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절도 일하는 노동자들

[르뽀 | 노동절에도 일하는 노동자들] "법은 멀고 목구멍은 포도청" 모든 노동자에 '유급휴일'인데…영세업체엔 '그림의 떡'

2002년 5월1일 노동절 아침. 경기도 일산을 떠나 서울을 향하는 버스는 아파트단지를 지나 이내 일산가구공단 거리로 접어들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검은 피부의 외국인 노동자 한 무리가 일산가구공단을 가리키는 아치형 간판을 넘어 저만치 공단거리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도 노동자"라는 이주노동자들의 절규는 5월1일 노동절 대회장뿐만 아니라 공장 한켠에서 가슴 속 메아리도 계속될 것이다.

한참을 달린 버스가 서울 시내로 접어들자 부쩍 한산한 출근길이 '노동자가 쉬는 노동절'을 체감케 했다. 하지만 신길역에서 내려 영등포시장 쪽으로 접어들자 늘어선 '마찌꼬바'(영세업체)에는 여전히 기름때 묻은 작업복의 노동자들이 하루의 작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직껏 노동절은 중소규모 사업장의 노동자들에겐 먼 나라의 일일뿐이다.

오전 10시께 서울경인지역인쇄노조 최영현 위원장과 함께 을지로·충무로 인쇄소 골목을 돌았다. 이곳 충무로와 을지로에만도 1만여 곳이 넘는 인쇄소와 출력실이 몰려있다. 이곳에 딸린 노동자가 4만여명으로 추산되니 평균 4명 정도의 극히 영세한 규모다. 두 사람이 어깨를 부딪히며 간신히 지나는 골목길을 종이를 가득 실은 조그만 오토바이는 잘도 빠져나간다.

"그 나마 예전보단 좀 나아졌습니다. 인쇄 중에서도 전산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노동절이면 휴무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죠. 하지만 아직도 오프셋이나 제본을 하는 노동자들은 너무나 당연하게 노동절에도 출근을 합니다."

최영현 위원장의 얘기로는 전산관련 노동자들은 업무특성과 (상대적으로 적은) 나이 때문에 그래도 노동절만큼은 쉬어야 한다는 분위기지만 오프셋이나 제본 일을 하는 '늙은' 노동자들은 그렇지 않다. 특히 월급제가 아니라 몇 년 전부터 확산된 객공제(몇 일 분의 작업량을 할당받고 일용노동자와 같은 신분으로 일하는 방식) 때문에 노동절에 쉰다는 것은 호사스런 남 얘기일 뿐이다.

그렇다면 노조가 없거나 영세한 사업장 노동자가 노동절에 쉬지 못하는 건 당연할 일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지난 1994년 3월9일 개정된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은 "5월1일을 근로자의 날로 하고 이 날을 '근로기준법'에 의한 유급휴일로 한다"고 분명히 명기하고 있다. 따라서 노동절에는 직종과 규모에 관계없이 모든 노동자가 쉴 권리가 있다. 만약 이날 작업을 할 경우 휴일노동에 해당하는 수당(이른바 특근수당) 150%를 추가로 지급해야 한다. 물론 노동자가 원할 경우 쉬면 그만이다. 또한 '근로자의 날'은 법정휴일로서 특정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특정일로 정해져 있으므로 노사가 합의하더라도 대체할 수 없다는 법 해석이 주류다. 하지만 이런 법률과 규정은 힘없는 노동자에게, 더욱이 노조도 없는 노동자에게는 여전히 휴지조각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노조가 있는 노동자들의 사정은 좀 다르다. 한국노동연구원이 9백67곳 사업장의 단체협약을 분석해 펴낸 '단체협약 분석'(1999년)에 따르면 조사대상 사업장 중 85.6%가 노동절을 유급휴일로 명기하고 있다.

1996년 조사 때의 81.5%보다도 약간 높아진 수치다. 눈길을 끄는 것은 전기·가스·수도업이 62.5%, 건설업이 75%로 다른 산업보다 그 수치가 낮고, 조합원 규모가 적을수록 역시 이 수치도 낮다는 사실이다.

법규정조차 '작업특성'을 이유로 또는 노조의 힘이 약하다는 이유로 공공연히 노동절 휴무가 거부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통계에 잡히지 않은, 단체협약이라는 말조차 꺼낼 수 없는 대다수 노동자들은 아무 이유 없이 5월1일에도 출근해 자신의 노동력을 착취당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상근 lsk530@no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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