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법은 '문화와 예술의 향상, 발전'을 목적(저작권법 제1조)으로 한다.
그리고, 창작자들의 배타적 권리를 '한시적으로' 보장하는 이유는 창작에 대한 인센티브를 부여함으로써, 창작을 활성화하려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문화와 예술의 향상, 발전을 위해서는 지식의 확산 역시 중요하기에, 저작권 보호기간 이후에 해당 저작물은 사회의 공공자산으로 될 뿐더러, 저작권 보호기간 중에도 공공의 목적을 위해 저작권 적용이 제한되기도 한다.
하지만, 개별 창작자가 아닌 '이윤'을 목적으로 한 기업들이 지식, 문화 영역까지 이윤 증식의 수단으로 포섭하면서부터 저작권법의 의미는 사뭇 달라지게 된다. 나아가 신자유주의적 경쟁 논리가 전 사회에 확산되면서, 기존의 비시장적 관계(예컨데, 교육 기관, 도서관 등)마저 시장의 논리로 재편되고 있다.
이는 저작권 보호 대상의 확대와 저작권의 강화 경향으로 나타난다. 실제 창작자가 아닌 음반사 등 저작인접권자에게 저작권과 유사한 권리를 부여하기 시작했으며, 우루과이라운드에서부터는 무역과 관련된 이슈로 논의되기 시작하여 WTO의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TRIPS)에서는 소프트웨어와 데이터베이스 등 전통적으로 저작권 보호대상이 아닌 것도 포함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현재 국회에 상정되어 심의중인 저작권법 개정안에서는 창작성 없는 데이터베이스마저 보호하겠다고 한다.
문제는 지식과 문화의 생산이 시장 논리에 의해 과도하게 침식되었다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실제 생산자들은 기업에 고용된 노동자이거나 문화 기업에 종속된 가난한 프리랜서일 뿐이다. 저작권은 이러한 지식, 문화 기업들의 이윤을 보장하는 수단으로 전락한다. 이러한 방식이 진정으로 지식과 문화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우선 그들은 문화 생산의 가치를 왜곡시킨다. 사회적 가치는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가와 동의어가 되며, 이윤을 창출할 수 없는 지식과 문화는 배제된다. 디지털 환경으로의 변화는 이러한 모순을 더욱 극대화시키고 있다. 진정한 창작자라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창작물이 수용되는 것을 바랄 것이며,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의 확장은 그러한 바램을 현실화시키고 있다. 창작자와 수용자가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공간을 창출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저작권 체제 하에서 이러한 가능성은 철저하게 위축된다. 문화 자본들에게 디지털 환경은 악몽이다. 그들은 최대한 이용자들의 '자유로운' 접근을 배제하고자 한다. 기술적·법적 조치를 통해서. 문화와 지식의 생산을 시장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한, 이러한 모순은 끊임없이 되풀이될 것이다.
안달한 그들은 주장한다. 자신들에게 이윤을 보장하지 않으면 이 사회의 지식과 문화는 황폐화될 것이라고.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말라. 지식과 문화의 생산은 인간의 본능이다. 또한, 지식과 문화의 자유로운 확산은 사람들에게 또 다른 창작을 위한 동기를 유발하게 될 것이다. 지식과 문화가 발전하는 방향도 현재와는 달라질 것이지만. 정책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투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공공 정책'의 관점에서 수행되어야 한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정보공유연대 IPLeft 회원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