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 copyleft 교육희망] ▲
약 한 달 전에 문제가 된 교육인적자원부의 소위 “공교육 내실화 정책”의 보충 수업 부활 방침이 쟁점화되어 가면서, 그 “정책”의 또 한 가지 기본 방침인 체벌의 일정 허용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이슈로 보도됐다. 그러나, 학교의 학원화를 부추기는 보충 수업 부활 방침 못지 않게, 체벌에 대한 정권의 점차적 태도변화는 김대중 정부의 “민주화”의 한계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체벌만큼 학교 교육의 정치적인 의미를 증명해주는 교육 제도의 측면도 없을 것이다.
예컨대, 조선시대 학교들의 신체적 제재의 관습을 폐지하기는커녕 그 반대로 강화·체계화·악질화시킨 일제의 의도는, 무엇보다 반(半)봉건적인 후진적 현실의 영구화, “위로부터의 폭력”을 숭배하는 “충량 (忠良)한 황국 신민”의 키우기에 있었던 것이다. 과연 그러한 문맥에서 1920년대의 조선의 진보적인 지식인들이 체벌의 전면 폐지뿐만 아니라 유아들에 대한 학교에서의 경어(敬語)의 사용까지 주장했다는 것은 우연한 일이겠는가?
일제에 맞서려는 그들은, 민족의 독립을 쟁취할 수 있는 독립적인 개인을 인격의 존중, 인간적 존엄성의 함양을 통해서 길러내고자 했다. 그리고, 체벌을 전면 폐지했던 초기 (레닌 시절의) 소련 정권의 교육관도, 그들에게 중요한 참고가 되기도 했다. 반대로, 일제 당국자들에게 참고가 된 것은, 체벌을 숭상했던 영국·미국·독일 등의 지배층의 보수적인 교육관이었다. 학교 아동뿐만 아니고 어른 조선인에게까지도 조선시대식의 태형(笞刑)을 계속 적용한 일제는, 인도인 “소요 분자” (즉, 정치범)들에게 악질적인 체벌을 가했던 영국의 식민지 경영의 경험을 잘 살리고 있다고 자랑까지 했다. 진보와 보수가 갈라진 20세기 초반의 세계에서는, 체벌은 분명히 교육 당국자의 정치적 의향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과연 체벌이 그 후에 정치성을 벗어났는가? 일제 시대의 엘리트와 사회적 구조, 국가주의의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계승한 남한에서 일제식의 체벌이 그대로 살아남은 반면, 북한의 초기 민주적 개혁들이 체벌의 철폐를 포함했다는 것은 우연인가?
1970-1980년대에 와서야 체벌을 폐지한 서구의 대부분의 국가나 호주, 뉴질랜드의 교육 민주화 정책은, 현재까지도 종교 계통의 학교를 중심으로 하는 교육계 보수 세력의 집중적 타격의 대상이 되어 왔다. 반대로, 동남아의 민주화 운동가들은 말레이시아나 싱가포르에서의 영구 식민지 시대 식의 체벌의 존속을, 그 나라들의 극단적으로 억압적인 자본·관료 집단 독재의 상징으로 인식해왔다.
체벌 문제를 공론화시켜 체벌 폐지의 초석을 닦은 김대중 정권의 초기 교육 정책을, 국내외에서 “권위주의 사회의 저변 구조의 혁명적 해체”로 평가한 일이 있었다. 그렇다면, 체벌 존속 방침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마르크스주의 입장에서 보면, 체벌은 계급 사회의 소외 현상의 극단적인 표현으로 보인다. 생산에 대한 자본의 지배는 임금 노동을 상품화시켜 인간으로부터 소외시키듯이, 체벌로 표현되는 학생 신체에 대한 교육자의 지배는 기본적인 신체적 자율성을 박탈해 신체를 소외시킨다. 체벌이 허용되는 한, 공적인 공간(학교)에서의 학생의 몸은 더 이상 학생의 것이 아니다.
그 몸은, 학생의 자아, 학생의 의지와 무관하게 학교·국가의 훈육 프로젝트의 하부 구조로 전락한다. 훈육자(교육자)가 통증 기피의 동물적인 본능을 이용해서 순종·복종의 관습을 “입력”시키는 과정에서, 인격체로서의 학생은 철저하게 배제된다. 한 번 어릴 때 이와 같은 “순치”의 코스를 거친 사람이면 내면적인 독립성을 회복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학계에서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시키는 대로, 다들 하는 대로 안 하면 아프게 된다”는 어릴 적의 기억이 정신을 지배하게 된다면, 부화뇌동의 생활 양식을 면하기가 아주 어렵다. 사실, 학우들에게 뒤떨어지지 않으려고 명품 소비에 열을 올리는 소비자로서의 학생들의 태도와, 체벌을 통해서 몸에 밴 “집단·타인에의 복종의 본능”을 연결시켜 보면,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체벌을 포함한 국가적 훈육의 프로젝트에 대한 향수를 끝내 이기지 못한 현 정부의 의식의 한계를, 한국의 “주류” 정치가 언제 벗어날 수 있을까?
유럽에서 체벌 폐지를 꾸준히 주장하여 결국 지배층으로부터 “학생의 신체적 자율성의 회복”이라는 양보를 바로 좌익 정치인·운동가들이 따냈다는 점으로 본다면, 한국에서도 진보 운동이 체벌의 전면적·절대적 폐지를 위해서 보다 노력하지 않으면 획기적인 진척이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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