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9일 오전, 베네수엘라 노조총연맹 48시간 총파업 돌입. 자본가단체인 베네수엘라 상공인 연합(페데카메라스) 또한 사업주들에게 영업을 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며 총파업에 동참.
■4월 11일, 대통령궁 앞에서 차베스 반대파와 지지파 시위대 대규모 충돌. 경찰과 국가수비대 진압과정에서 시위대 최소한 10명 이상 사망하고 100명 이상 중상.
■4월 12일 새벽, 군부 쿠데타로 차베스 체포·구금. 오후 5시 상공인 연합회장 카르모나 임시대통령 취임. 의회해산 명령.
■4월 13일 오전, 차베스 지지자들 대규모 시위 벌이던 중 쿠데타 세력과 충돌로 최소한 9명 사망. 카르모나 사임.
■4월 14일 새벽 2시, 차베스 복귀.
신자유주의 반대 내걸고 등장한 차베스
숨가쁘게 진행되었던 일주일 동안 베네수엘라에서 쿠데타가 일어나고 분쇄되는 과정을 간략하게만 옮겨보았다. 노조와 자본가 단체가 함께 총파업을 벌이고, 정권 지지파와 반대파가 대중시위를 통해 극렬하게 대립하는 장면은, 도대체 베네수엘라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하는 궁금증을 우리에게 던져준다.
차베스는 1998년 말 대통령 선거에서 빈민층의 압도적 지지로 권력을 잡았으며, 라틴아메리카 독립투쟁 영웅인 사이몬 볼리바의 이름을 따 이 나라를 “볼리바주의 공화국”으로 명명했다. 그 후로 차베스는 베네수엘라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정치경제적 기득권층으로 이루어진 권력층을 뿌리뽑기 위해 노력했다.
이 기득권층은 보수적인 두 정당(기독사회당과 민주행동당)으로 나뉘어 서로 권력을 주고받으며 이 나라를 무려 40년 이상 사이비 민주주의 시대에 머무르게 했다.
차베스는 먼저 제헌의회를 소집하여 헌법을 뜯어고치고 국민투표를 통해 통과시켰는데, 이 헌법은 지구상에서 가장 진보적인 헌법으로 기록될 만한 것이었다.
헌법개정은 40년간 지속된 보수정당 독재가 추구해온 신자유주의를 전면 부정하고 빈민과 노동자, 여성을 위한 개혁작업을 착수하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헌법개정에 따라 2000년 대통령 선거가 새로 열리게 되었고, 재출마한 차베스가 70% 이상의 압도적 지지로 재선되었다.
민중의 압도적 지지를 다시 확인한 차베스는 지난해 11월 의회에서 49개의 개혁법안을 통과시켰는데, 이 법안은 기득권층의 권리를 대폭 축소시키는 방향이어서 가진 자들의 엄청난 반발을 샀다.
기득권층의 차베스 무너뜨리기 작전
차베스는 집권 3년 동안 베네수엘라 사회에 엄청난 개혁작업을 진행했다.
△생태학적인 사회발전 정책에 재정지원 △부패행위에 엄벌을 가하고 △교육개혁을 통해 학교에 가지 못했던 100만이 넘는 아이들에게 학교 교육을 제공했으며 교육재정을 두배로 올렸고 △사회보장정책을 통해 빈민의 생활불안을 줄이고 △OPEC를 통해 적절한 석유가격을 보장받아 정부 수입을 엄청나게 늘렸으며 △국제적으로 신자유주의 반대를 선전했고 △실업률을 18%에서 13%로 줄였으며 △빈자와 여성에게 저금리 대출정책 △세금체제 개편으로 탈세를 막고 정부 세입을 늘렸으며 △아동 질병률을 21%에서 17%로 줄이고 △문맹 퇴치속도가 세배로 빨라졌으며 △법률 시스템을 현대화시켰다.
당연히 기득권층은 자신들이 착취할 몫이 빈민에게 분배되도록 하는 개혁에 반대했고, 해외투기자본 또한 차베스를 못마땅해 했다. 개혁법안이 통과된지 한달도 되지 않아 투기자본의 보복공격이 시작되고 베네수엘라 화폐인 볼리바 가치가 10%이상 평가절하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자본가와 언론, 보수적 카톨릭 세력이 노조 총연맹의 부패한 지도자까지 끌어들여 차베스 반대투쟁에 나서기 시작했으며, 결국 총파업과 유혈충돌을 명분으로 군부까지 끌어들여 쿠데타에 나선 것이다.
집권 초반에 비해 차베스 지지도가 떨어진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민중들이 차베스에 불만을 가진 것은 그가 선거에서 약속한 개혁작업의 속도가 너무 느려서이지 개혁에 반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차베스)가 선동적 기질이 다분하고 독단적 스타일이 있음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가 약속한 개혁작업은 민중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있다”며 빈민들이 차베스 지지시위를 시작했다.
쿠데타 세력은 11일 차베스가 시위대에 발포를 명령했다며 비난했지만, 그날 시위 사망자의 명단을 발표하지 않았고 이 사건의 진상조사조차 요구하지 않았다.
밝혀진 바에 따르면 그날 총격전에서 첫 희생자는 차베스 지지자였으며, 사망자 중 다수가 차베스 진영 시위대였다.
쿠데타 세력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한국의 전경련 회장쯤 되는 상공인연합회장 카르모나를 임시대통령으로 추대한 것이며, 카르모나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무상의료, 무상교육, 토지재분배’를 골자로 하는 49개 개혁법안의 실시를 유보한 것이었다.
임시내각에 노조 측은 철저히 배제되었다. 자본가들은 차베스를 무너뜨리기 위해 노조를 활용한 것이지, 그들과 권력을 공유할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미국을 위시한 세계화 광신세력의 역할
남미에서 한때 유행했던 유머가 있다.
왜 미국에서는 단 한번도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을까? 답은 바로 “미국에는 미국 대사관이 없기 때문”이다.
70년대 남미 대륙의 많은 국가에서 군사 쿠데타가 벌어졌고 이 배후에는 CIA를 위시한 미국이 있었으며, 미국 대사관은 쿠데타의 작전 참모부 역할을 맡아왔다.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즈’에 의하면 베네수엘라 쿠데타 세력은 몇 달 전 미국 대사관을 찾아 차베스 정권 전복을 위해 도움을 요청했는데, 이 사건에 정통한 미국 관리가 차베스 반대파들에게 “어떤 형식으로 벌어지든 우리는 쿠데타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 말해주었다고 보도했다.
그렇다. 미국은 그 관리의 말대로 쿠데타를 지지하지 않았다. 대신 아예 이번 사건이 쿠데타가 아니라 ‘베네수엘라 민중의 의지에 따른 정부교체’라고 주장했다!
이건 정말 우스꽝스런 일이다.
선거에서 당선된 대통령이 군에 체포되었고 군부가 정권을 장악한 후 선거로 선출한 의회와 대법원을 해산시켜 버렸다. 이게 군사 쿠데타가 아니라면, 세상에 군사 쿠데타는 아예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첨병인 국제통화기금(IMF) 또한 토머스 도슨 대변인의 정례브리핑을 통해 “차베스 정권 실각에 따라 새로 취임한 과도정부를 지원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국제사회가 군사 쿠데타를 비난했지만, 유독 미국과 IMF만은 임시정부를 지지하고 나선 것이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설명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기득권층의 반발을 불러왔던 차베스의 49개 개혁법안
자본가와 기득권층은 49개 개혁법안에 극렬하게 반대했지만, 지금도 수도 카라카스의 노점에서는 개정된 헌법과 49개 개혁법안을 담은 ‘소법전’이 가장 잘 팔리는 품목이다.
개혁법안 중 대표적인 몇 개만 살펴보자.
[토지법]의 경우 넓고 비옥한 땅을 경작하지 않거나 땅주인이 토지에 대한 소유권을 입증하는 법적 서류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 토지를 무상으로 몰수해 농민에게 배분할 수 있는 권한을 국가에 부여함으로써 남미의 뿌리깊은 ‘대농장 소유자’ 계급을 척결하고 빈농에게 토지를 재분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어업법]은 영해를 기존 5km에서 10km로 확장하는 내용으로 이 해역 안에서 산업 목적의 어업을 금지시킴으로써 소규모 어업을 하는 어민들의 이익을 보장해주고 탐욕적인 대규모 어획에 의해 파괴되는 환경을 보호할 목적으로 도입되었다.
또 [탄화수소법]을 통해 국영 석유기업인 베네수엘라 석유(PDVSA)에 대해 사유화를 금지시켰다. 해외자본과 미국 입장에선 큰 충격을 먹을 만한 법안임에 틀림없다.
PDVSA 문제는 이번 사태에서 가장 핵심적인 이슈였다. 노동계가 총파업을 벌인 명분은 바로 차베스가 PDVSA 이사진을 모두 해임하고 자신의 지지자들로 채워넣은 사건이었다.
PDVSA 기존 이사진은 OPEC의 석유감산정책을 따르지 않았는데, 적정한 석유값을 보장받음으로써 국익을 늘리기보다 자기 회사 주가상승을 꾀해 주식시장에서 사리사욕을 챙기려 했기 때문이다. 유가상승을 우려한 미국의 입김이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이들의 태도는 차베스가 미국에 맞서 제3세계 석유수출국을 단결시키려는 계획과 정면 배치되는 것이었다.
총파업에 나선 베네수엘라 노조총연맹(CVT) 지도부는 부패한 관료들로, 이들은 사업주에 충성하지 않는 노동자를 ‘블랙리스트’로 작성해 사업주에 넘기는 일까지 일삼는다. 총연맹 위원장인 카를로스 오르테가는 PDVSA 출신 노동자로서 과거 대중들로부터 불신임받아 쫓겨난 전력도 있다. CVT 지도자들은 “사업주의 이익이 줄면 노동자의 몫도 줄어든다”는 전형적인 어용 논리로 대중을 총파업에 동원시켰다.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