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노동자를 품으로 끌어안지 못하는 정규직 노조 집행부와 활동가들에게
현자노조는 지난 9일 임시대의원대회에서 2002 임금요구안을 확정하며 “조합원이 열심히 노력한 결과 2002년도 역시 상당히 많은 흑자가 예상된다”며 “2002년 당기 순이익을 3(조합원)/4(재투자비용)/3(주주)의 비율로 조합원에게 성과급으로 지급할 것”을 요구안에 담았다.
현대자동차가 많은 흑자가 나는 것이 과연 ‘조합원만 열심히 노력한 결과’였는가?
정규직 노동자와 똑같이 일하면서도 임금 수준은 절반에 못 미치고 성과금은커녕 산재보험 등 4대보험 혜택조차 불투명할 뿐만 아니라, 불안한 고용문제 때문에 시키면 시키는대로 주면 주는대로 일해야 하는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인정하기 싫은 얘기일 수도 있겠으나, 현대자동차가 사상 최대의 흑자를 매년 경신하는 이유 중 중요한 부분이 바로 사내하청 노동자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부터의 착취에서 비롯된다.
정규직 노동자의 삶도 주야 맞교대에, 노동강도 강화에 힘든 것이 사실이지만,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삶은 그보다 곱절은 뺑이치며 살아가는 것이 현실이다. 여기에 현자, 현중, 미포에서 벌어지는 산재사고를 보아도 사망사고를 비롯한 중대재해가 하청 노동자에게 집중되고 있으니, 목숨까지 회사에 저당잡힌 채 살아간다.
이들이 목숨을 위협받으며 피땀 흘린 대가로 회사는 엄청난 이윤을 손에 쥐는데, 그 이윤에 대해 정당한 노동자의 몫을 주장하는 ‘성과금’이 어째서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만 주어져야 하는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임금요구안 확정을 위한 이번 대의원대회에서 나는 ‘사내하청 정규직화를 위한 특별단체교섭 요구’가 현자노조에 의해 당당히 채택되고 자본과의 한판싸움에 나설 것을 희망해왔다.
그러나 당일 대회에서는 초라하게도 ‘신규인원 직영 채용’ 요구라는 형식으로, 추가로 인원이 필요할 경우 직영으로 신규채용하여 충원하도록 한다는 앙상한 원칙만을 임금요구안 끄트머리에 추가했을 뿐이다.
이 요구를 회사가 받아들이더라도 자본은 얼마든지 빠져나갈 구멍이 있다는 것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므로 차치해두자.
최소한 임시직, 계약직 등 비정규직 고용이지만 원청이 직접 채용한 노동자들에 대해 정규직화 요구를 하는 것이 민주노총과 금속연맹을 비롯한 상급단체의 방침이다.
또한 거의 대부분의 사내하청업체는 도급 형태로 위장되어 있는 사실상의 파견근로업체로, 당연히 불법파견일 뿐만 아니라 2년 이상 업체에서 근무할 경우 법에 따라 자동으로 정규직으로 전환되어야 마땅하다.
“조합원들이 하청도 우리와 같은 노동자라는 인식을 하지 않는다”
거짓말하지 말자. 활동가들이 하청을 같은 노동자로 대접해야 한다고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설득하고 선동한다면 과연 조합원들이 하청의 문제를 내 문제가 아니라고 외면하겠는가?
이미 캐리어 사내하청이나 인사이트코리아, 기아자동차 계약직 노동자들을 정규직화 시켜 낸 경험이 축적되고 있다. 캐리어나 기아차나 SK 자본이 미쳤다고 그냥 이들을 정규직으로 받아들였겠는가? 수없이 많은 정규직, 비정규직 활동가들이 머리 깨지도록 싸우고 구속되고 해고되는 투쟁을 통해 일궈낸 것이다.
최선두에서 싸워야 할 활동가들이 비정규직의 문제를 전면으로 내걸어 보지도 않는데, 머리 터지게 싸워보지도 않는데, 어떻게 ‘정규직·비정규직은 하나’라는 계급적 연대의식이 조합원들 사이에서 저절로 싹트기를 바란단 말인가?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10년 전, 20년 전의 정규직 노동자, 바로 당신들 모습이다. 그때는 회사가 정규직 사원을 모집했으나, 지금은 정규직으로 취업할 기회 자체가 없다는 차이 뿐이다.
또한 이들은 당신의 친척 동생일 수도, 처조카일 수도 있으며, 장기근속자라면 당신 아들의 모습이요, 젊은 신참이라면 그대들의 아버지가 퇴직 후 하청으로 취업한 모습일 수도 있다. 아니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의 칼바람이 다시 한번 휘몰아친다면, 몇 년 지나지 않아 바로 당신의 미래가 그렇게 될 수도 있다.
미국의 진보운동가 킴 무디는 미국 노동조합운동이 50년대 이후 정규직 조합원의 고용과 임금조건을 개선시키는 대신 이면합의로 비정규직 확대를 용인해주며 점차 개량주의, 노사협조주의의 길을 걸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오늘 우리의 현실은 과연 미국의 그것과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를 계산해야 하는 서글픔을 씻어내기 위해서라도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가들이 특단의 노력을 기울여줄 것을 촉구하는 바이다.
오민규 울산노동자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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