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재산권이란 무엇인가

1. '지적재산권'(intellectual property)이란 용어는 우리가 오늘날 언론을 통해서나 또는 이런 저런 기회에 자주 접하게 되는 말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막상 '지적재산권'이란 용어를 정의하려고 들면 여러 가지 어려움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지적재산권이란 하나의 '우산'(개념) 아래에는 여러 부류의 권리들이 모여들어 있어서, 이들을 총칭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대략 나열해 보더라도, 특허권, 실용신안권, 상표권, 의장권, 저작권, 부정경쟁에 대한 보호, 영업비밀의 보호, 집적회로의 배치설계 등 다양한 종류가 포함되어 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지적재산권이 규율하는 영역은 '유전자'로부터 '사이버스페이스'에 이르기까지 실로 광대무변(廣大無邊)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지적재산권에 포함되는 이러한 다양한 권리를 다시 산업재산권(industrial property)과 저작권으로 크게 나누는데, 특허권, 실용신안권, 상표권, 의장권, 저작권, 부정경쟁에 대한 보호나 영업비밀의 보호 등은 산업재산권에 속한다. 이들은 대개 특허, 의장, 실용신안, 저작물, 영업비밀, 반도체집적회로의 배치설계와 같이 인간의 지적 창작물과 관련이 되어 있거나, 상표, 지리적 표지, 상호, 영업상의 신용 등과 같이 영업상의 식별표지와 관련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지적재산권을 굳이 총칭하자면, 지적재산권이란 인간의 지적·정신적 활동에 의한 창작물과 영업상의 표지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지적·정신적 활동의 창작물이란 내용에 가치가 있는 새로운 정보의 창출이라 할 수 있고, 영업상의 표지란 그 표지에 내재되어 있는 영업상의 신용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이는 소비자가 영업자에 관하여 갖고 있는 신용에 관한 정보를 말하며, 이것은 시장에서의 행동을 원할하게 하는 정보를 말하는 것이다. 요컨대, 지적재산권은 가치있고 유용한 정보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정보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특허와 실용신안은 새로운 실용적인 기술정보(technical information)를 보호하는 것이고, 상표는 상징정보(symbolic information)를 보호하는 것이며, 저작권은 독창적인 표현정보(expressive information)를 보호하는 것이다.

2. 근대 자본주의의 재산법은 일반적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권리의무관계로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법이 일정한 이익을 존중해야 한다고 인정하면, 그것은 사람에게 속하는 '권리'가 된다. 그러한 권리 중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권(權)이란 명칭이 붙어 침해를 배제하는 권능으로서 세상 누구에게라도 주장할 수 있는 권리이다. 그 전형적인 것이 소유권으로 대표되는 물권(物權)이다.
그런데 지적재산권은 유체물에 대한 권리, 특히 소유권과는 달라서 정보라고 하는 무체(無體)의 재화상(財貨上)에 성립하는 것이므로, 소유권법과는 다른 특유의 법제도가 필요하게 된다. 그런데 지적재산권법 또는 무체재산권법의 대부분은 소유권을 하나의 모델로 하여 그것의 유추로서 법률이 만들어 진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영어의 'Intellectual Property'를 지적'소유권'이라 번역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소유권을 모델로 하였다는 면이 번역어에도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지적재산권이 소유권을 모델로 하였다고 하더라도 모델로서의 소유권이란 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의제(擬制, fiction)이기 때문에, 지적재산권에 속하는 권리는 소유권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다만 특허권이나 저작권 등은 소유권의 개념을 차용해서 입법을 한 것에 지나지 않다. 그래서 특허법이나 저작권법 등에 소유권 유사(類似)의 금지청구권이나 정지청구권이 규정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보면, 지적재산권이란 흔히 하는 말로 유체물을 대상으로 하는 전통적인 재산권과는 다른 정보라는 무체물을 그 보호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재산권이라 부를 수 있다. 즉, 근대국가를 거쳐오면서 자본주의적 산업사회의 발전은 공업적 생산수단의 거대화에 의한 자본주의적 재산권의 확대를 가져왔는데, 그러한 예로 흔히 드는 것이 채권의 비중의 확대, 증권적(證券的) 재산권의 탄생, 지적재산권의 탄생 등이다. 지적재산권에 초점을 맞추어 설명하면, 지적재산권은 자본주의의 형성에 있어서 자본의 원시(시초)축적을 가능하게 한 하나의 방편 내지 기능이었던 셈이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지적욕구의 역사적인 축적과정을 나타내는 것을 지적재산권이라 할 수도 있다.

3. 이러한 점에서 지적재산권 중에서, 특히 특허권, 상표권, 저작권의 보호의 역사를 간단하게나마 살펴보는 것도 지적재산권의 개념을 고찰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새로운' 재산권으로서 지적재산권의 태동과 그 발전의 궤적을 간단하게나마 추적해 봄으로써 지적재산권의 의미를 보다 분명히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1) 특허제도는 새로운 실용적인 기술정보, 즉 발명과 같은 일정한 기술성과물의 창작자에게 일정 기간 그 성과물의 독점을 인정하는 권리를 줌으로써 기술개발을 보호하고 장려하는 제도라고 흔히 말한다. 오늘날과 같은 이러한 목적의 특허제도를 규정한 최초의 법령은 1474년 베네치아에서 만들어졌는데, 특허요건을 정하고 출원절차나 침해에 관한 벌칙규정을 두었으며 기술에 대한 10년간의 배타적 권리를 부여하였다. 이러한 특허제도는 영국에서 본격적으로 발전하였는데, 14세기 영국은 선진기술을 대륙으로부터 받아들이기 위해 길드 지배가 확립되어 있던 영국에서 자유롭게(Open) 영업할 수 있는 특권을 대륙출신 기술자에게 부여할 필요가 있었다고 한다. 이 특권은 특허장(Letters Patent)에 의해 부여된 것으로, 이것에 연관되어 Open과 동의어였던 Patent에 특허라는 의미가 생겼다고 한다. 이러한 특권은 그후 발명과 같은 성과물의 창작자에게도 부여되었지만, 엘리자베스 여왕시대(1558-1603)에 왕실의 재정수입을 마련하기 위해 기존의 성과물에까지 특허장을 남용하였다.
이러한 특허의 남용은 국민경제를 혼란에 빠뜨린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국민의 반발을 야기하였다. 그래서 1602년 국내에서 신규 사업을 시작하는 경우 등의 이외에는 특허는 무효로 한다는 판결(Darcy v. Allein, 72 Eng. Rep. 830 "트럼프 제조판매수입의 독점권과 Common Law와의 관계")이 나오기에 이르렀고, 드디어 1624년 독점법(Statute of Monopolies)이 제정되었다. 이 법은 새로운 발명에 대한 특허 이외에는 독점을 금지한다고 한 점에서 근대 특허법의 기초를 이루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법 제6조는 "14년 이내의 기간 동안 영국에서 새로운 물품의 실시 또는 제조에 대한 특허장은 그 물품의 최초의 진정한 발명자에게 부여되고, 그러한 특허장을 부여시 다른 사람은 이를 이용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 법을 본받아 각국이 특허법을 제정하기 시작하는데, 미국은 1787년 연방헌법에 기초하여 1790년 연방특허법을 제정하였다. 프랑스는 프랑스혁명이 한창이던 1791년 1789년의 인권선언에 입각하여 특허법을 제정하였다. 프랑스의 특허법은 프랑스혁명을 계기로 유럽 대륙을 비롯한 많은 국가(스페인, 포르투갈, 벨기에, 룩셈부르크, 그리스, 터키)에 전수되어 모법이 되었다.
그 후 국제 교역의 증가는 각국으로 하여금 특허의 국제적 보호에 관심을 갖게 하였다. 1873년부터 몇 차례에 걸친 국제회의 결과 1883년 파리협약이 탄생하였다. 파리협약은 어느 한 국가에서 나온 발명에 대하여 다른 여러 국가에서도 보다 간편하고 효과적인 특허 보호 방안을 마련하는 것을 주요 목적의 하나로 하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각국은 특허제도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노력하였으며 특허제도의 국제적인 조화와 통일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였다.
특허의 국제적 보호 장치가 마련되었다고 해서 특허제도가 계속 발전을 거듭한 것은 아니었다. 19세기 후반 각국에서는 특허법의 필요성과 특허제도의 유용성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네덜란드는 1817년 제정된 특허법을 1869년부터 1910년까지 폐기한 바 있다. 스위스는 특허법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1888년 특허법 제정을 위한 국민투표도 부결되었다. 그런가 하면 영국에서는 1872년부터 특허법의 결함과 남용에 관한 사실조사에 착수한 바 있으며, 이것은 강제사용허락 조항(1883년)과 강제실시권 조항(1907년)이 영국 특허법에 삽입하는 계기가 되었다. 프랑스에서는 무역의 자유와 특허의 폐지를 지지하는 경제학자와 상공인들이 특허제도에 대하여 공격을 마다하지 않았다.

(2) 고대 중국이나 中近東 및 그리스, 로마 시대의 도자기, 장식품 또는 조각 등의 창작물에 오늘날의 상표와 유사한 표지가 부착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런 점에 입각하여 상표의 기원을 고대에서 찾는 견해도 있기는 하지만, 오늘날과 같은 상표로서의 법적인 기능, 자타상품(自他商品)을 식별하게 하는 기능뿐만 아니라 출처표시의 기능, 품질보증의 기능, 광고선전의 기능을 갖는 것이 아니므로 논리적 비약이 있는 무리한 견해라고 하겠다.
역사상 제품에 표지가 사용된 것은 도기(陶器) 등에 공예가 또는 수공업자가 자신이 제조한 도기 등을 다른 물건과 구별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 최초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들 표지는 생산자의 무형의 신용과 명성을 보호하는 목적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생산자의 자존심을 충족시킨 유체물인 창작물의 재산권을 명확히 할 목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종류의 표지는 중세 시대에 상인이 가옥이나 가축, 기구 등의 재산을 보관하거나 또는 수송 중에 있는 상품을 관리하기 위한 표지(signa mercatorum)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동업자조합(Guild)이 융성해짐에 따라, 그 조직내부에 대한 경찰적 수단(police measure)으로서 그 구성원은 길드 자체의 표지를 부착하거나, 나아가 각자의 표지를 그 상품에 부착하는 것이 의무로서 강제되었다. 이러한 상품은 직물, 메리야스, 귀중품, 철, 종이, 도자기에서 빵이나 버터와 같은 일상품에까지 미치게 되어, 당시에 이미 소비자들은 이들 표지에 상품의 품질관념을 결합시키고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1766년에는 독일 동업자조합 내부에 표장등록제도가 존재하였다는 것도 밝혀졌다. 그러나 당시의 표지는 이른바 상호표지로서 1사업자에 1표지의 사용만이 인정되었고, 자타상품식별표지(自他商品識別標識)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지는 않았던 것에 유의해야 한다.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 상품의 대량생산과 교역량의 급증, 그리고 이에 수반하는 유통경로의 확대로 인해 상표를 위조한 제품이 범람하게 되자 위조상품에 대한 규제의 필요성이 부각되었다. 19세기 중반 이후 영국에서는 위조상품에 대한 규제를 시작하였는데, 이는 Common Law의 일부로서 상표의 신용을 해치는 행위를 금지하는 권한을 상표사용자에게 부여하여 사칭통용(詐稱通用, passing off)을 금하는 법리로 발전하였다. 이에 더하여 영국은 상표의 간이신속한 보호의 요청상 1862년 상표법을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미국도 사칭통용의 법리를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1870년 연방상표법을 제정하였다. 유럽 대륙에서는 프랑스가 1857년 상표법을 제정하였고, 독일에서는 1871년 제2제국 성립 이후 1874년 상표법을 제정하였다.

(3) 세계 최초의 저작권법은 1709년 1월 11일 영국 하원에 제출되어 1710년 4월 10일 확정된 영국의 앤 여왕법(Queen Anne's Statute)이다. 1469년 베네치아시는 인쇄술을 처음으로 도입한 요한 슈페이어(Johann von Speyer)에게 5년간 인쇄술에 의한 출판을 독점하게 한 사례가 있으나, 이것은 출판특권제도의 효시일 뿐이고 오늘날 저작권제도의 효시로 보기는 어렵다. 인쇄술의 발명과 보급으로 영국이나 유럽대륙에서 저작물을 값싸게 대량 복제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자 통치자와 성직자들은 이것이 갖는 정치적·종교적 영향력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군주들은 특정 출판업자만이 출판할 수 있도록 특권을 부여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출판특권제도이다. 즉, 이 제도의 본래 목적은 저작물을 통제·검열하고 출판을 억압하는 것이었다.
이후 존 로크를 비롯한 여러 사상가들에 의한 자유주의 사상의 영향과 개인주의 사상의 만연으로 출판물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면서 출판특권제도가 붕괴되기 시작하자 출판특권업자들이 투자하여 출판한 서적들에 대한 무단복제가 범람하게 되었다. 그래서 영국 런던의 서적출판조합(Stationers' Company)은 투자보호를 요구하게 되었는데, 이에 따라 제정된 것이 앤 여왕법이다. 앤 여왕법은 서적출판업조합의 오랜 관습을 실정법화한 것이지만, 주목할 것은 그 이전에는 영구히 보호되던 권리를 일정 기간 동안으로 제한한 점이다. 즉, 이 법은 '저작자 및 그 권리승계인'에 대하여 출판되지 않은 책에 대해서는 최초 출판 후 14년간 독점적 출판권을 보장하고, 이 기간이 만료된 후에는 저작자가 생존해 있는 경우에는 또 다시 14년을 갱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 권리는 문학적 창작행위로부터가 아니라 오히려 상업적 이용행위(commercial exploitation)로부터 연원하는 것이었으며, 서적출판업자들은 저작자의 권리승계인에 해당하는 것으로 거명되었다. 또한 이 법에 따른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출판 전에 책의 제목을 서적출판업조합에 등록할 것이 요구되었다.
영국의 앤 여왕법은 다른 나라의 입법에도 영향을 주어 미국은 1790년 최초의 연방저작권법을 제정하였고, 프랑스는 1793년 '문학 및 예술의 소유권에 관한 법률'을, 독일은 1871년 제2제국의 탄생과 더불어 제국 저작권법을 각기 제정하였다. 이러한 저작권법제의 공통되는 핵심개념은 '저작자'와 '저작권' 그리고 저작권의 보호객체로서 '저작물'이다.
저작권은 저작물의 창작행위로부터 발생하게 되는데, 그 창작행위는 바로 저작자의 개성의 표현이자 인격의 발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저작권의 발생의 기초로서 작용한 저작자의 인격적 요소를 저작권 속에 어떻게 포섭해 나갈 것이냐 하는 문제는 중요하다. 독일, 프랑스 등 대륙법계 국가는 저작권을 '저작자의 권리'(Urheberrecht; droit d'auteur; author's right)로 보아 저작자의 재산적 이익 외에 그 인격적 이익의 보호를 중요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에 반하여 영미법계에서는 저작권을 '복제를 보호하는 권리'(copyright)로 파악함으로써 저작자의 재산적 이익의 확보에 중점을 두어 저작물의 외연을 넓게 보고 있으며, 그 결과 최초 창작자로서의 성격보다는 저작물 이용자로서의 성격이 짙은 필름제작자, 음반제작자, 방송사업자들까지 저작자에 포함시키고 있다. 다만 오늘날 저작인격권에 관해서는 대륙법계와 영미법계의 현실적인 차이점은 많이 없어져 가고 있다. 즉, 영국은 1988년 저작권법에서 저작인격권에 관한 보호규정(제77조 내지 제89조)을 두고 있으며, 미국은 1990년 저작권법을 일부 개정하여 시각적 미술저작물에 대해 저작인격권을 부여하는 조항(제106조의A)을 신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4. 끝으로 지적재산권과 인권과의 관계를 살펴봄으로써 지적재산권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도 있을 것이다.
1948년 12월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세계인권선언' 제17조는 재산권 일반에 관하여, 제27조 제1항은 "모든 사람은 공동체의 문화생활에 자유롭게 참여하고, 예술을 감상하며, 과학의 진보와 그 혜택을 향유할 권리를 가진다"고 제2항은 "모든 사람은 자신이 창조한 모든 과학적, 문학적, 예술적 창작물에서 생기는 정신적, 물질적 이익을 보호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각 규정한다. 이와 같이 세계인권선언 제27조 제2항은 지적재산에 관한 권리를 선언하고 있다. 세계인권선언에 포함된 지재권에 관한 보호는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의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서, 이러한 권리들은 1966년 12월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A규약) 제15조에서 더욱 완전히 규정되고 있다. 즉, 제15조 제1항(a)는 문화생활에 참여할 권리를, (b)는 과학의 진보 및 응용으로부터 이익을 향유할 권리를, (c)는 자기가 저작한 모든 과학적, 문학적 또는 예술적 창작품으로부터 생기는 정신적, 물질적 이익의 보호로부터 이익을 받을 권리를 각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제15조(a)(b)(c)에는 문화적 참여와 저작권, 과학의 발달에 대한 숭상과 특허권의 보호 등으로 혼재되어 있는데, 제15조 제1항(a)(b)가 각 규정한 문화적 생활에의 의의 있는 참가 및 과학적 진보에 의한 이익의 응용은 제15조 제1항(c)가 규정한 지적재산의 효과적인 보호가 있는 경우에만 가능하게 된다. 요컨대 제15조 제1항(a)(b)와 (c)는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는 것이다. 이들 규정은 세계인권선언의 그것과는 달리 각 체약국에게 A규약에 대한 구속력 있는 의무를 부과하도록 하고 있는데, 그 목적은 국제적으로 준수되어야 할 최저기준을 설정하려는 데에 있다.
그리하여 지적재산의 보호에 관한 일련의 조약은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에 의해 채택되었는데, 이에 관한 기본적인 국제적 문서들로서는 1967년에 개정된 '산업재산권의 보호에 관한 파리협약', 1971년에 개정된 '문학적 및 예술적 저작물의 보호를 위한 베른협약' 등이 있다. 또한 세계인권선언 직후 지재권에 관한 권리선언을 보증하기 위하여 유네스코가 1952년 채택한 '세계저작권협약' 등이 있다. 따라서 인권개념에 지재권에 대한 보호관념이 수용되어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인권이란 그 사상적 배경에 따라 인권관이 각기 다르게 투영되어 나타나기도 하고, 또한 본래적인 여러 특성 때문에 구체적 현안에 따라 인권 상호간에 충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특히 지재권은 다른 인권과 상충관계에 놓이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데, 이러한 상충은 세계인권선언 제27조 제1항이나 A규약 제15조 제1항(a)(b)의 내용으로부터 예상되는 바와 같이 지재권의 내재적 한계를 설정하는 과정에서 비롯되는 면이 많다. 이런 양상은 WTO/TRIPs협정의 성립을 전후로 지재권의 보호를 더욱 강화하려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일정한 흐름 때문에 더욱 확대된 측면이 있다. 대립 내지 갈등 양상은 다양하지만 개관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인간복제 문제는 주기본권이자 포괄적 기본권으로서의 성격을 갖는 헌법 제10조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는 것으로서 금지되는 행위라 할 것이다. 인간의 유전자특허(遺傳子特許, Gene Patent)와 관련한 특허청의 '생명공학분야 특허심사기준'은 특허법 제32조에 따라 특허를 받을 수 없는 발명을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의 심사과정에서 헌법 제10조의 정신을 반영한 특허법 제32조가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둘째, 인터넷의 등장으로 인한 저작권과 표현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 정보의 자유(알 권리) 등과의 대립이 있다. 가령 WIPO저작권조약과 WIPO실연·음반조약이 디지털 기술에 대한 대응으로 규정한 기술조치(technological measures)의 보호로 인하여 저작권 제한사유에 해당하는 면책적 이용이 위축될 위험이 있다. 이로 인해 표현의 자유를 위축, 침해할 가능성이 많아지게 될 것이다. 한편 인터넷을 통한 다양한 의견표출을 보장하는 '안티 사이트' 운동에서도 저작권은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는 요소로 등장한다. 안티 포스코 홈페이지 사건이 그 예이다. 창작성 없는 데이터베이스의 법적 보호를 시도하는 정통부의 '디지털 콘텐츠산업 육성법(안)'도 정보의 자유 내지 정보접근권에 대한 침해를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셋째, 나이키·아디다스 등 초국적기업의 유명 상표품들(branded goods)이 저임금으로 제3세계의 노동을 착취하여 생산된 다음 높은 가격으로 전세계에서 판매되어 이들 기업은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는데, 그 이익 중 상당액은 보다 많은 이익창출을 위한 상표의 광고·선전을 목적으로 유명 운동선수나 연예인의 광고출연료로 지출된다. 이와 같이 형성된 유명 상표품의 제조·판매와 유명 상표로서의 가치축적구조는 상당 부분 노동자들의 노동권 내지 노동기본권의 침해에서 비롯된다. 한편 에이즈(AIDS) 치료제의 특허권 분쟁에서 보듯이 건강권과 관련하여 의약분야의 지재권이 문제된다. WIPO/TRIPs협정 제31조는 강제실시권에 관해 규정하고 있지만 그 발동요건이 지나치게 엄격하여 실제로 에이즈 치료제의 특허권 분쟁에서 아무런 기능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그 배후에 경쟁질서유지를 명분으로 자국의 특허의약품을 보호하려는 미국 정부의 압력행사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넷째, 인터넷의 등장으로 표출된 '냅스터'나 '소리바다' 사건에서 보듯이 저작권 이용자들과 권리자들간의 갈등관계가 있다. 이는 문화생활에의 참여라는 문화적 권리와 저작권이라는 문화적 권리 상호간의 긴장된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비즈니스 방법특허와 같이 특허의 보호범위를 확대하려는 경향으로 말미암은 과학의 진보와 그 혜택을 향유할 문화적 권리와의 갈등 현상도 있다.

다섯째, 유전자원(Genetic Resources)을 둘러싼 선진국과 후진국간의 갈등이 있다. 이는 유전자원이 생명공학특허의 원자재로 취급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1992년 6월 체결된 '생물다양성협약'이 유전자원 또는 유전정보의 보전·접근·활용 및 이와 관련된 지재권의 양도 또는 이용허락에 관해 상세한 국제규범을 마련하고 있지만, 여기에도 일정한 한계가 있다. 유전자원을 둘러싼 갈등은 지재권과 인권간의 대립 차원을 넘어선 것으로서 지구의 장래와 관계된 본질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지재권과 다른 인권간의 갈등은 여러 영역에 걸쳐서 다양하게 표출되고 있다. 그 양상은 동심원이 소에서 대로 원을 그려 나가듯이 편차가 심하다고 말할 수 있다. 요컨대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빚어진 갈등이라는 점에서는 중심이 동일하다고 하겠으나, 과거에도 존재하던 상충현상이 '전화'(轉化)되어 나타난 것이 있는가 하면, 과거의 대립이 '확대'되었거나 아니면 전혀 새롭게 '신규'로 등장한 것도 있다. 그러므로 갈등의 조정이란 관점에서도 이러한 편차는 고려되어야 한다.

첫째, 냅스터나 소리바다 사건과 같이 '전화'되어 등장하는 갈등은 지재권에 규정된 제한규정에 대한 해석논리를 개발하고 내재적 한계의 설정을 통하여 해소책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BM특허나 유전공학특허 등과 같이 '확대'로 인한 대립은 기존 지재권의 요건을 느슨하게 풀어놓음에 따라 발생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종전과 같은 엄격한 해석이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 셋째, 창작성 없는 데이터베이스의 보호나 기술조치의 보호 문제 등과 같이 '신규'로 등장하는 상충문제는 축소 내지 제한 해석론의 개발이나 입법론의 전개 차원에서 해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넷째, 이러한 방안들 모두를 포괄하는 입법운동 내지 사회운동을 통한 지재권과 다른 인권들간의 갈등 해소방안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방안은 국제조약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므로 NGO간의 연대를 통한 국제조약 개정운동 등을 포괄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또한 운동차원의 접근에는 첫째, 둘째, 셋째 방안들에서의 해석논리 개발이나 엄격한 해석의 유지를 위한 일환으로 기획소송을 추진하거나 학술운동을 통하여 뒷받침하는 것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운동차원의 접근에서 중요한 것은 종전의 지재권 체제와는 성격을 달리하는 대안적 시스템을 모색하려는 노력도 포함되어야 한다.

박성호 ( 변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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