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호 madger@kdlpnews.org
<월간조선> 기사를 인용하면서 <진보정치> 기사를 시작한다.
"머슴살이 자처한 노동계 대부(代父)"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금수 이사장.
2001년 3월 월간조선은 '노동계를 움직이는 10인'이라는 제법 '선정적'인 기획을 했는데 김이사장 편의 제목을 그렇게 뽑았다.
민주노총 초대 정책국장을 지낸 김유선 연구소 부소장의 "밭만 갈아주는 소작인이라고 보면 적당할 것 같다. 노동운동을 위해 머슴살이를 하고 있는 분"이라는 말도 전해주면서. 대부와 소작인. 재미있는 불일치다.
발전노조의 기록적 투쟁과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조직된 민주노총의 연대투쟁 뒤에 남은 것은 무엇인가. 내부 갈등과 민주노총, 공공연맹 지도부의 사퇴. 노동운동의 위기라는 진단도 나온다. 새삼스런 건 아니다. 무엇이 문제인가.
갑갑해 하고 있는 '소작인'을 만나 봤다.
"한국의 노동운동이 혼돈과 미망 속에서 헤매다 못해 추락하고 있다면 너무 가혹한 표현일까. 안타깝게도 현재로서는 그 추락의 끝이 어디인지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특히 4월2일 발전노조 합의를 둘러싼 민주노총 내부의 혼란은 어렵고 힘겨운 노동운동의 처지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노동사회 4월호에 실린 김이사장의 머릿글은 이렇게 시작됐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세상은 급하게 변해가고 있는데 노동운동은 제자리에 있는 것 같다. 변하는 외부 환경을 따라잡지 못하고 당연하게 대응책도 마련 못하고 있다."
좀 막연하다.
"정부의 강도 높은 신자유주의 정책, 자본의 신경영, 미국 패권주의 세계화 등 노동운동에 직접적인 도전과 공세가 이전보다 강화된 상태에서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주체의 대응력이 높아지면 위기가 아니다. 문제는 주체 역량이 답보 상태이거나 후퇴됐다는 점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죠."
"낮은 조직률과 기업별 노조 한계가 점점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 새로운 변수는 아니지만 극복될 기미가 잘 안 보인다는 뜻.
"두개 노총 문제만 해도 하나로 되기야 어렵겠지만 연대를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부분에서는 분열만 보여주고 있다."
최근 주5일 근무제 도입을 둘러싼 양 노총의 신경전이 대표적인 사례. "현장조직의 침체도 심각하다. 임단투 중심의 관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이런 싸움은 예전 같은 위력을 갖지 못한다. 임금인상은 쟁취 대상에서 자본의 시혜처럼 되기도 했다."
임단투를 넘어선 정책 제도의 개선 투쟁-시간단축, 고용안정, 구조조정 저지 등-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얘기는 되지만 뒷받침할 만한 역량이 부족하고, 정치세력화를 해야 한다고 하지만 총연맹과 연맹, 단위노조 지도부의 의지 부족으로 실천이 뒤따라주지 않는 상황 등등. 무엇보다도 아직까지 민주노조 운동의 이념적 기초가 공식적으로 확립되지 않은 점이 지적됐다.
"한국노총의 인본주의는 이념이라고 부를 수 없다. 민주노총의 경우 지난 2000년의 '노동운동발전 전략위원회' 논의의 결과가 내부 논란 끝에 사실상 실종됐다"며 광범위한 현장 토론이 없었음을 아쉬워했다.
당시 민주노총은 '87년 이후 10여년간의 노동운동 평가를 통한 운동과제의 제시'하고 운동방향과 발전전략을 수립하기 위한 전략위원회를 구성한 바 있다.
20명 안팎의 위원이 1년간 조사, 연구, 토론 등을 통해 만든, 사회변혁적 노동운동을 기조로 '평등사회'를 지향으로 하는 '초안'은 그 당시 관심과 기대를 뒤로 한 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서로 다른 견해들이 공존의 지혜를 터득치 못한 채 '불임(不姙)'의 논쟁으로만 지속되고 있는 모습. 민주노총의 오늘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까.
그래도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당대의 수많은 도전을 어렵사리 극복하면서 여기까지 온 게 노동운동 아닌가. "87년 이후 큰 고양 단계를 맞은 것은 사실이다. 96년 투쟁은 전 세계가 주목했다. 민주노총도 건설됐고 민주노동당도 출범했다. 근데 좀 심하게 표현하면 이런 발전이 자기 계획과 의지, 힘을 통해서가 아니라 노동운동 안팎의 요구에 따라 떠밀려 온 측면이 크다." 가혹한 평가다.
"딴 나라들의 경우 21세기를 앞두고 변하고 있는 안팎의 조건을 예측, 전망하고 새로운 모색을 위한 치열한 노력이 있었지만 우리는 자신들의 커다란 잠재력을 현실화시키기 위한 어떤 계획도 적극적으로 끌어내지 못했다."
노조운동의 주요 지도부들이 "필요성을 실감 못했거나 내부 정파 싸움에 휩쓸려 큰 거를 다놓쳤다"고 개탄했다. '대부'라면 '책임'도 느껴야 되는 거 아닌가?
"교육을 다니면서 만나는 각급 단위 노조 활동가나 지도급 간부들도 현재의 위기적 상황을 다 공감한다. 이것을 벗어나는 모범 답안도 알고 있다. 산별로 가야되고, 정치세력화 해야되고 등등 알고는 있는데 해결의 계기를 어디서 찾아낼 것인가에 대해 어려워하고 있다."
불치병은 아니겠지만 고질병 또는 난치병까지 간 건 아닐까. 노동운동 내부의 정파적 분열이. "대중조직은 사상, 지지정당, 직종, 학력 이런 것들이 각양 각색인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분열 소지가 큰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하나로 묶일 수 있는 것은 그들의 공통의 요구가 있다는 것이고 이것이 계급성이다."
대중성과 계급성을 결합시켜야 하는 노동운동의 어려움은 그만큼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의 경우 분단과 오랜 '군사 파쇼' 치하를 거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견해차들이 계급이냐 민족이냐 하는 문제부터 조직 노선까지 다양한 논쟁이 있을 수밖에 없을 터.
여기다가 "어설픈 지식인들의 생각이 현장에 침투해서 (잘못된)영향을 주고 있어서 부작용과 해악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 커졌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공식 조직이 힘을 발휘하지 못할 때 비공식 조직, 사적 조직, 정파 조직이 난립될 수밖에 없다는 그는 ""현대 자동차 6개 현장조직 활동가들과 토론하는 과정에서 노조의 가장 큰 문제를 현장 사조직의 난립과 분열이라고 공통적으로 지적한 것을 눈여겨봐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취약한 공식조직과 열성 활동가들의 사조직화 현상이 맞물려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는 얘기다.
대안은 사실 뻔한 거 아닌가. "서로 다른 의견들이 공식 조직에서 토론돼서 합의를 보거나 안되면 유보되거나 표결하거나 해서 그 결과를 바탕으로 한 실천을 통해 평가돼야 한다." 이런 통로를 거치지 않고 문제가 은폐되고 분열적으로 작용한다는 뜻인데 "민주노총이 지금 그렇게 하고 있지 않나요?"
"논의할 의제 설정부터 재검토돼야 한다. 노동운동에서 지금 가장 필요한 내부개혁이 의제로 설정되지 않는 것은 큰 문제다." 그러면서 그는 현정권의 민주노조 운동에 대한 강경 태도를 "정권 입맛에 맞는 지도부 구성을 위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쪽과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철학으로 하는 권력의 속성상 불가피 한 것"으로 보는 쪽이 일치된 정세 인식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는 민주노조 운동의 추락이 더 계속될 수도 있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우울한 전망이다.
결국은 "대대적인 자기 혁신, 사업장 수준이건 전국 수준이건 노동운동의 권위 확립, 노동자들의 자존심 회복이 절실하게 요구"되며 2002년은 이를 위해 노조가 매진하는 해가 돼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최근 열린 민주노총 중앙위에서도 진단과 반성의 목소리가 많이 나왔다."고 덧붙인다. 특효약이 있을 리 없다. 그렇다면 위기론도 안 나올테고. "자기혁신의 대대적 캠페인을 시작하자." 결론이다.
말머리를 좀 돌리자. "노풍은 아무도 예측 못했다. 보수 진영 안에서 개혁 세력의 형성은 중요하다고 본다. 민주노동당이 이를 두고 우리 표를 잠식한다고 걱정하는 '쪼잔'한 생각은 안 하는 게 좋다. 오랫동안 겪어온 보수 정치권에 대한 개혁을 원하는 국민의 열망을 인정하고 노풍을 피해가거나 막으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타고 올라가자. 진보정당과 합치되는 것은 함께 키우고 분명히 존재할 수밖에 없는 진보와 차별성은 부각시키는 쪽으로 나가야 한다." 그러면서 그는 현정권 출범 초기에 노무현 후보가 자신한테 했다는 얘기를 소개했다.
"이 정권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로 전반기에는 남북 관계의 새로운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고 나머지 후반부에는 진보정당의 출현이 가능하도록 여러 가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그는 노후보에게 "당신이 한번 달라붙어서 해 봐라"고 얘기했단다.
글쎄, 이 부분에 대한 해석은 독자들의 몫으로 돌린다.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진보정당의 힘은 조직 노동자들을 얼마나 포괄하는냐가 관건이다. 노조는 구호보다 행동을 당은 실질적인 조직화 노력을 해야 한다."
"우리 노동운동의 잠재력은 매우 크다. 당도 이런 노동운동을 기반으로 존재하고 있다. 이것들을 어떻게 현실적인 힘으로 모아내느냐가 현단계의 긴급한 과제다."
1936년 생 우리 나이로 67세인 그는 85년 한국노총에서 해고된 이후 노동교육협회(노동사회연구소 전신)를 만든 이후 죽 노동운동 밭을 '소작'해왔으며 민주노총 지도위원, 민주노동당 고문을 맡고 있다.
[84호] 4.22 ~ 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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