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연/편집위원ㆍ성공회대 연구교수 정치학
정치인, 재벌총수, 세무공무원, 경찰공무원, 대기업 사장, 변호사, 검사 등의 순으로 부패한 직업군의 순위를 보이고 있는 나라. 부정부패가 관행화되어 있다는 여론이 90.3%에 달하고, 부패의 관행이 일종의 삶의 방식이 되어버린 나라. 상당수의 청소년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부패의 대열에 끼겠다는 나라.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이 땅을 총체적 부패공화국으로 만든 원죄는 무엇보다 권력형 비리에 있다. 규제와 근절의 주체이자 모범을 보여야 할 국가 권력과 기성 정치권이야말로 비리의 온상이자 부패의 원흉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을 둘러싼 추악한 부패 고리도 이것을 확인해 준다.
권력형 비리의 한국적 시스템, 그 작동 경로를 보자. 정치 권력자는 각종 특혜와 이권을 제공하고 수혜자들로부터 불법적인 비공식 경로를 통해 그 금전적 대가를 취해 이를 비자금과 사적 축재에 사용한다. 기부자들 또는 정치보험 가입자들은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급성장을 이룬다.
이런 주고받기는 당연히 은폐와 조작의 일상화를 동반한다. 간혹 등장하는 연루된 권력자들은 재수가 없어서 또는 정치보복의 희생양으로 억울하게 처벌받는다고 착각한다.
이들의 범죄 행각에 대해 '성역 있는' 검찰 수사가 이루어지고, 여야는 공방전을 벌이다가 이내 야합하며 법원은 가벼운 형벌을 부과하면서 만족해한다. 대중들의 흥분은 이내 가라앉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이 악순환 시스템은 되풀이되고 남는 것은 정치에 대한 희화화와 대중의 환멸뿐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인가? 사전적 예방과 사후적 통제의 병행, 인사청문회의 전면화를 통한 검증된 인물의 기용, 내부 고발자(공익정보제공자) 보호, 상설적 특별검사제를 통한 철저한 조사, 일벌백계와 처벌의 강화 등등은 지당한 말씀이다. 그러나 그것 자체로 문제 풀이의 핵심 열쇠가 될 수 없다.
기본 방향이 잘못 설정되었기 때문이다. 권력형 비리 척결을 외치지 않은, 그것을 위한 엄중한 처벌과 제도의 도입을 주장하지 않은 정권과 정당들은 없었다. 과연 이들이 몰라서 못했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권력형 비리의 씨앗과 모판을 제거하는 것, 그 첫 계기는 비리의 검은 사슬로부터 자유로운 정치세력의 등장과 그것을 통한 정치의 정상화에서 찾아져야 한다. '그 나물에 그 밥'인 기성 보수정치의 자기 정화를 기대하는 것은 헛수고일 따름이다.
또 정치적으로 조직되지 않은 국민적 공분이나 시민운동 차원의 사회적 압박은 단지 일시적 긴장을 조성시킬 뿐 지속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없다. 이것은 지난 9년여에 걸친 YS와 DJ 통치의 역사적 학습이 준 소중한 깨달음이기도 하다.
더불어 정-경-관의 썩은 유착이라는 권력형 비리 시스템의 복합적·다층적 구조를 염두에 둔다면, 마땅히 노동자 경영 참가 보장을 통한 경영의 투명화, 공무원 노조의 합법화를 통한 내적 감시장치의 상시적 가동이 있어야 한다.
이 지극히 상식에 속하는 일들이 왜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일까? 일차적으로는 해결의 책임 주체와 처벌 대상이 동일한 우리 역사의 아이러니 속에서. 그리고 환멸의 정치와 동전의 양면인 망각의 정치에 무의식적으로 포로가 되고 만 대중들에게서, 궁극적으로는 의지와 열정은 있되 정치적 존재와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 진보정치의 현주소에서 그 비밀의 열쇠는 찾아져야 할 것이다.
[84호] 4.22 ~ 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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