 양상은 거래관계의 방식 및 내용, 그리고 주요담당 및 관할처의 측면에 있어서 각 정권 및 시기별로 일정하게 차이를 보여왔다.
이승만 정권 시기에는 일본이 남기고 간 적산불하나 미국의 원조물자 배정에 따른 이권을 둘러싸고 부패정치가 이루어졌는데, 직선제로 치러진 8.5 대통령 선거자금확보를 위해 저질러진 중석 불하사건은 최초의 정치자금 의혹 사건으로 꼽히면서 이 시기 부패정치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부패정치는 자유당내 이기붕을 위시로 당 총무위원장이나 재정위원장, 그리고 재무장관, 상공부장관, 한국은행과 산업은행 총재에 의해 주도되었는데, 이때 확보된 정치자금은 반대세력 회유나 백골단과 같은 정치단체의 운용에 쓰여졌다.
박정희 정권 시기는 무엇보다도 이러한 '부패정치의 구조화'가 진행된 시기라고 할 수 있는데, 산업화 추진과정에서 도입된 외자 및 차관배정 등을 둘러싸고 주로 이루어졌다.
특히 공화당 조직을 위한 비용충당 과정에서 저질러진, 증권파동, 새나라 자동차 면세도입, 워커힐 공사비 횡령, 빠징코 수입 등을 둘러싼 이른바 4대 의혹 사건은 박정희 정권 시기 가장 많이 회자되는 부패정치 사례이다.
한편 박정희 정권 시기는 유신을 기점으로 부패정치의 주요 담당 및 관할처가 공화당의 공식기구와 중앙정보부로부터 청와대로 이전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후 전두환, 노태우 정권에서도 부패정치의 중심에 청와대가 있음을 목격할 수 있다.
그 외에도 박정희 정권은 72년 8.3조치로 대표되는 각종 재벌에 대한 금융 및 세제특혜를 비롯, 집권기간이 18년이었던만큼 헤아릴 수도 없는 숱한 부패정치들로 인한 각종 사건들로 점철되었다.
전두환, 노태우 정권에 있어서 부패정치는 청와대의 주도 하에 적게는 수천억원에서 많게는 1조원에 달하는 비자금 조성으로 상징되는데, 장영자 금융사기사건을 위시로 하여, 일해재단과 새마을 성금 사건, 경부고속철, 신공항 건설, 수서비리, 차세대 전투기 구입, 상무대 비리 등을 둘러싸고 전방위적 차원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총체화된 부패정치'가 자행되었음을 볼 수 있다.
민주화 이행 이후 등장한 김영삼 정권에 들어서는 부패정치에 대한 강력한 척결이 주장되기도 하였지만, 기존 정권들과 마찬가지로 별다른 성과를 내오지 못한 채, 김현철 사건과 한보비리 등으로 대표되는 부패정치가 재현되었다.
그리고 김대중 정권 들어서는 오히려 각종 게이트의 연속에서 보여지듯이 '부패정치의 일상화'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민주화 이행 이후 권력에 대한 감시망이 활성화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부패정치가 전사회에 걸쳐 총체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는 가운데, 지방정치의 확장과 벤처기업의 출현 등 정치·경제적 주체의 폭발적 증가 속에 권력핵심의 주위를 둘러싼 '부패정치 주체들의 다원화 및 분화'가 고도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84호] 4.22 ~ 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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