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구로구 독산동 주택가 근처 3층 사무실에 자리잡은 희년 의료 공제회. 일요일마다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무료 진료 시간에 맞춰 기자는 그곳으로 찾아 갔다. 사무실 문을 열자마자 여러 개의 언어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40평 남짓한 병원 한켠에 위치한 대기실에선 외국인 근로자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의 진료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곳에 찾아오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국적도 가지가지. 안내 팜플렛만도 14개 국어로 구비되어 있을 정도이다.
친구를 통해 알게 되어 1년 동안 주말마다 제약사로서 일하고 있다는 이현우씨(포천 중문의대 98학번)나 "나오기 시작한지 7개월쯤 됐어요." 라고만 말하며 수줍게 인터뷰를 거절한 이소영씨(고2) 등 현직 의사에서 의대생, 고등학생까지 40여명이 주말마다 번갈아가며 이국의 고단한 삶에 지친 외국인 근로자들을 인술로 보살펴 주고 있다.
내과, 치과, 한방과 진료와 간단한 시술 등을 무료로 해주고 있으며, 공제회의 회원들은 전국 350여 곳의 협력 병원에서도 일반인들의 보험료와 같은 액수로 진료를 받을 수 있고, 이때 진료비의 50%를 공제회측에서 지원해 준다. 이런 서비스를 받는데 필요한 월회비는 5000원. 물론 회원이 아니더라도 공제회 사무실에서 이루어지는 진료는 외국인 근로자이면 모두 무료다. 원래 진료 시간은 4시부터 6시 사이지만 환자들이 많다보니 6시를 넘기는 것은 보통이다. 평일엔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우리말과 영어, 컴퓨터 등을 가르친다.
보통 40여명의 외국인 근로자들이 주말마다 찾아오지만, 기자가 찾아간 날은 다음주가 설 연휴여서 잔업이나 연장 근로로 인해서 찾아오는 환자들 수가 적은 편이었다. 이란에서 왔다는 올해 25세인 Amir씨. "사장님, 돈 많아요. 지난 달엔 일본, 태국, 중국 다녀왔어요." 2년째 한국에서 일했다지만, 여전히 우리말이 익숙하지 못한 그와 영어와 우리말을 섞어가며 이야기를 했다. 작업 중에 사출기에 손가락 3개를 다쳤지만 고용주에게서 치료비를 보상받기는커녕 일자리만 잃고 병원에서 자비로 치료를 받은 후 법률 상담을 구하러 이곳에 왔다고 한다.
그는 불법 체류자도 아니고, 산재 보험에도 가입되어 있지만 그런 일을 당한 것이다. 또 다른 방글레다시 출신 외국인 근로자 한 명. 그는 소위 'illegal(불법 체류자)'이다. 원래 2년이던 비자 기간이 1년이나 지나버린 불법 체류자라서 이름을 밝히는 것도 거부했다. 주말마다 치과 치료를 받으러 이곳에 오는 그에겐 희년 의료 공제원만이 유일하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곳이다. 평일에는 병원에 갈 시간이 없고, 진료비도 일반인 진료비의 2배에서 3배에 달하는 돈을 내야하기 때문이다. "산업 연수생이나 불법 체류자들 같은 경우는 이런 일을 당해서 신고를 하면 보상을 받은 후 추방당하기 때문에 신고 못한다. 합법적으로 들어온 사람들도 일하다가 다쳐도, 산재 보험금을 고용주가 가로채기 일쑤다. 우리들은 한국어나 법에 익숙하지 않으니 어쩔수 없이 그냥 당하는 경우가 많다." 3년 째 한국에서 일하고 있다는 방글라데시 출신의 Easin씨(25)가 익숙한 한국어로 토로한 내용이다. 손가락이 절단되는 정도는 다반사이고, 작업 환경이 좋지 못한 곳에서 격무에 시달리다 보니 간염이나 결핵 환자도 많다고 한다.
이곳의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재정이다. 후원금은 미약하고 5000원인 월회비와 희년 선교회의 지원금, 그리고 비영리 민간단체로 등록되어 3년전부터 행정자치부에서 예산을 지원받게 되어서 약간은 숨통이 트였다고는 하지만, 계속 몰려드는 환자들을 보살피기엔 힘이 딸린다는 것이 박점남 간사의 고백. "주로 불법 체류자들이 오시죠. 이들은 이런 형태의 공제회가 아니면 일반인의 2배에서 3배나 되는 진료비를 부담해야 하는데 한달에 40, 50만원 월급으로는 치료다운 치료는 불가능하죠. 또 외국인 노동자와 관련된 정부 부서가 노동부, 행자부, 법무부 세 곳인데, 이 세 곳의 불법 체류자에 대한 입장이 전부 틀려요. 노동부는 3D업종 종사자가 부족하니까 일단 묵인해주는 편이고, 법무부는 법 집행 차원에서 단속에 치중하고, 행자부쪽은 인권을 생각해서 저희에게 지원을 해주는 거죠" 재정이 충당되면 평일에도 무료 진료를 해줄수 있겠군요라는 기자의 말에 "평일엔 그 분들 치료받으러 올 시간도 없어요. 하루에 적어도 12시간씩은 일하시는데요.."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기자의 생각이 짧았던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각종 업종에 종사중인 외국인 근로자의 수는 대략 50만여명. 이 중에 20만명 정도가 불법 체류자들이다. '코리안 드림'을 품고 비싼 값에 위조 여권을 사거나 밀항선 등을 타고 한국으로 오지만, 인권의 사각 지대에서, 열악한 근로 환경 속에서 낮은 임금과 격무, 비인간적 처우에 시달리며 일하다가 다쳐도 치료는커녕 보상금도 받지 못한 채 한국에 대한 한만을 품고 본국으로 돌아가기 십상이다. "늘 욕설과 임금 체불에 시달리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아플 때 치료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모국으로 돌아간다면 한국에 대한 안 좋은 기억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런분들에게 한국의 이미지를 좋게 해주고 싶습니다. 물론 국위선양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이죠."인터뷰 내내 미소를 잃지 않던 박점남 간사의 마지막 말이었다.
Unews / 이병일 기자 (skial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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