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호/초점] 대선 1차 투표 이후 프랑스 상황

이와 같이 정부를 구성하는 정당들이 기반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은 국가 정상 자크 시라크를 비롯해 민중들이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한 정치 체제와 지도자들을 거부하고 있다는 징후이다. 더욱 중요하게 이는 좌파에서 우파까지 여러 정부들이 지난 몇 년 간 추진한 신자유

대선 1차 투표 이후 프랑스 상황

[ATTAC 주간뉴스레터] 125호, 2002/04/24, 크리스토프 아기똥

대선 1차 투표는 매우 끔찍한 일이었다. 극우파 지도자 쟝-마리 르펜이 공화국의 현 대통령이자 프랑스 의회 내 우파들의 지배 정당인 공화국연합(RPR) 후보 쟈크 시라크와 함께 결선투표에 참여하게 되었고 극우파가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결과로 정치적 지각변동이 일어났고 전국에서 대규모 시위가 즉각 촉발했다. 바로 다음 날인 4월 22일 월요일, 거의 10만 명의 사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시위를 벌였고, 화요일에도 비슷한 인원의 시위자들이 모였고, 몇몇 주로 고등학생과 대학생이었다. 몇몇 성명서와 계획된 행동 -특히 단체와 노동조합들의 행동- 을 개괄하기 전에 투표에 대한 분석과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정치적 교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대한 거부

먼저, 이번 결과가 프랑스의 정치 지형이 우익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민주적 세력 및 사회운동들이 기반을 잃어가고 있다는 징후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오류이다. 보다 일반적으로, 최근 유럽 선거(가장 먼저 이탈리아, 덴마크와 포르투갈, 이제는 프랑스)를 특징지은 우파로의 이동을 대처 및 레이건의 승리와 비교하는 것은 아주 올바르지 못한 것이다. 대처와 레이건의 집권은 1980년대 초 힘의 균형을 반전시키고 노동조합 운동의 장기적 약화와 경제적 자유주의의 부흥을 일으킨 바 있다.
이탈리아에서의 상황은 실제 힘의 균형이 어떠한 지에 대해 명확한 생각을 갖게끔 해준다. 베를루스쿠니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3월 22일 시위와 4월 16일 총파업에서 볼 수 있듯이, 제노아 투쟁으로부터 자극받은 젊은이들과 노동자 모두가 대규모적이고 광범위한 봉기를 일으키고 있다.

득표수 측면에서 바라보면, 대선 1차 투표의 결과가 그려낸 그림은 프랑스의 상황이 우익과 극우 간의 충돌이었다는 단순논리와 거리가 멀다. 1995년 대선 1차 투표에서 극좌를 포함해 좌파의 득표수가 1,235만 7천이었고 2002년도에는 1,222만으로, 여전히 비슷한 수준이다. 극우를 포함해 우파의 득표수는 1,802만 2천에서 1,628만 2천으로 떨어지는 등 2백 만 표를 잃었다. 이는 심지어 120만 표로 4%를 득표한 사냥낚시자연전통당(CPNT, 사냥꾼들이 만든 우익성향의 정당으로, 사냥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많은 농촌지역에서 지방의원을 배출하곤 한다-옮긴이)을 우익의 일부로 간주해 나온 수치이다.

이번 투표로부터 얻을 수 있는 큰 교훈은 권력을 잡고 있는 정당들이 약화되고 있다는 것이지만, 또한 이는 좌파만큼이나 우파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집권 좌파(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와 녹색당)의 득표수는 1,074만 1천 개에서 924만 6천으로 떨어져 약 150만 표를 잃었다. 물론 여기에는 내무부 장관직을 사임한 지 1년도 안되고 공화국의 안보에 초점을 맞춘 캠페인을 진행해 151만 8천 표로 5.4%를 득표한 쟝-삐에르 셰브느망(시민운동당MDC 창당자로, 그는 사임하기 전까지 사회당 연립정부에 참여했었다-옮긴이)의 득표수를 포함한 것이기는 하다.

이와 같이 정부를 구성하는 정당들이 기반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은 국가 정상 자크 시라크를 비롯해 민중들이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한 정치 체제와 지도자들을 거부하고 있다는 징후이다. 더욱 중요하게 이는 좌파에서 우파까지 여러 정부들이 지난 몇 년 간 추진한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거부이다.

기권은 21%에서 28%로 증가했고 백만 명 이상의 투표자(3.4%)가 의도적으로 무효표를 찍었다. 극우(3명의 트로츠키주의자 후보)의 표수는 161만 6천에서 297만 4천(5.3%에서 10.6%)으로 140만 표가 증가했으며 극우(2명의 후보)는 100만 표를 늘려 득표수가 457만 1천에서 547만 2천(15%에서 20%)으로 증가했다.

노동계급에 뿌리는 둔 극우

많은 사람들은 극우가 영구적으로 약화된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서 극우의 부흥에 더 큰 충격을 받고 있다. 극우는 1997년도 총선과 2001년도 지방선거에서 지지기반을 잃었으며 대대적인 분열을 겪었다. 현 선거 1차 투표 기간 동안 진행된 논쟁이 이에 대한 설명 중 일부분을 제공해준다.

범죄 이슈에 집중함으로써 자크 시라크와 리오넬 조스팽은 둘 다 전통적으로 극우가 제기하던 이슈에 상당한 무게를 실었다. 그런 반면, 르펜은 평상시보다 '온건한' 선거운동을 진행했으며, 이민 문제에 덜 집중하면서 노동자와 홈리스들을 옹호하는 등 사회 문제에 초점을 더 맞추었다.
출구 조사는 이러한 목표설정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를 보여준다.

르펜은 실업자 표 중 30%와 공장 노동자 표 중 23%을 얻은 반면, 시라크는 16% 그리고 리오넬 조스팽은 11%를 득표했다. 현재 고용된 투표자 모두의 투표결과를 보면 르펜이 19%로 자크 시라크(17%)와 리오넬 조스팽(16%)에 앞서 여전히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노동계급 내에서 극우의 성공은 특히 최저임금이나 기본적 사회적 권리의 실질적인 향상을 이룩하려 하지 않았고 정리해고와 고용 불안정에 대해 급진적 조치를 취하지 않은 리오넬 조스팽에게 특히 아주 맹렬한 공격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 결과는) 노동조합, 그리고 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항해 투쟁하고 있으며 1995년 11월과 12월에 시작해 시애틀의 대규모 시위를 거쳐 증폭한 투쟁과 시위가 극우파의 장기적 주변화를 이끌어냈다고 생각했던 ATTAC과 같은 사회운동들에게 있어서도 역시 문제이다.
노동조합에게 주어진 과제는 실업자 등 사회의 주요 약자들의 요구를 대변하고 사적 부문의 노동자들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ATTAC과 같은 사회운동들은 노동자계급과 연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투쟁의 조직화

일요일 밤에 곧바로 시작한 시위는 전국적으로 진행되었으며 다음 날에는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이 거리로 나왔다. 이런 동시다발적 봉기는 여러 조직들과 좌파 정당이 투쟁 계획을 그려나갈 수 있는 시발점이 되고 있다.

첫 번째 합의지점은 르펜에 대항한 싸움을 전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선 2차 투표는 5월 5일에 진행될 것이며, 자크 시라크가 이길 것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르펜의 득표율이 이후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래서 ATTAC-프랑스가 배포한 유인물과 여러 단체와 노동조합들이 입장을 표명한 성명서에도 "르펜은 가능한 한 최소의 표를 얻어야 한다"라던가 "생각에서, 거리에서 그리고 투표장에서 르펜을 이기자"라는 구호가 나오는 것이다. 5월 5일 전에는 두 개의 핵심 연대 투쟁이 있을 예정이다. 4월 27일과 가장 중요하게는 5월 1일 수요일.

그러나 물론 ATTAC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국민전선에 저항하는 투쟁을 벌이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으며, 오히려 노동계급의 요구를 옹호하고 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항하는 것이 극우가 부상한 뿌리와 원인을 공격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단체들과 노동조합이 함께 행동을 발의하기 위해 회의가 진행되어 왔으며, 이러한 요구들을 표출하고 이번 시위와 여러 전투적 활동가들이 요구하고 있는 논의와 논쟁의 공간을 형성하기 위한 의제들이 제출되고 있다. 모든 이들에게 공개된 첫 번째 큰 회의는 목요일 저녁 파리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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