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7층 난간에 매달려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경찰관의 손을 밟아 그들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그리고 인질로 잡아놓은 경찰관에게 다가가 그들의 몸에 불을 붙였다.”
1989년 5월 3일, 경찰의 총기 난사에 항의하는 시위로 시작되었다가 진압 경찰 7명의 죽음과, 학생 76명의 구속, 구속 학생 3명에 대한 사형 구형 등으로 이어진 ‘동의대 사태’를 기억한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당시 언론들은 경찰과 검찰이 불러주는 대로 받아쓰기를 해서 보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7층 건물에 매달린 경찰의 손을 학생이 발로 밟아 떨어뜨리고 인질 경찰의 몸에 신나를 붓고 불을 질렀다’는 기사로 탁월한 작문 실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학생들은 살인마가 되었다. 국민들은 희생된 경찰들을 애도하며 학생들의 폭력성을 규탄하였고 모든 민주세력들에게도 그 비판의 화살을 돌렸다. 노태우 정권의 길고 무자비한 탄압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세월이 제법 지났다. 최근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심의위원회>에서 동의대 사건을 다루고 있다는 기사를 접했다. 진압 경찰들의 희생을 부른 화재 원인에 대한 조사는 당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증거는 그들의 관심사도 의지도 아니었다.
오로지 학생이 던진 화염병에 의해 불이 나야만 하는, 이미 정해진 결론을 위해 당시 검찰과 재판부는 온갖 코미디를 연출했다.
그래서 1심 판결은 ‘소화기 분사압력에 의한 화염병 불꽃의 이동’을 화재 원인으로 규정했다가 뒤집어졌고, 2심에서는 ‘석유의 급속 발염에 의한 유증기 발생’이 화재 원인으로 등장했으나 또다시 많은 의문과 반론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무기징역 1명을 포함하여 여러 명의 학생들이 중형을 선고받았고, 사건 이후 학생들의 부모 가운데 여럿이 화병으로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당시 <동지여 내가 있다> 라는 노래의 가사를 <아들아 에미가 있다>로 바꾸어 부르며 울음바다를 이루던 구속 학생들의 어머니들을 다시 떠올린다.
그러나 동의대 사건은 89년에만 있지 않았다. 동의대 사건은 86년에는 ‘건대 사태’ 로 불리었고 96년에 연세대에서 다시 일어났으며, 그보다 훨씬 전인 1980년에는 광주에서도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동의대’에는 양심과 역사를 팔아먹은 언론과, 그러한 언론의 장단에 놀아난 못난 우리들의 자화상이 있다.
노동절로 시작하는 이 5월을 ‘가정의 달’ 이나 ‘성모 성월’로만 지내기에는 아직도 못 갚은 빚, 해야할 일이 많은 까닭도 거기에 있다.
광주와 동의대로 대표되는 지난 세월의 매장된 진실을 남김없이 밝혀내어 억울한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희생된 이들의 넋을 달래는 일은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이다. 국민을 속이고 역사를 속이는 수구 족벌 언론과의 싸움을 끝까지 벌여나가는 일은 우리 모두에게 남겨진 의무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잘못된 역사를 청산하지 못하면 잘못된 역사는 계속된다. 거짓과 기만의 펜대가 꺾이지 않으면 그 펜대는 창칼이 되어 정의와 역사를 유린하게 된다.
송제훈 (서울 인수중)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